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웅익 더봄] 도장포의 추억···전유성 님을 추모하며

[손웅익의 건축마실] 동백꽃과 바람의 언덕이 슬픈 이름으로 다가오는 날

2025-10-06     손웅익 건축사·수필가
신선대에서 바라본 남해의 절경 /그림=손웅익

거제도 동남단에 도장포라는 작은 어촌마을이 있다. 그 이름에서 추정이 되듯 도장포는 도자기와 관련이 있는 이름이다. 고려시대에 중국과 일본 등지를 다니던 무역선의 도자기 창고가 이곳에 있었다고 한다.

거제도 지도를 보면 거대한 새가 날개를 펼친 형상이다. 도장포는 그 새의 한쪽 날개에서 툭 튀어나온 발가락 모양을 하고 있다. 그 튀어나온 지형의 북쪽 사면에 자리 잡은 도장포는 남쪽이나 남서쪽에서 올라오는 태풍에 안전한 천혜의 포구다.

나는 20여 년 전에 도장포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도장포마을에서 태어나고 그곳에서 평생 살고 계신 분으로부터 바람의 언덕 바로 옆 바다에 해중전망대 디자인을 의뢰받았다. 바다에 떠 있는 작은 수족관과 카페를 디자인하는 프로젝트였다. 그때 처음 현장답사를 가서 느꼈던 감동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도장포에는 ‘바람의 언덕’이 있다. 오래전 TV 드라마에 등장해서 유명 관광지가 된 곳이다. 도장포에서 바다로 돌출한 그리 크지 않은 언덕이지만 바다 전망이 좋고 사시사철 시원한 바람이 부는 멋진 전망대다.

도장포마을 뒤쪽 비탈엔 수령이 300년이 넘은 동백나무 숲이 있다. 휘어지면서도 균형이 잘 잡힌 가지가 아름다운 동백나무가 빽빽하게 숲을 이루고 있다. 동백꽃이 툭툭 소리를 내며 떨어지던 그 숲길을 잊을 수가 없다.

도장포마을 넘어 남사면에는 신선대가 있다. 바람의 언덕이 도장포마을의 북쪽 바다 전망대라면, 신선대는 남쪽 바다 쪽으로 트여있는 전망대다. 그 기묘한 형상의 바위 위에 앉아 코발트색 바다와 멀리 몇 개의 섬을 바라보고 있으면 신선이 된 느낌이다. 해변에 깔린 동글동글한 몽돌은 파도가 들고 날 때마다 단체로 구르며 좌르르 좌르르 합창을 한다.

해중전망대 디자인을 진행하면서 몇 차례 더 도장포를 방문했다. 바다에 띄우는 건축물이라 선박 설계업체와 부유 구조물 설계업체로부터 자문을 받으면서 디자인을 진행했다. 시행자는 100억원이 넘는 사업비 조달을 위해 동분서주했으나 바다에 떠 있는 구조물은 부동산이 아니라는 이유로 사업비 조달이 쉽지 않았다. 도장포 해중전망대 프로젝트는 결국 보류되었다.

해중전망대는 보류되었지만 최근까지 나는 도장포 개발 자문위원으로 계속 인연을 맺고 있었다. 지난 2021년도에 해양수산부에서 지원을 받는 도장포 어촌뉴딜300 자문위원으로 도장포에 가게 되었다. 당시는 코로나가 한참 기승을 부리던 시기였다. 그날은 도장포 주민 역량 강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코미디언 전유성 씨를 초청해서 강연을 듣는 날이었다.

전유성 선생님은 도장포 바닷가 노천에서 강의하면 집중이 잘 안된다고 실내 강연을 고집하셨지만 코로나 시국이라서 결국 야외에서 진행하게 되었다. 야외라서 좀 어수선하긴 했지만 특유의 유머를 섞어가면서 좌중을 들었다 놨다 하셨다.

도장포의 동백 숲 /그림=손웅익

강연이 끝나고 주최 측 인사 몇 명과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다. 나는 전유성 선생님과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 선생님은 상이 차려지자마자 맥주잔에 소주를 콸콸 따르시고는 한 번에 죽 들이키셨다. 그렇게 몇 잔을 들이켜신 후에 종이쪽지에 도장포 활성화 아이디어를 몇 가지 적어 내려갔다. 달필이었다.

아이디어 쪽지를 나에게 건네주신 후에는 특유의 유머로 좌중을 웃기셨다. 마술도 보여주셨는데, 마술이라기보다는 장난기 어린 놀이 같은 것으로 기억된다. 전 선생님과 보조를 맞추느라 나도 급하게 소주를 몇 잔 마시는 통에 몽롱해져서 선생님이 보여주셨던 컵과 동전 마술이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그 후 남원에 계신 선생님과 몇 차례 안부 문자를 주고받았다. 남원에 있는 카페에 한번 다녀가라고 하셨다. 이번 가을엔 남원, 순천, 고흥, 여수로 이어지는 남도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선생님의 부고 소식이 날아왔다. 맥주잔에 가득 따른 소주를 원샷하시는 모습을 남원에서 한 번 더 보고 싶었는데 동백꽃이 떨어지듯 황망히 떠나셨다. 오늘은 ‘동백꽃’과 ‘바람의 언덕’이 슬픈 이름으로 다가온다.

전유성 선생님의 명복을 빈다.

여성경제신문 손웅익 건축사·수필가 wison77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