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항로 열차 타는 의원들···美 알래스카 노선 이탈로 비칠 것

美 알래스카 LNG 구상 흔들 ‘이탈 신호’ 韓 가스공사는 직수입 증가, 전략 모순 여야, 지역 중심 항만 경쟁 돌입 설레발

2025-09-19     이상헌 기자
루이지애나주에 있는 벤처 글로벌(Venture Global Inc.)의LNG 수출 시설. /AP=연합뉴스

이재명 정부가 북극항로 개발에 발을 들이밀면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LNG 프로젝트에서 한 발 물러서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러시아가 주도하는 북극항로 사업과 미국의 알래스카 유전 개발이 아시아 시장 선점을 두고 충돌하는 구도에서 한국의 선택이 외교·안보 변수로 작동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19일 조선업계 등에 따르면 러시아는 이미 세계에서 유일하게 핵추진 쇄빙선을 보유하고 있다. 북극항로의 상업 운항은 쇄빙선 없이는 불가능하다. 푸틴 대통령이 북극항로를 미래 성장축으로 내세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북극해를 통한 LNG와 원자재 수송 루트를 확보하면 알래스카 LNG보다 더 짧은 거리와 낮은 비용으로 아시아 시장을 장악할 수 있다.

미국은 알래스카에서 생산한 LNG를 일본과 한국에 공급하려는 장기 프로젝트를 추진해 왔다. 그러나 건설비와 운송비 부담 탓에 사업이 수차례 지연됐다. 반면 러시아는 야말 LNG와 기단 프로젝트를 통해 이미 일부 물량을 아시아에 수출하고 있으며 북극항로 상업화만 성공하면 미국 프로젝트의 수익성은 더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한국이 러시아 북극항로 개발에 협력하는 모습은 3500억 달러 대미 투자 거부와 함께 미국 알래스카 LNG 구상과의 ‘이탈’ 신호로 읽힐 수 있다. 더구나 최근 한국의 미국산 LNG 직수입이 빠르게 늘고 있는 만큼, 이러한 행보는 워싱턴 입장에서 전략적 모순으로 비칠 소지가 크다. 에너지 외교에서 줄타기를 하는 한국 정부 입장에선 미묘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지난 8월 최연혜 한국가스공사 사장은 미국 트라피구라·셰니어와 연 330만t 규모의 장기 도입 계약을 체결하며 ‘텍사스 직수입’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산 직수입 확대는 천연가스 가격 안정과 수급 다변화라는 성과를 내지만 동시에 러시아 북극항로 논의와 겹치면서 한국의 에너지 전략이 워싱턴과 모스크바 사이에서 ‘엇박자’ 스텝으로 읽히는 딜레마를 노출시키고 있다.

미국과 단절하기엔 북극항로의 경제성도 문제다. 실제 상업 운항은 여전히 불확실하며, 여전히 국제 제재를 받는 러시아는 LNG 운반선을 확보하기 어렵다. 보험과 금융 지원도 막혀 있다. 중국이 참여하지 않으면 러시아 단독으로는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점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전재수 장관 체제 해양수산부가 북극항로 논의에 나서는 것은 물류 비용 절감과 신항로 확보라는 매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에즈 운하를 우회해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경로가 확보되면 조선·물류 업계에 기회가 열린다. 특히 조선업계는 쇄빙선과 특수 운반선 수주를 기대하고 있다.

그럼에도 지정학적 위험은 분명하다. 러시아가 북극항로를 ‘패권 도구’로 삼는 순간 미국은 이를 곧장 전략적 위협으로 간주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대러 제재망에 한국이 스스로 엮일 수 있는 리스크다. 중국 리스크도 크다. 러시아는 북극항로 개발에 중국 자본과 선박을 끌어들이고 있으며, 이를 통해 ‘북극 실크로드’를 강조한다.

한국이 참여하면 중국-러시아 블록과 간접적으로 연결되는 그림이 된다.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북극항로 참여를 확대하면 한국은 사실상 미국 대신 중국과 러시아 편에 서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북극항로를 단순히 상업적 논리로 속여 넘어갈 수 있는 시대는 끝났다"고 지적한다. 에너지 안보와 외교 안보가 얽혀 있는 복합 방정식이라는 의미다.

한편 전일 발표된 이재명 정부 국정과제에 ‘북극항로 시대를 주도하는 K-해양강국 신설’이 포함되며 여야 의원들도 북극항로 이슈 편승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부산·울산·여수광양·포항 등 주요 항만을 중심으로 주철현·조계원·권향엽이 공동 포럼 준비에 나서고 있으며, 포항 지역구의 김정재 국민의힘 의원 역시 북극항로 특별법을 발의했고 이달 말쯤 유사 세미나를 개최할 예정이다.

여성경제신문 이상헌 기자 liberty@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