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美 3500억 달러 투자는 어떻게 ‘자동 결제’되는가
국채·금리·환율이 얽힌 루프 구조 분석 내년에 풀릴 200조 가계부채로 악순환 외환 프레임 IMF 트라우마 자극일뿐 정작 대통령은 도장 없이 알림만 확인
이재명 정부는 대미 투자가 외환보유액을 깎아먹어 금융 불안을 초래할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정작 국민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건 달러가 아니라 원화 이자다. ‘국채-금리-대출-가계’로 이어지는 자동 결제 루프(Phase-Locked Payment Loop)가 돌아가기 때문이다.
작동 원리는 단순하다.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면 → 시장은 “더 많이 빌리려면 더 비싸게 갚아라”라며 금리를 올리고 → 은행은 즉시 대출 금리를 연동해 조정한다 → 그리고 매달 국민 계좌에서 이자가 자동이체된다. 이름하여 ‘국채 기반 이자정산 시스템’이다.
코로나19 때 무차별 발행한 적자 국채가 이미 선결제 항목이다. 100조 원에 달하는 빚은 만기 도래 채무라는 청구서가 되어 내년에 돌아온다. 여기에 이재명 정부가 추가로 발행할 100조 원 규모의 국채가 장바구니에 담기면 금리 인상 압력은 한층 더해진다.
기획재정부는 외국인과 보험사의 수요를 근거로 “국채는 시장에서 안정적으로 소화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국채가 잘 팔리는지 시선을 돌리며 이자가 은행과 기업을 거쳐 서민 가계로 전가되는 현실을 가린다. 금리가 0.1%만 올라가도 대출자의 부담은 매달 수십만 원씩 늘어나는데, 정부는 이를 “안정적 관리”라는 말로 포장하고 있다.
또한 “GDP 대비 국채이자비용이 1% 수준에 불과하다”라는 설명도 체감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국내총생산(GDP) 숫자로 평균을 내면 작아 보일 뿐, 실제로는 가계부채 세계 1위 구조와 맞물려 매달 내야 하는 이자 고통은 변하지 않는다. 정부가 신용평가사의 ‘AA 안정적’ 등급을 인용하며 위기를 축소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신용평가사는 국가 전체의 상환능력만 본다. ‘국가 신용은 안정적’이라는 말은 곧 ‘국가는 버티지만 매달 이자를 납부하는 국민은 쓰러진다’는 역설로 바뀐다.
한국 가계는 이미 GDP의 100%를 넘는 세계적 수준의 부채를 짊어지고 있다. 주택담보대출, 전세대출, 신용대출이 모두 국채 금리와 연동돼 있어 국채 발행이 늘어날수록 이자율은 상승하고 가계는 ‘빚 위에 빚’이 얹히는 상황에 내몰린다. 특히 변동금리 비중이 높은 구조 탓에 금리 변동이 거의 실시간으로 가계에 전가된다.
국가 부채는 재정 문제를 넘어 가계부채 위기를 증폭시키는 도화선이 된다. 한 번 오른 이자는 좀처럼 내려오지 않는다. 가계는 몇 년간 고착된 이자 부담을 떠안고 미래 소비와 저축까지 줄일 수밖에 없다. 기업도 다르지 않다. 회사채 금리를 끌어올려 중소기업의 자금줄을 막고 대기업조차 국내 투자를 축소하게 만든다. 고용 축소와 생산 둔화가 뒤따르며 결국 국민 생활은 궁핍해진다.
겉보기에는 국채 금리가 오르면 외국인도 더 높은 이자를 받을 수 있어 매력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외국인 투자자는 “금리는 높지만, 원화 가치가 떨어져 달러로 환산한 수익은 깎인다”는 점을 우려한다. 이들이 달러로 안전자산을 갈아타며 원화 약세 → 환율 급등 → 수입물가 상승이 ‘자동 결제’로 이어진다.
국채 금리 상승은 외국 자본을 끌어들이기는커녕 오히려 “이 나라의 재정 위험이 커지고 있다”는 신호로 작동해 자본을 달러 안전자산 쪽으로 밀어낸다. 원화 약세가 심화되면 환율발 물가상승이 고착화되고, 국채발 대출금리 인상과 맞물려 국민 경제는 ‘이자+물가’ 이중고를 피할 수 없다. 더블 차징 구조다.
자본 유출 루프는 다시 국채시장으로 되돌아온다. 외국인 이탈이 심화될수록 정부는 더 높은 금리로 국채를 발행해야 하고, 이자 부담은 환율에 또 다른 압박을 가한다. 국채·환율·물가의 악순환이 구조화되는 순간 문제는 재정 적자를 넘어 금융 시스템 위기로 비화한다.
이런 가운데 정부와 언론은 3500억 달러 대미 투자 중단을 합리화하기 위해 외환보유고를 언급하며 IMF 트라우마를 자극한다. 미국이 현금 투자를 요구한다는 보도는 곧바로 ‘외환보유액 소진 → 위기’라는 프레임으로 비약되고, 대만·홍콩과의 GDP 대비 보유액 단순 비교는 한국의 취약성만 부각한다.
아이러니는 3500억 달러 대미 투자를 결제할 도장이 정작 이재명 대통령 손에는 없다는 점이다. 시중은행이 금융지원을 확대해도 기업은 트럼프의 관세를 피해 미국 현지 직접 투자를 늘릴 수밖에 없다. 한화오션과 HD현대가 참여하는 마스가(MASGA) 프로젝트와 현대차가 정부와 별도로 약속한 31조 원 규모의 투자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 현지 투자는 기업이 살기 위해 스스로 찍는 자동 승인이고 정부는 ‘결제 완료’ 알림만 확인하는 셈이다. 한국 정부의 정치적 구호와 무관하게 시스템은 굴러간다. 금융지원이 아무리 강화돼도 결과는 같다. 국내 산업에 묶여야 할 자본은 미국으로 빨려들어가고, 국내 제조업은 중국의 저가 공세에 밀려 몰락한다. 진짜 국민의 고통은 ‘외환고갈’이 아니라 개개인의 대출 이자와 물가 청구서라는 얘기다.
여성경제신문 이상헌 기자 liberty@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