[이수미 더봄] 동화 속 주인공 옷을 만들어 입히라니?
[이수미의 할머니 육아] 손주가 없었으면 내 평생 안 했을 일
어린이집과 유치원 생활은 교육보다는 체험과 놀이가 주된 과정인 것 같다. 아이들도 행사를 통해 협동심과 규칙 지키기, 창의력 등을 함께 배워나간다.
손주의 등원 첫해는 우왕좌왕, 알림장 내용을 봐도 모르는 게 많아서 선생님들께 묻고 등·하원할 때 만나는 딸뻘 엄마들한테 도움을 받고는 했다. 그것도 2~3년 차로 접어드니 노하우랄까 경험이 쌓여 수월해졌다.
특별히 챙겨 보내는 준비물이 많지 않았고, 도시락을 싸 보내야 하는 소풍이 1년에 두어 번, 물놀이할 때의 수영복과 숲 탐험의 모자 정도였다. 두 딸을 키울 때는 챙겨야 하는 준비물과 숙제가 많았다.
큰딸이 초등학교 1학년 때인가··· 퇴근 전에 전화로 숙제와 준비물을 물어보니, 누군가의 위인전을 읽고 독후감을 써 오는 숙제가 있단다. 퇴근해 부랴부랴 동네 책방을 다 뒤졌지만, 그 위인전은 이미 동이 난 뒤였다. 수십 권을 준비해 놓지 않으니 당연한 일이었지만, 당황스럽기 짝이 없는 상황이었다.
아는 엄마도 별로 없는 '일하는 엄마'가 어찌어찌 수소문해 겨우 숙제를 해 갔던 기억이 상처로 남아 있다. 지금처럼 휴대전화가 상용화될 때가 아니었지만, 일주일 전만 공지해 줬어도 그런 난리법석은 없었을 텐데···.
손주를 키워 보니 모든 행사와 일정의 공지는 최소 한 달 전에 이루어지고 매주 다시 한번 알림장을 통해 친절하게 알려준다. 물론 아침에 '깜빡'할 수는 있겠지만, 할머니가 돌보는 티를 안 내려고 챙겨야 할 것을 잊어버린 적은 거의 없었다.
탁상 다이어리에 행사와 준비물을 적어 놓고 빨간 펜으로 별표도 그려 놓는다. 다도를 하는 날, 할머니가 찻잔을 안 넣어 줘서 유치원 컵을 썼다는 말을 듣고 어찌나 미안하던지···.
기억에 남는 행사로 '동화 속 주인공 옷 입고 오기'가 있었다. 가끔 배트맨이나 백설 공주, 마법사 옷을 입고 오라는 날도 있었지만 이 행사의 취지는 '만들어 입고 오기'였다.
큰일 났다. 만드는 손재주도 없지만, 헝겊을 얼기설기 꿰맨다고 주인공을 표현하기도 힘들고,
그걸 입고 종일 지내야 하니 종이로 대충 만들 수도 없고···. 손주에게 물어보니 '헨젤과 그레텔'의 헨젤을 하고 싶단다.
찾아보니 동화책 삽화 덕에 대충의 모양은 그려졌다. 옷이 될 만한 천도 없고, 도안을 그릴 줄도 모르고, 며칠을 고민 중에 부직포가 떠올랐다. 손주가 유치원에서 무엇인가 만들어 오는 것을 보면 부직포를 많이 사용하는데 종이처럼 다루기 쉬우면서 잘 찢어지지도 않고, 색깔도 다양하다. 큰 화방에 가 보니 색색깔의 부직포가 너무도 많았다.
이틀은 만든 것 같다. 반을 접어 얼굴이 들어갈 만큼 오려 내고, 손주에게 입혀 보고, 뭔가 이상하면 다시 버리고, 모양을 다듬고···. 고등학교 가정 시간에 '재봉'이라는 옷 만들기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 좀 잘 배워둘걸···.
옆에서 지켜보는 딸아이는 "엄마, 그렇게 궁리를 해야 치매에 안 걸려." 격려인지 덕담인지를 들으며 열심히 만들었다.
혹시 디자인 전공한 엄마가 어마어마한 옷을 만들어 입혀 보내서 손주 기가 죽지나 않을지 쓸데없는 걱정도 했었지만 할머니가 괴발개발 만들어 준 헨젤 옷과 빵 주머니를 차고 손주는 신나서 등원한다. 돌아오는 할미 마음이 뿌듯하다.
‘할미 치매 예방해 줘서 고마워~’
여성경제신문 이수미 전 ing생명 부지점장·어깨동무 기자 leesoomi71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