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주 더봄] 과시보다 일상의 동반자로 선택했던 내 인생 첫 차는?
[권혁주의 Good Buy] 내 인생 첫차 XM3 과하지 않은 설렘과 유용함 7만2000km를 주행한 지난 5년의 소회
계기판에 적힌 숫자 72000. 지난 5년 동안 내 차의 누적 주행거리다. 기계치에다가 겁까지 많은 나. 살면서 자동차를 몰 일이 있을까 싶었는데, 7만km 넘게 주행했다니 감개무량하다.
운전을 한다는 건 당당한 사회인의 느낌이다. 지하철, 버스 운행표에 내 시간을 맞출 필요가 없고, 두 손에 들고 다닐 짐이 가볍고, 원하는 어디든 갈 수 있는 데다 누군가를 태울 수도 있다. 내게 운전의 의미는,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어른의 여유로 느껴진다.
흔히 ‘남자들의 차’ 하면 드라이빙을 즐기는 취미가 있다거나, 고급 차의 엠블럼으로 나의 재력과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는 목적인 경우가 많은데, 어쩜 이렇게 나는 차에 시큰둥한 건지. '나 혹시 남자가 아닌 건가?' 농담처럼 생각했던 적도 있다. 나에게 차는 이동의 편의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5년 전 지금의 차를 샀다. 르노삼성의 XM3라는 모델이다. 나에게 첫 차는 단순한 소비가 아니었다. 움직이는 케렌시아이자, 가장 비싼 물건이었다. 머리로는 계산기를 두드렸지만, 가슴은 설레었다.
SUV를 탈까, 세단이 나을까. 수입차의 엠블럼이 눈에 아른거렸다. 흔히 ‘하차감’(유명 브랜드 고급 차에서 내렸을 때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과 감탄을 받는 마음)이라고 하는, 그 욕망을 나 역시 꿈꾸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찻값이 한두 푼도 아니고, 그런 고급 차를 홀라당 사 버릴 만한 경제적 여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보험료와 유지비 등의 현실감각을 일깨우며 이 모델 저 모델, 이 유튜브 저 유튜브 영상을 넘나들며 고민하다가 샀던 내 인생 첫 신차가 바로 XM3였다.
XM3를 고른 가장 큰 이유는 ‘척’을 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었다. 많은 의미가 부여되는 다른 자동차 브랜드들의 엠블럼에 비해 르노삼성의 로고는 담백하고 무해하게 느껴졌다. 어떤 해석도 가미되어있지 않은, 막 내린 눈밭 같은 느낌.
외관이 마음에 들었다. 준중형 SUV 특유의 묵직한 자태에 날렵하게 떨어지는 루프라인과 큼직한 휠 아치, 전면부의 절제된 선들은 이 차가 단순한 실용차는 아님을 말해준다. 나름의 엣지가 있지만 과시적이지 않은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다.
가격도 괜찮았다. 내 기준에. 시작가는 2000만원대 초반. 풀옵션도 3000만원을 넘기지 않았다. 디자인과 성능, 적정한 가격의 밸런스가 마음에 들었다. 위시리스트에 넣고 그렇게 시승을 예약했다.
XM3는 다정했다. 운전대는 묵직하고 부드러웠다. 주행감도 생각보다 조용했다. 덩치는 SUV지만 움직임은 세단에 가까웠던 이 차는 복잡한 도심 속 내게 작은 위로가 되었다.
돌이켜보면 매번 그런 걸 인지하지는 않았지만, 이 차를 모는 지난 5년의 평범한 일상들에 '불편한 구석'이 없었다. 출근길 신호 대기, 트렁크에 짐을 실을 때, 누군가를 태워 갈 때. ‘내가 차를 샀구나’하는 기분이 꽤 오래갔다.
흥분이 아니라 안도감에 가까운 만족. 첫 차는 이런 맛이어야 하지 않을까? ‘좋아 보이면서 부담스럽지 않은 차’. 어쩌면 그게 내가 나의 첫 차에 요구했던 미덕이었을지도.
그러므로 이 차에 대한 나의 결론은, '과하지 않은 설렘'이다. 첫 차를 산다는 건 내 생활에 대한 선언이다. 지하철 시간표 대신 내 운전 습관이 기준이 되고, 길 위의 선택들이 모두 내 것이 된다.
XM3는 그 시작점에 서기에 괜찮은 차였고 지금도 그러하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부족하지도 않다. 그래서 좋다. 이 차는 '간절히 바란 꿈’이 아니라 '일상의 동반자'에 가깝다. 내 생각에는 첫 차에 가장 어울리는 찬사는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여성경제신문 권혁주 쇼호스트 kwonhj100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