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계 속도 내려는데 국회는 제자리···李 1호 공약 반도체특별법 표류
주 52시간 근로 예외 쟁점에 노동부 특별연장근로제 지침 시행 실제 인가는 3건에 그쳐
반도체특별법이 이재명 대통령의 1호 공약이지만 정부 출범 100일이 훌쩍 지나도록 제자리걸음을 하는 모습이다.
25일 정치권에 따르면 여당은 반도체특별법을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한 뒤 오는 10월 14일을 손 놓고 기다리고 있다. 해당 날짜가 돼야 법안이 자동으로 법제사법위원회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소관 상임위인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위원장이 국민의힘 소속이라 정치적 돌파구 마련은커녕 사실상 ‘시간 때우기’에 의존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반도체특별법은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및 지원에 관한 기본계획 수립 △전력망·용수망·도로망 등 산업기반시설 설치 및 확충 △시설투자·연구개발 인허가 사항 지원 △반도체클러스터 기반시설 정부 지원 강화 △전문인력 양성 및 보호 등이 핵심 골자다.
앞서 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인 지난 4월 “국가 차원의 지원과 투자가 필수적”이라며 “기업들이 반도체 개발·생산에 주력할 수 있도록 법 제정을 서두르겠다”고 약속했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도 이달 10일 삼성전자 평택캠퍼스를 찾아 “미국과 유럽, 일본이 앞다퉈 반도체 지원정책을 내놓고 있는 만큼 우리도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며 “당이 확고히 뒷받침하겠다”고 강조했다.
여야 간 입장 차는 뚜렷했다. 국민의힘은 반도체 산업의 특수성을 고려해 주 52시간 근로시간제 예외를 법안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민주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채 인프라 구축·설비 확충·연구개발 지원 조항만으로 법안을 처리하자고 맞서왔다. 양측의 합의는 불발됐고, 민주당은 본회의에서 패스트트랙 지정으로 우회했다.
고용노동부는 특별연장근로 인가제도를 내세웠다. 반도체 연구개발 분야에 한해 인가기간을 한 번에 6개월씩, 1차례 더 연장이 가능하도록 행정지침에 특례를 신설했다. 또 재심사 기준이 간소화됐고 노동자 건강권 보호를 위해 인가시간을 차등 부여(첫 3개월 주 최대 12시간, 다음 3개월 8시간)하는 내용도 생겼다.
다만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김위상 국민의힘 의원이 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정작 특례를 활용하는 경우는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부 지침 시행 이후 현재까지 특별연장근로 특례 인가는 3건에 그쳤다. 민주당이 추가 근로시간 확대에 대한 쟁점은 해소됐다고 판단했지만 실제는 아니었던 것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에 “민생경제협의체가 꾸려지면 반도체특별법을 논의하려 했다”면서도 “국민의힘이 정부조직법 강행 처리에 반발해 참여하지 않아 일정이 꼬였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민주당 내부에서도 “여당이 야당을 설득할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한 결과”라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산업계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세계 1위인 TSMC, 전 세계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을 장악한 엔비디아 임직원들은 근로 시간의 제약 없이 업무에 몰입한다. 빠르게 성장하는 중국 업체 직원들도 주말 반납을 무릅쓰며 일하고 있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미국은 이미 ‘반도체지원법(CHIPS Act)’으로 대규모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고, 일본과 유럽도 세제 혜택을 확대하고 있다”며 “한국이 입법 과정에서 늦어지면 기업 투자와 인재 확보에서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결국 민주당의 전략 부재와 여야 협상 동력 상실이 맞물리면서 현실은 지지부진하다. 국회 안팎에서는 “11월 내 처리가 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오지만 지난해 7월 법안 발의 이후 1년 4개월 이상 소요되는 셈이다.
여성경제신문 이상무 기자 sewoen@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