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헌정 더봄] 수영장 텃세, 다들 극혐하는 수영장 꼴불견

[박헌정의 원초적 놀기 본능] 우리 동네 수영 고수에 도전하기 (6) "수영장은 좋은데 텃세 때문에 미치겠어요"

2025-09-20     박헌정 작가

누가 내게 자기 친구를 소개해 주겠다고 한다. “사양할게. 우리끼리나 잘 지내자.” 몸과 마음이 강하던 시절에는 누구든 반가웠지만 나이 들수록 사람 만나는 게 별로다. 사람 많은 곳도 피곤하다. 때론 신경 긁는 인사들까지 있어 스트레스받는다. 수영장에서도 그렇다. 맨몸에 수영복 한 장 입었을 뿐인데도 성장 배경, 성향, 생각이 그대로 드러난다. 수영장에서 마주치는 꼴불견들 모습은 어떨까?

어디서나 제멋대로인 사람들

영화 <달마야 놀자>에서 노스님(김인문 분)이 조폭들에게 내준 화두는 ‘밑 빠진 독에 물을 가득 채우라’였다. 이놈들, 깨진 항아리에 죽자 살자 물을 퍼붓다가 드디어 연못에 항아리를 던져넣을 생각을 해냈다. 연못의 물은 모든 것을 품었지만, 수영장 물은 조금 다른가 보다. 바깥에서 새는 바가지는 수영장에서도 새고 있었다.

우선 ‘더러운 사람’이 최악이다. 다 함께 몸 담그고 때로는 먹기도 하는 수영장 물인데 샤워 안 하거나 씻는 척만 하고 들어오는 사람들, 얼마나 미운가!

레인 매너가 제멋대로인 경우도 있다. 좁은 레인에서 양방향으로 교행(交行)하려면 우측통행해야 하는데 가운데로 가며 레인을 독점하고, 중간에서 갑자기 멈춰 통행을 방해하고, 속도가 느리면 끝에서 잠시 멈추고 다른 사람을 먼저 보내주면 좋으련만 두꺼비처럼 떡 버티고 전체를 막는다.

초보자라면 이해하겠지만 수영을 오랫동안 했다는 사람들이다. 힘들어 양쪽 끝에서 잠시 쉴 때는 턴 하는 사람이 방해받지 않도록 한쪽에 바짝 붙어야 하건만 막고 서서 수다 떠는 사람들도 있다. 서로 욕하면서 서로 범하니 정말 개선되지 않는다.

누가 가르쳐 달랬나요?

때론 오지랖이 분위기를 나긋나긋하게 풀 수도 있지만, 대부분 선을 넘는 게 문제다. 수영장 오지랖은 나이가 더 많거나 수영장에 오래 다닌 사람의 평가질과 훈수로 시작된다. 상대방을 빤히 쳐다보다가 칭찬부터 한다. 그러곤 “잘하는데, 이건 이렇게 한번 해봐요”라며 알려준다. 가끔 도움도 된다. 하지만 자격과 권위가 없는 가르침에는 무게가 실리지 않는다.

그다음부터는 친구도 뭣도 아닌 관계인데 슬쩍 말 놓고 사사건건 간섭한다. 이런 접근은 길에서 스티커 붙여달라거나 물휴지 주며 모델하우스 구경 오라는 식의 영업적 접근과는 다르다. 나랑 친해지고 싶은 걸까, 자기가 심심해서 그러는 걸까?

우리 세대는 그래도 좀 익숙하지만, 젊은 층은 이런 걸 ‘질척댄다’라면서 끔찍이 싫어한다. 그래선지 수영 3대 물품인 수영복, 수영모자, 물안경 외에 요즘은 귀마개도 종종 보인다. 정말 물을 막기 위한 것일까? 혹시 ‘안 들리니 말 시키지 말라’는 의사표시 아닐까?

텃세, 못난이들의 의리

이런 것쯤이야 모르는 척하면 된다. 그런데 수영장에 계속 다닐지 고민하게 되는 최악의 꼴불견은 ‘텃세’다. 비교적 여유롭고 한가한 시간대에 가 보면 일명 터줏대감, 요즘 말로 ‘고인물’ 무리가 보인다. 주로 같은 강습반 출신들이다. 오랜 시간 함께하면서 단체 수영복과 수모는 기본이고, 회식, 때론 여행도 다닌다. 강습 때는 강사를 독차지하려 들고, 아예 새로 온 강사를 길들이기까지 한다.

텃세는 처음에 ‘자리’부터 시작된다. 같이 줄지어 수영하면서 다른 사람이 끼어들면 눈치 주며 뒤로 가라고 한다. 느릿느릿 길 막고, 답답해서 먼저 나가면 눈치 주며 한마디씩 한다. 수업을 원활하게 진행해야 하는 강사가 순서를 조정해 주면 그때부터 눈꼬리가 올라간다.

