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우의 핫스팟] 삐뚤어진 길 하나가 뉴욕을 살렸다
1811년 직각 격자 위, 지워지지 않은 사선 브로드웨이가 남기고 간 삼각형 땅과 광장 획일 대신 다양성이 만든 뉴욕의 얼굴
혼자만 삐딱한 사람은 언제나 눈엣가시다. 교실에서도, 직장에서도 예외는 불편함으로 취급된다. 도시도 마찬가지다. 1811년 뉴욕 맨해튼 도시계획위원회는 직각만 허락하는 격자 도시를 도면에 그렸다. 한데 브로드웨이만 유일한 사선에 머물렀다.
당시 위원회는 뉴욕의 대부분의 기존 도로를 “불필요한 장애물(obstructions)”로 규정하고 새로운 직선으로 덮어버릴 계획이었다. 언덕, 강줄기, 오래된 길은 모두 무시됐다. 그런데 브로드웨이는 이미 교통과 상업의 중심축이었고 지워버리면 오히려 도시의 흐름이 끊길 수 있었다. 위원회 보고서에는 이런 문장이 남아 있다.
“브로드웨이는 도시 성장의 핵심축으로 작동한다. 제거할 경우 공익을 해칠 우려가 크다.”
계획의 칼날은 대부분을 베어냈지만 브로드웨이만 살렸다. 바둑판 같은 맨해튼 한복판을 비스듬히 가르는 유일한 길이었다.
브로드웨이는 삼각형과 사다리꼴을 닮았다. 격자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사선과 격자의 만남 점이 타임스스퀘어, 헤럴드스퀘어, 매디슨스퀘어, 유니언스퀘어를 만들었다. 도로 계획의 흠집이 도시의 광장이 됐다.
플랫아이언 빌딩은 사선과 격자 만남의 상징적 산물이다. 브로드웨이와 7번가가 만나는 날카로운 삼각형 부지에 세워진 건물은 오늘날 뉴욕의 대표적 아이콘이다. 직각의 반복만 있었다면 불가능한 풍경이었다.
브로드웨이의 역사는 도시계획보다 오래됐다. 원래는 맨해튼 원주민이 언덕과 늪을 피해 다니던 ‘위크콰스게크 트레일’이었다. 17세기 네덜란드 정착민은 이 길을 넓혀 뉴 암스테르담의 중심로로 삼았고 영어식 이름 ‘브로드웨이’가 붙으며 도시의 주요 간선도로가 되었다.
뉴욕 시립기록보관소 기록된 당시 원도면을 보면 도면 위 맨해튼은 직각의 선들로 가득했지만 그 한복판을 비스듬히 가르는 굵은 선 하나가 눈에 띄었다. 도시계획자들에게는 흉터였지만 지금은 뉴욕의 정체성을 만든 흔적이었다.
타임스스퀘어에서 만난 스페인 관광객 미셸 로페즈(34)는 “도시계획과 역사가 부딪혀 남긴 결과물”이라며 “뉴욕의 특별함은 이 불규칙성에서 나온다”고 했다. 뉴욕 시민 존 피터슨(58)은 “브로드웨이는 길 자체가 역사”라고 했다.
타임스퀘어가 세계 최대 규모의 LED 사이니지 밀집 지역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이유도 도시 구조에 있다. 브로드웨이가 만든 삼각형 교차로 위에 형성된 특수한 입지 조건, 24시간 꺼지지 않는 상업·관광 수요, 뉴욕시의 규제 완화가 결합된 결과다.
맨해튼의 다른 구역이 건물 외벽 광고를 엄격히 제한한 반면, 타임스퀘어는 오히려 의무적으로 대형 디지털 스크린을 설치하도록 장려해 ‘빛의 전쟁터’가 됐다.
하루 평균 30만 명 이상이 오가는 세계 최대의 보행자 집결지라는 점이 기업들에게는 글로벌 쇼룸 역할을 했다. 코카콜라, 삼성, 디즈니 같은 다국적 브랜드들은 타임스퀘어를 브랜드 경험 공간으로 활용하며 전 세계 미디어에 자연스럽게 노출되는 효과를 얻는다.
브로드웨이는 지금도 뉴욕의 중심축이다. 원주민의 오솔길에서 시작해 네덜란드 정착민의 도로가 되었고 1811년 도시계획에서도 살아남았다. 지금은 세계인이 찾는 문화와 상업의 거리다.
1811년 도시계획은 맨해튼을 직각의 격자로 재단했다. 효율과 질서가 앞세워졌지만 그 틈을 비껴간 브로드웨이의 사선이 오늘날 뉴욕의 정체성을 만들었다. 사선이 만든 삼각형 광장은 상업과 문화의 무대가 되었고 독특한 건축물은 도시의 상징이 됐다.
뉴욕을 뉴욕답게 만든 건 끝내 남은 삐뚫어진 사선이었다. 정책 역시 획일적 설계가 아닌 예외의 가치 속에서 지속 가능한 힘을 찾을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여성경제신문 김현우 기자=미국, 뉴욕 hyunoo9372@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