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 칼럼] 성장률의 함정, 美에 드리운 스태그플레이션 그림자
[김성재의 국제금융 인사이트] 연준은 금리 인하와 물가 압력 사이서 혼란 부유층 소비 확대에도 고용 둔화는 더 심화 자산시장 과열 우려에 인플레이션 불씨 증폭 10월 고용과 물가 지표가 정책 향방을 좌우
지난주 미국 자본시장은 두 개의 예기치 못한 뉴스로 휘청거렸다. 고용이나 물가 데이터와 같은 중요한 월간 경제지표가 없었음에도 시장이 입은 충격은 큰 편이었다. 특히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 기대감으로 상승하던 중·소형주와 가상화폐가 큰 타격을 입었다.
우선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지난 23일 로드아일랜드주의 한 경제전망 오찬 연설에서 최근 연준이 직면한 양방향 리스크에 대하여 우려를 표명했다. 연준이 처한 상방 리스크는 인플레이션이고 하방 리스크는 고용 냉각이다.
이렇게 경제가 인플레이션과 실업 리스크에 동시에 노출되는 경우는 드물다. 바로 물가 상승과 경기침체가 동시에 진행되는 스태그플레이션 위험을 뜻하기 때문이다. 1970년대 미국 경제는 두 차례 석유파동으로 인한 비용 상승 인플레이션과 전쟁 및 복지 재정 지출 증가로 인한 수요 견인 인플레이션이 맞물리면서 두 자릿수 물가 상승에 시달렸고 경기도 침체했었다.
경제가 공급 측 쇼크에 빠지지 않는 한 경기가 침체하면 물가는 안정되고 인플레이션이 높을 때는 경기는 좋았다. 스태그플레이션에 접어들지 않는 한 연준의 통화정책 선택은 비교적 용이했다. 경기가 좋지 않으면 금리를 내려 돈을 풀고 물가 압력이 높아지면 금리를 올려 시중 유동성을 줄이면 되었다.
역으로 보면 파월 의장의 스태그플레이션에 준하는 상태에 대한 경고는 연준의 선택이 그리 간단하지 않음을 시사한다. 고용 냉각을 감안해 금리를 내리자니 물가 상승이 걱정되고 인플레이션에 초점을 맞춰 금리를 동결하자니 실업이 걱정되는 곤혹스러운 처지다.
설상가상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스티븐 마이런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을 공석인 연준 이사로 임명해 금리 인하를 압박하고 있다. 결국 파월 의장은 향후 진행되는 경제 상황을 면밀히 주시해 대응하겠다는 원론적 입장을 피력할 수밖에 없다.
이는 다시 말하자면 향후 발표되는 경제지표 하나하나가 모두 연준의 금리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미다. 그간 시장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후 발표되는 경제전망 점도표가 시사하듯 연준이 연내 두 차례 더 금리를 인하할 것이라 예상해 왔다.
파월 의장은 이번 발언은 그 두 차례 금리 인하가 반드시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시사한다. 이를 반영해 파월의 발언 직후 중·소형주와 가상자산 가격이 크게 흔들렸다. 향후 유동성 유포리아를 기대했던 시장에 찬물이 끼얹어진 셈이다.
9월 25일 목요일에는 미국의 2분기 경제성장률 수정치가 발표되었다. 최근 발표되었던 GDP 성장률이 지난달 1차 발표치 3.3%에서 0.5%나 높은 3.8%로 상향 수정되었다. 지난 분기 성장률만 본다면 경기는 활황세를 달리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경제성장률은 고용, 물가와 더불어 가장 중요한 경제지표다. 강력한 경제성장률은 연준의 금리 결정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강한 경제성장을 견인한 것은 예상보다 탄탄한 소비지출 증대였다. 서비스 부문에 대한 지출 증대가 특히 눈길을 끌었다.
그렇다면 정리해고의 급증으로 전반적으로 빠른 속도로 고용 둔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견고한 소비지출의 증대가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것은 소비를 주도하는 계층이 소득 수준이 높은 부유층이기 때문이다.
