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우의 핫스팟] 일본 오사카 텐진마쓰리, 1000년 이어온 ‘신과 인간의 계약’

불꽃·배 행렬로 물드는 오사카 여름밤 먹거리·노점 가득, 거리 전체가 축제 신 모시며 모두가 참여하는 천년 의식

2025-09-22     김현우 기자
오사카 텐진마쓰리는 학문의 신 스가와라 노 미치자네를 모시며 천년 넘게 이어온 일본 대표 여름 축제다. 원령을 신격화해 재앙을 막는 일본식 신관에서 출발해 육상·수상 행렬과 불꽃놀이로 도시 전체가 참여한다. 어른·아이 모두 역할을 맡으며 공동체 결속을 다지고 현대에는 관광·경제 효과까지 결합된 도시 운영 플랫폼으로 기능한다. /김현우 기자

7~9월, 일본 오사카 텐만구 일대는 사람 물결로 뒤덮인다. 어른·아이 할 것 없이 신(엄밀히 말하자면 귀신이다)을 모신 가마를 어깨에 메고 거리를 메운다. 저녁이 되면 강 위에 배 행렬이 이어지고 밤하늘에는 불꽃이 터진다. 얼핏보면 여름 축제지만 실제로는 마을의 안전과 질서를 신 앞에 확인하는 의례다. 일본인이 텐진마쓰리에 몰입하는 이유다.

귀신이 탑승했다고 가정한 가마를 시민들이 직접 어깨에 메고 마을을 돌면서 "이번 여름, 남은 한 해도 무탈없이 지내게 해주세요. 노여움을 풀어주세요"라며 기도하는 행사다.

텐진마쓰리의 주신은 학문의 신 스가와라 노 미치자네다. 그는 헤이안 시대 좌천과 요절을 겪었다. 때문에 사후에는 재앙을 일으키는 원령으로 두려움의 대상이 됐다. 일본 사회는 그를 신으로 모셔 달랬다. 그렇게 행사가 만들어졌다.

951년부터는 연례 의식이 정비됐다. ‘호코나가시’라는 의식에서 강물에 상징물을 띄워 신의 뜻을 묻고 그 결과로 마을 행렬의 동선이 정해졌다. 두려운 존재도 신으로 모시면 마을을 지켜준다는 믿음이 일본식 신관의 핵심이다.

오사카 텐진마쓰리는 천 년 넘게 이어진 일본 대표 여름 축제다. 학문의 신으로 모신 스가와라 노 미치자네를 달래기 위해 시작됐고, 낮에는 가마 행렬, 밤에는 배와 불꽃놀이가 펼쳐진다. 어른·아이 모두가 역할을 맡아 참여하며, 공동체 결속과 재난 대비, 관광과 경제 효과까지 담아낸 일본식 지역 축제다. /김현우 기자

텐진마쓰리는 낮에는 육상 행렬 밤에는 수상 행렬로 이어진다. 낮에는 가마가 도심을 통과하며 신이 인간 세상에 왔음을 알린다. 저녁이면 강 위로 배 행렬이 줄지어 선다. 마지막은 불꽃축제다. 화려해 보이지만 본질은 신이 도착하고 떠나는 동선을 도시가 함께 공유한다는 의미다.

텐진마쓰리를 관람만 하는 시민은 없다. 지역 신사 조직, 자치회, 상인회, 학교가 모두 역할을 맡는다. 남성은 가마를 메고 여성과 어르신은 손님을 맞는다. 아이들은 북을 치며 구호를 외친다. 축제 준비가 시작되면 골목 상점 진열이 바뀌고 학교 동아리 연습도 병행한다. 자원봉사 조직도 움직인다. 마을 전체가 축제라는 시스템 안에 들어가는 셈이다. 이날은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도 행사 지원에 나선다.

 

오사카 텐진마쓰리는 천 년 넘게 이어진 일본 대표 여름 축제다. 거리 곳곳엔 먹거리를 파는 노점이 줄지어 서 축제 분위기를 더한다. 공동체 결속과 재난 대비, 경제 효과까지 담아낸 일본식 지역 축제다. /김현우 기자

텐진마쓰리 행렬 동선은 교통 통제로도 이어진다. 안전 경찰이 아닌 시민 자원봉사가 관리한다. 기업도 후원에 나서고 지자체는 관광 홍보에 활용한다. 종교적 의례가 곧 도시의 역량을 시험하는 장치가 된다. 일본에서 마쓰리를 ‘지역 유지 시스템’이라 부르는 이유다.

태풍·홍수·화재가 잦은 일본에서 재난은 일상적이다. 텐진마쓰리는 여름철 재해 위험기에 공동체의 결속과 대응력을 점검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대규모 인파가 몰리면 상업화 논란도 따른다. 해서 지자체는 의례와 상업을 분리한다. 의례는 신사와 운영위원회가 통제하고 상업 활동은 동선 밖으로 배치한다. 지자체와 상인회가 안전 기준을 마련해 통제한다. 

신을 모신 가마 행렬과 강 위의 배 퍼레이드, 화려한 불꽃놀이가 이어진다. 골목마다 야키토리와 오코노미야키 같은 먹거리 노점이 들어서며, 어른과 아이가 모두 역할을 맡아 참여한다. 단순한 볼거리를 넘어 마을의 안전과 결속을 확인하는 의례이자 도시 경제를 살리는 장치다. /김현우 기자

한국에도 조상 제례, 마을 당산제가 있다. 하지만 일본과 다른 점이 있다. 한국은 조상·자연신·수호신을 구분해 모신다. 일본은 두려운 존재까지 신으로 편입한다. 한국은 가문이나 일부 중심이지만 일본은 도시 전체가 역할을 배당받는다. 한국이 추모에 방점이 찍힌다면 일본은 재난 대비와 경제 활성화를 함께 묶는다.

텐진마쓰리는 신앙이 아직도 일본 사회를 지탱한다는 증거다. 동시에 전통이 도시 운영의 언어로 번역될 수 있다는 점, 단순 관람보다 시민의 참여가 공동체를 강하게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한국 지역 축제도 성장했지만 의례·운영·경제를 하나로 묶는 설계는 부족하다. 역할 분담, 안전 체계, 세대별 참여가 필요하다. 텐진마쓰리는 종교적 토대가 약한 일본 사회에서도 공동체에 적용할 수 있는 운영 모델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한 번쯤 경험해 볼만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여성경제신문 김현우 기자=일본 오사카 hyunoo9372@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