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버스 떠난 美 관세 맞으며 IMF 대책 마련이 현실적

3500억 달러 투자, 이미 소멸한 카드 관세 충격은 곧 외환 불안으로 직결 보유 규모보다 심리가 먼저 흔들려 통화스와프 운운 약점만 보이는 것 외환 위기도 기대 붕괴에서 시작돼

2025-09-22     이상헌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국무회의 참석을 위해 이동 중인 모습을 10일 SNS에 공개했다. / 이재명 대통령 SNS

정부가 대미 협상에서 내세운 ‘3500억 달러 투자 카드’는 이미 한계에 봉착했다. 지켜지지 못한 약속은 정치적 수사에 불과할 뿐 국제 금융시장에서 신뢰할 만한 방패가 되지 못한다. 향후 5년간 2400억 달러 투자 및 현지 공채 계획까지 발표한 현대자동차가 그 증거다. 한화오션, HD현대, 삼성중공업이 뛰어든  마스가(MASGA) 프로젝트도 정부의 궤도를 이탈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22일 로이터 인터뷰에서 “통화스와프 없이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하는 방식대로 3500억 달러를 현금으로 인출해 투자한다면 한국은 금융위기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고 언급한 대목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정부 스스로도 투자 공약이 감당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한 셈이다.

문제는 관세다. 협상 실패에 따른 25% 이상의 보복 관세는 이미 현실로 다가와 있으며, 그 충격은 투자 약속보다 훨씬 빠르고 구체적이다. 자동차·기계·철강 등 핵심 품목에 집중된 대미 수출 구조를 고려하면 피해는 단순한 가격경쟁력 약화에 그치지 않는다. 수출 물량 자체가 급감하고 외환 유입이 줄어들면서 금융 불안으로 직결된다.

이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약 4160억 달러지만, 대미 수출 규모는 연간 1280억 달러에 이른다. 25% 관세로 수출이 30%만 줄어도 연간 달러 유입 손실이 384억 달러에 달한다. 절반이 줄면 640억 달러다. 이는 단순 계산만으로도 외환보유액을 단기간에 갉아먹을 수 있는 수준이다. 외환시장 방어에 개입할 경우 보유액이 빠르게 소진되고 시장 신뢰는 더욱 취약해진다.

관세는 외환시장에 세 갈래 경로로 충격을 가한다. 첫째, 수출 급감으로 달러 유입이 감소한다. 둘째, 원화 약세가 심화하면서 수입물가가 상승하고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진다. 셋째, 외국인 투자자들이 주식·채권에서 빠져나가며 자본이탈이 현실화된다. 단기 무역 충격이 자본시장 불안으로 번지고 결국 환율 방어 개입으로 외환보유액 축소라는 악순환이 열린다.

미국의 연구들도 이를 뒷받침한다. 전미경제연구소(NBER) 등은 관세 인상이 생산·고용·투자를 동시에 위축시키며, 금융과 실물경제를 함께 훼손한다고 지적한다. 단순한 무역 손실을 넘어 외환(FX) 수급의 구조적 악화를 불러오는 것이다.

외환보유액 소진 우려를 막기 위해 원화 국채를 발행하거나 달러 표시 채권을 발행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그러나 국채는 환율 급등을 촉발할 수 있고, 달러 채권은 CDS 프리미엄 상승으로 비용이 급증한다.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면 조달 자체가 녹록지 않다.

경제학계에서도 우려가 나온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는 “국제통화기금(IMF) 금융구제가 한미관계가 악화한 상황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을 생각해볼 때 미국과의 관계가 틀어지면 어떤 불이익을 감수하게 될지 불명확하다”며 직접투자를 완충할 외국환평형기금채권 발행을 옵션으로 제기했다.

정부가 한미 통화스와프 운운할 것이 아니라 기업이 나서서 차입 등을 통해 외화를 조달해 투자하는 방식으로 국내 외환시장에 주는 충격을 줄여야 한다는 얘기다. 이는 단순히 투자 이행 여부의 문제가 아니라, 관세 충격과 외환 방어의 연결고리를 어떻게 국제사회에 설득력 있게 보여주느냐가 관건임을 시사한다.

단기적으로 외평기금채 발행이나 민간 차입은 일시 충격을 완화하는 방안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미봉책이다. 국채 발행은 환율 불안을 자극할 수 있고, 기업 차입은 금리 부담을 통해 민간의 재무건전성을 훼손한다. 결국 이런 조치들은 외환시장의 구조적 불안 심리를 치유하지 못한 채 잠시 시간을 벌어주는 역할에 그친다.

관세로 인한 충격이 본질적으로 위험한 이유는 무역수지 적자나 유동성 부족을 넘어 금융시장의 신뢰 위기로 직결된다는 점이다. 시장이 ‘한국은 달러를 벌 능력을 잃었다’고 판단하는 순간 외환보유액의 절대 규모와 상관없이 투기적 공격과 자본유출은 가속화된다. 이는 IMF 위기 당시 경험이 증명한다.

결국 일본처럼 관세를 정면에 놓고 문제를 풀어야 하지만, “일본과 다르다”는 주장을 반복하는 한국 정부의 협상 전략에 기대는 건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이미 관세로 인한 수출 차질과 환율 불안은 현실화됐고 이를 되돌릴 여지는 좁아졌다. 미국이 관세를 거둬들일 가능성은 낮고, 한국 정부의 대응은 늦고 분산돼 있다.

국제 금융질서의 원칙은 ‘리스크 기반 접근’이다. 미국 연준은 자국 경제가 달러 경색에 직면했을 때만 비기축국에 스와프를 허용해 왔는데, 이번 사안은 그런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이재명 대통령의 무제한 통화스와프 언급도 역설적으로 스스로 돌파구가 없음을 고백한 셈이다. 투자 카드도 관세 카드도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만 드러낸 것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막연한 약속이나 외환 방파제 구축이라는 추상적 구호가 아닌, 피해 최소화 전략으로의 전환뿐이다. 25% 관세 충격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고, 통화스와프는 애초에 기대할 수 없는 선택지다. 환율 방어를 위한 투명한 비상대책이 정부의 마지막 카드지만 그조차 골든 타임을 놓쳐버린 지금은 공허한 선언에 불과하다.

결국 한국은 스스로의 힘으로 버틸 수밖에 없고, 그 실패의 대가 또한 전적으로 감당해야 한다. 뒤늦게 품목별 충격 시나리오를 공개하거나 외환유동성 계획을 내놓는다 해도 그것은 이미 버스를 놓친 뒤의 ‘시장 달래기’에 불과하다. 수출선 다변화니 외화채 발행이니 하는 대책도 현실에선 모두 비용과 불신을 키우는 방편일 뿐이다. 정치권도 국익이란 수사 뒤에 숨을 게 아니라 시장의 냉정한 심판을 받아들여야 한다.

여성경제신문 이상헌 기자 liberty@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