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폭탄 이제 새벽에 터진다···24시간 환시, 잠 못 드는 밤
국민이 알게될 진실 '원화 취약성'뿐 MSCI 명분 삼아도 현실과는 괴리 코리아 프리미엄 외침이 불안 자극
#코스피가 장중 3% 가까이 빠졌다. 한국 시간으로 26일 새벽,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3500억 달러 투자는 선불(Upfront)이어야 한다고 언급한 발언이 언론 보도를 타고 퍼지자 원/달러 환율은 순식간에 1410원을 돌파했다. 외국인과 기관 매도가 쏟아지며 증시는 급전직하했다.
만약 이런 장면이 밤 2시에 펼쳐진다면 어떨까. 서울외환시장이 24시간 개방되면 국민은 새벽마다 미국 대통령의 발언과 국내 언론의 과잉 해석이 뒤섞인 뉴스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게 된다. 환율이 튀는 순간마다 달러를 사야 할지 원화를 팔아야 할지를 밤새 고민해야 하는 불안이 상시화될 것이다.
국내 외환시장 24시간 개장은 원화 국제화의 상징이 아니라, 오히려 원화의 약한 고리를 드러내는 무대가 될 수 있다. 아침이 오면 이미 지나간 충격을 받아들이던 구조에서 이제는 ‘밤사이 환율 폭탄’을 직접 지켜보는 상황으로 바뀌는 셈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갑작스레 발표한 서울외환시장 24시간 개장 정책 이면의 불편한 진실이다. 위의 사례는 기축통화 논란을 넘어 원화 자체가 달러 대비 취약 통화라는 점을 보여준다. 연준이 금리를 낮추든 유지하든 글로벌 거래 시간대마다 원화는 달러 쏠림에 언제든 흔들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25일(현지시각) 이재명 대통령은 뉴욕 증권거래소 연설에서 “코리아 프리미엄 시대를 열겠다”며 MSCI 선진시장 편입 로드맵을 연내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서울외환시장 24시간 개장 정책을 내놨지만, 시장의 평가는 다르다. 원화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보다 원화의 구조적 한계와 달러 종속성이 더 부각될 수 있다는 지적이 우세하다.
서울외환시장을 24시간 열면 역외 투자자 접근성은 높아질 수 있다. 그러나 글로벌 외환시장에서 원화는 달러·엔·유로처럼 ‘주류 통화’가 아니다. 거래 저변이 약하고 금융기관들의 헤지 능력도 제약돼 있어 결국 달러 결제와 연동될 수밖에 없다.
자본시장연구원은 “서울에서 24시간 시장을 운영하는 것보다 역외로 아예 24시간 오픈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곧 원화의 한계를 드러낸다. 외국인이 역외 야간 거래에 참여한다고 해도 원화를 매수하기 위해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달러를 사들이며 원화를 내던지는 형태로 움직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역외 오픈’은 원화 국제화가 아니라 원화 매도 압력을 정례화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역설적이다. 역외 차액결제선물환(NDF) 시장에서 현물환 시초가가 역외 종가를 따라가는 ‘왝더독(Wag the Dog)’ 현상이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도 있지만, 매크로 전문가들의 현실적 평가는 다르다.
국제통화 이론상 ‘비기축통화(non-reserve currency)’는 위기 시 수요가 늘지 않고 오히려 회피 대상이 된다. 이는 금리 차나 개별 정책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다. 글로벌 플레이어들의 매크로 포지셔닝은 달러 쏠림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냉정하게 흐를 수밖에 없으며, 원화의 취약성은 반복적으로 노출된다.
MSCI 지수 편입 목표가 국내 외환시장 24시간 개장의 상징성을 강조하는 근거로 제시되는 것도 현실과는 괴리된 기대다. 지난해 7월 도입된 연장거래가 ‘안정적으로 정착됐다’는 평가는 원화의 구조적 취약성과는 무관하다. 외환시장은 한국에서 문을 닫아도 역외 차액결제선물환(NDF) 시장에서 원화는 이미 거래되고 있었고 국내 투자자만 그 흐름을 직접 확인하지 못했을 뿐이다.
정부가 발표한 외환시장 24시간 개방은 원화라는 취약 통화를 더 긴 시간 노출하는 과정에 불과하다. 외환시장의 접근성이 확대된다고 해서 외국인의 매도 포지션이 매수 포지션으로 바뀌는 것도 아니다. ‘더 열어줌으로써 접근성 제고’라는 설명은 오히려 원화 취약성을 상시적으로 드러내는 장치가 될 수 있다.
iM증권 박상현 수석 전문위원은 “새벽 시간대 미국 장 흐름이나 해외 뉴스에 따라 환율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며 “그런 부분은 불확실성이 있겠지만 자주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실상은 다르다. 실제로 주요 이벤트들은 한국 시간으로 모두 한밤중에 집중돼 있다.
연방준비제도의 금리 결정과 파월 의장 기자회견은 워싱턴 D.C. 오후 2시, 한국 시간 새벽 3시에 열린다. 미국의 분기별 GDP 속보치는 오전 8시 30분(한국 시간 밤 9시 30분), 고용지표인 비농업 고용보고서는 같은 시각 공개된다. 물가 흐름을 가늠하는 PCE 지수 역시 새벽 2시 전후에 맞춰 시장을 흔든다.
이러한 시간차는 서울 환시가 닫혀 있을 때는 ‘다음날 아침에 반영’되는 구조였지만, 24시간 개장이 현실화되면 새벽 2~3시에 곧바로 환율이 출렁이게 된다. 투자자와 기업, 심지어 일반 국민까지 밤마다 달러 움직임을 지켜봐야 하는 불안이 상시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일부 전문가는 “새벽 6시쯤 백업 시간을 두고 역외 투자자가 좋은 가격에 거래하면 된다”는 식의 낙관을 내놓지만, 글로벌 자본은 ‘좋은 가격’을 공급하지 않는다. 얕은 원화 유동성을 틈타 매도 압력을 실현하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불가능한 가정을 전제로 한 자기 위안에 불과하다.
미국의 달러 유출 억제 장치 역시 걸림돌이다. 역외에서 달러-원 실거래가 늘어나려면 브로커와 플레이어들이 미국 시간대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하지만 볼커룰 등 제도적 제약으로 주요 은행들은 여전히 적극적인 유동성 공급에 나설 수 없다. 이 때문에 역외 원화시장은 깊이를 확보하지 못한 채 얇은 호가만 남게 된다.
원화의 약한 고리, 달러 중심 결제 구조, 낮은 신뢰도는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원화 취약성이 더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재명 대통령이 뉴욕에서 “코리아 프리미엄”을 외치고 증권가가 이를 미화할수록 현실과 괴리된 기대만 키우고 시장의 의심을 자극할 뿐이다. 한 외환시장 전문가는 “결국은 유동성 싸움”이라며 “원화는 구조적으로 깊은 유동성을 확보하기 어려워 달러 결제 종속은 앞으로도 강화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여성경제신문 이상헌 기자 liberty@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