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0억 달러 ‘선불론’ 재확인한 트럼프···韓정부 “순차 투자”와 평행선
한미 간 경제 협상, 복잡 구도 진입 향후 협상 테이블에선 마찰 불가피 인센티브·보조금 지렛대로 이용할 수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이 “한국의 대미 투자 3500억 달러는 선불로 지불돼야 한다”고 거듭 주장하면서 한미 간 경제 협상 구도가 복잡해지고 있다. 한국 정부는 ‘순차적 투자’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협상 테이블에서 마찰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26일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에 “우리의 투자 계획은 단계적 집행이며, 특정 시점에 일괄 자금을 지급하는 구조가 아니다”라며 “트럼프 전 대통령의 주장은 현실과 다소 괴리가 있다”고 선을 그었다.
앞서 한국 정부는 반도체, 배터리, 전기차 등 첨단 산업 분야에서 3500억 달러 규모의 장기적 투자 계획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차 ‘선불 지급’을 요구하면서 사실상 투자 성격을 ‘즉시 현금 투입’으로 규정, 투자 개념 자체를 흔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제계에서는 트럼프식 ‘선불 요구’가 향후 미·중 기술 경쟁 심화 국면에서 미국 내 제조업 회귀 정책과 맞물려 한국 기업들의 부담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는다.
특히 미국이 관세 인하를 지연시키거나 기존 합의의 일부를 재조정하겠다는 위협을 병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인센티브 조정이나 보조금 재편 등을 지렛대 삼아 한국 측에 ‘즉시 투자’를 압박할 수 있다는 분석도 따른다.
한 재계 관계자는 “원·달러 환율이 이미 1400원을 돌파하는 등 약세 흐름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만약 이체가 본격화하면 외환 수요 폭증으로 환율이 폭등하는 충격이 발생할 위험이 크다”며 “ 정부가 시장 개입 압박에 직면할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발언이 협상용 레토릭에 가깝다는 분석도 있다. 글로벌 공급망에서 한국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미국 역시 한국 기업의 투자 의지를 존중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향후 관건은 한미 간 협의 과정에서 투자 방식과 속도를 어떻게 조율하느냐에 달려 있다. 협상이 경색될 경우 전기차, 배터리 등 주요 산업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이는 곧 한국 전력 수급·에너지 가격 등 경제 전반에 연쇄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 경제 전문가는 “트럼프식 ‘딜 정치’가 다시 고개를 들면 한국 기업은 투자 속도와 리스크 관리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한다”며 “정부는 외교 채널을 통해 투자 성격을 명확히 하고 국내 산업계와 긴밀한 소통을 이어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여성경제신문 유준상 기자 lostem_bass@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