탈의실이나 휴게실에서도 시원하고 쾌적한 자리는 ‘우리 구역’이라고 우기고, 부족한 샤워기, 드라이어, 선풍기 등을 독점한다. 자기들끼리 웃고 떠들다가도 누가 ‘좀 친해져야겠다.’ 싶어 조심스레 끼어들면 바로 냉랭해진다. 유치함의 극치다.

요즘은 공공 수영장이 많아지면서 텃세도 많이 줄었다고 한다. ‘시민 모두의 것’이라는 인식과 함께 운영 기준도 명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영난에 허덕이는 오래된 사설 수영장은 고참 회원들에게 휘둘리기 때문에 텃세로 마음 상한 사람들의 항의가 이어져도 대책 없이 속만 앓는다. 제지했다가는 다른 데로 옮길 테고 동네방네 악소문 퍼뜨릴 것이다. 급기야 풀 안에서 냉커피 배달시켜 마시며 잡담한다는 사례까지 들어봤다.

텃세는 악성종양이다

텃세의 원인을 찾아보니 별것 없다. 아무래도 구세대일수록 나이와 경력, 즉 ‘짬밥’으로 서열화하려 할 것이다. 또한 사회활동 범위가 작을수록 자기 집단에 대한 애착이 크다. 그러므로 텃세는 느슨한 공간에서 나타나는 비합리적인 단합이다.

내가 초급부터 최상급까지 올라갔던 목동 어느 수영장의 저녁반. 회사원, 자영업자, 학생, 교사, 교수 등 바쁜 사람들이 모여 짧은 시간에 자기 운동을 하고 돌아갈 때는 텃세 같은 게 낄 틈이 없었다. 덕분에 오히려 다들 매너 있고 정답게 지냈다. 새벽반에도 텃세는 없고, 대형 공립 수영장에도 발붙이기 힘들다. 작고 오래된 동네 수영장의 오전 시간대, 이게 텃세의 주요 공간이다.

빌런은 어디에나 있지만, 받아주는 사람이 없으면 ‘요주의 인물’로 남을 뿐이다. 하지만 둘 이상 뭉치면 이게 악성종양으로 자리 잡는다. 학교폭력이나 왕따 문제와 똑같다. 그 세상에도 나름의 규칙과 질서가 있다. 처음에는 관행, 정(情) 같은 걸로 시작하지만, 차츰 강화되면서 처음에는 그럴 수도 있겠다 싶던 게 점점 사익과 특권의식이 짬뽕 되고, 결국 눈뜨고 못 볼 지경에 이른다.

느슨한 공간일수록 텃세가 심하다. 텃세는 약한 이들이 뭉쳐 보편적 질서와 규범 이외의 방식으로 자기 영역을 지키려고 하는 몸부림이기 때문이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아내의 요가학원 첫날 경험담이다. 앞자리에 앉자 자기네 자리라며 뒤로 가라고 하고, 강사가 시키는 대로 브리지 자세를 해 보이자 “그거 되면 떡 돌리는 거”라며 다음 시간에 떡을 사 오라고 했단다. 친해지자는 표현이었을까? 대체 언제 봤다고, 뭘 해줬다고? 초면부터 반말도 배부르게 들었고, ‘언니들’이 반말을 하니 어린 것들도 반말 비스름하게 하더란다. 황당하고 불편하고 상황이 바뀔 것 같지도 않아 얼마 후 필라테스로 갈아탔다.

텃세에 대해 우리 대부분은 똥이 무서워 피하냐는 심정으로 못 본 척한다. 맞서는 사람도 가끔 있다. 어떤 실체적인 힘이 있는 무리가 아니라서 항의, 민원, 소송 등을 통해 혼쭐 내면 와르르 무너지나 보다. 몇 년 전에 수영장 텃세 문제가 공론화된 것도 이 때문이고 덕분에 많이 개선되기도 했다. 아니면, 막가파식으로 붙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겨서 깨부순들 통쾌할까? 하나하나 뜯어보면 아무것도 아닌 약하고 밋밋한 알갱이들의 결합체일 뿐인데.

물론 “네, 네.” 순응하며 따라다니면 언젠가 나도 고참이 되고, “여기 자리 맡아놨어요.” 소리를 들을 것이다. 그러면서 텃세는 세대교체와 대물림으로 강화된다. 그러다 임자 만나서 한번 크게 깨지거나, 또는 운 좋게 평생 그런 작은 행복감 속에 살거나 둘 중 하나다. 누가 욕하든 말든 말이다.

여성경제신문 박헌정 작가 portugal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