한 연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소득 상위 10%가 전체 소비의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고 한다. 이들 상위 소득 계층은 한계소비성향이 낮다. 한계소비성향이 1이라면 소득이 100만원 증가했을 때 이를 모두 소비하는 데 써버린다는 의미다. 반면 한계소비성향이 0.2라면 소득이 100만원 증가할 때 소비는 20만원만 증가하고 나머지 80만원은 저축한다.
부유층은 한계소비성향이 낮아 소득이 변화했을 때 소비 변동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 최근의 고용시장 부진이 소비 하락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줄어든다는 의미다. 무엇보다 최근의 주식시장과 자산 가격 급등으로 부의 효과(wealth effects)가 작용해 부유층의 소비 증가에 기여했다.
이는 달리 말하면 주식과 자산 가격이 급등하면 할수록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의 수요도 동시에 늘어나 제품 가격을 밀어 올리게 된다. 이로 인한 인플레이션 압박도 당연히 커진다. 1996년 앨런 그린스펀 전 연준 의장은 자산시장의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이 자산 가격을 과도하게 밀어 올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문제는 제롬 파월 연준 의장도 최근 미국 주식 가격이 “상당히 높다”라고 우려했다는 사실이다. 파월 의장이 주가에 대하여 직접 언급하는 일이 거의 없다는 사실에 비추어 보면 주가가 상당히 높다고 언급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는 금리 인하로 인해 자산시장의 가격 거품이 악화한다는 인식이 강해지면 그로 인해 연준이 금리 인하를 주저할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하지만 GDP 데이터 발표 이후 주식시장이 약세를 보인 것은 단지 강한 경제성장률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일 가능성이 크다. 실제 2분기의 강력한 성장률은 1분기의 마이너스 성장 직후에 나타난 반사효과일 가능성이 크다. 미국 분기 GDP는 전년 동기와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전 분기와 비교해 분기 성장률을 연이율로 환산하기 때문이다.
실제 1분기와 2분기를 합산한 상반기 성장률은 1.6%에 그쳤다. 장기 평균치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이다. 무엇보다 민간기업의 투자는 오히려 감소했다. 1분기에 급증했던 수입도 2분기에는 급감했다. 이는 관세로 인한 충격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임을 보여준다.
이를 고려해 파월 의장도 물가에 대한 관세의 영향에 대한 태도를 바꿨다. 과거 관세의 인플레이션 충격은 일시적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지만 최근 발언에서는 현재까지 관세의 물가 충격은 제한적이지만 향후 연준이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을 정도로 중요하다고 시사했다.
요컨대 파월의 발언은 최근 고용시장의 냉각으로 인해 통화정책의 추를 금리 인하로 옮겼던 연준의 입장이 다시 물가 우려로 어느 정도 돌아섰음을 시사한다. 또한 경제의 펀드멘털도 그렇게 건강하지만은 않다. 시장에는 걱정이 쌓이고 있다.
걱정이 많은 시장이 마냥 랠리 할 수만은 없다. 결국 향후 연준 정책과 시장의 향방을 가를 키는 10월 고용과 물가 데이터다. 연준이 이 데이터에 영향받아 경제가 좋은 것으로 GDP 성장률을 잘못 해석해 금리 인하를 실기하면 보다 심각한 경기침체에 직면할 수도 있다.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을 열어놓고 연준의 대응을 예의주시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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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재 퍼먼대 경영학과 교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종합금융회사에서 외환딜러 및 국제투자 업무를 담당했다. IMF 외환위기 당시 예금보험공사로 전직해 적기 정리부와 비서실에서 근무했다. 2005년 미국으로 유학 가서 코넬대학교 응용경제경영학 석사 학위를받았고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재무금융학으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대학에서 10년 넘게 경영학을 강의하고 있다. 연준 통화정책과 금융리스크 관리가 주된 연구 분야다. 저서로 '페드 시그널'이 있다.
여성경제신문 김성재 퍼먼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francis.kim@furman.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