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마디 더봄] 펭귄을 보러 펭귄 사는 곳을 간다
[윤마디의 아프리카 그림일기] 희망봉-대서양과 인도양이 만나는 곳
2017년 6월 23일 / 볼더스 비치 / 반짝반짝 햇빛이 눈 부신 날
케이프타운에서 남쪽 반도로 쭉 내려왔다. 이쪽에서 펭귄이 사는 볼더스 비치와 희망봉 두 군데를 갈 것이다. 볼더스 비치는 아프리카에서 몇 안 되는 아프리카 펭귄 서식지이다. 펭귄은 빙하가 있는 남극 북극에만 사는 줄 알았는데 남아프리카 해안가의 10~20℃ 따뜻한 바다에서 사는 아프리카 펭귄도 있다. 울음소리가 당나귀(jack ass)와 비슷해서 자카스 펭귄이라고도 하고, 케이프 펭귄이라고도 한다.
도로변에 차를 세우고 입구에서 표를 사면 바닷가까지 평평한 덱이 이어진다. 사람은 덱으로만 다닐 수 있고, 덱 밖으로 나가면 안 된다. 펭귄에게 먹이를 줄 수 없는데도 사람을 안 무서워하는 펭귄들이 덱 옆에 와서 기웃거리고 뭐라 뭐라 소리도 지른다.
눈가에 분홍색 무늬가 있는 몸집은 걸음마 하는 돌쟁이 아기만 한 아담한 펭귄들이 볼더스 비치 모랫가에 잔뜩 모여있다. 서로 쪼고 싸우다가도 몸을 비비고 논다. 파도가 밀려왔다가 쓸려나갈 때 같이 딸려 나가서 물에 들어간 김에 헤엄치고 놀다 온다. 팔을 부르르 떨며 물기를 턴다. 마른 모래로 올라가 엎드려서 몸을 몇 번 으쓱으쓱 하면 몸 하나 쏙 들어가는 구덩이가 생긴다. 그 자리에 쏙 들어앉아 일광욕한다.
비치에서 돌아가는 덱 길은 뒤편의 숲으로 연결된다. 해변이 펭귄의 놀이터였다면 숲은 집. 그중에서도 어린이들의 집이었다. 플라스틱 통을 반 갈라 땅에 심어서 만든 펭귄 집. 엎어진 플라스틱 지붕에 숫자가 큼지막하게 쓰여 있다. 그 집들이 신림동 고시촌처럼 숲속 작은 언덕에 빼곡하다.
자연만 있는 줄 알았는데 사람이 지어준 집에서 태어나 나고 자란다니! 좀 큰 아이들은 집에서 나와 풀 사이에 모여서 오소소 털을 털어대고, 무서운지 올망졸망한 눈을 하고선 삐악삐악 운다. 우는 소리가 나자 어른 펭귄이 헐레벌떡 뛰어온다.
야생동물을 가까이서 보는 건 참 오랜만이다. 스물한 살 무렵 2년 동안 채식을 하면서부터 동물원이나 아쿠아리움을 가지 않는다. 조명 아래 공포에 질린 생명을 진열해 놓은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간 곳은 뜻밖에 들른 한 아쿠아리움이었다. 유치원 아이들이 떼를 지어 동물 쇼를 봤다. 조련사 손짓 따라 자맥질을 해대는 물개들. 값싼 쇼맨. 생계를 저당 잡힌 저임금 노동자.
그렇지만 여기는 머릿수부터 차이가 나네. 해변의 바위와 모래, 바다와 숲이 3000마리 펭귄의 것. 사람은 20~30명 남짓, 길은 정해진 덱뿐. 나는 펭귄에게 먹이를 줄 수도 없고 재롱을 바랄 수도 없다. 서로에게 아무 의무 없이 구경만 하다 떠날 수 있다는 생각에 죄책감 없이 홀가분했다.
희망봉 - 대서양과 인도양이 만나는 곳
절벽 위에 앉아 있다. 내 발아래에는 두 대양이 몰려와 부딪혀서 파열음을 남기고 다시 부서져 떠난다. 또다시 몰려와 뭉치고 산산이 조각나서 떠난다. 파도는 절대 바닷속을 나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절벽에 앉아서, 파도의 알 수 없는 속을 내 발 아래, 까마득한 발 아래 둔다.
가까운 사람들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마음. 사랑한다는 그 마음을 ‘정말일까? 언제 또 돌아서지 않을까?’ 하며 문고리를 조금은 붙들고 있던 내 마음. 뭉쳤다가도 매 순간 파도에 금세 모래처럼 흐트러뜨렸다가, 조금 지나면 그래도 다시 성을 쌓아볼까 하고 손을 댄다.
신뢰와 실망을 파도처럼 반복하며, 그 파도에 휩쓸려 마음 붙이고 앉아 있을 수가 없었는데 껑충 위로 올라와 보니 절벽 끝에 내 앉을 자리가 하나 있다.
죽음이 한 발 앞에 있는 곳에 걸터앉아서 절벽을 파고드는 파도를 내려다보니까 안전과 안정을 바라던, 날 해치지 않는 사랑을 갈구하던 내 마음이 너무나 파도 같구나. 끊임없이 몰려다니면서 거품과 파열음으로 나를 뒤덮는 거야. 바다는 그 안에 깊숙이 있는데 그걸 모르는 채로 나는 어지러운 파도에만 흔들리고 있던 거야.
한참 위에서 내려다보니 거기에 검고 깊은 대양의 바다가 있다는 것을 알겠다. 거친 파도에 둘러싸여서 평온할 수는 없지. 파도가 절대 닿지 않을 곳으로 껑충 올라왔더니 안심이 된다. 절벽 위에서 느끼는 안정감···.
여성경제신문 윤마디 일러스트레이터 madimadi-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