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웅익 더봄] 단양으로의 추억 여행을 다녀와서

[손웅익의 건축마실] 여행의 진한 아쉬움으로 남은 1인 식사 메뉴 없음

2025-09-22     손웅익 건축사·수필가
도담삼봉의 신비로운 분위기 /그림=손웅익

내가 처음으로 단양에 가 본 것은 1979년 여름이다. 건축과 동기 중에 단양 매포가 고향인 친구가 있었다. 당시 그 친구 부모님은 단양 매포에 살고 계셨다. 그해 여름 건축과 동기 둘이서 그 친구 집으로 놀러 가게 되었다. 동네 주변에 있는 큰 돌산은 능선이 다 드러나 있었고, 거대한 시멘트 공장이 여기저기 보이고 돌먼지가 날리는 좀 심란한 동네였다.

그러나 멀지 않은 곳에서 만난 도담삼봉은 그야말로 선경이었다. 물 위에 떠 있는 세 봉우리 중에 가운데 봉우리에 있는 누각에 올라가서 사진도 찍고 근처 석문도 구경했다. 도담삼봉이 2008년에 명승 44호로 지정되었다고 하니 우리가 도담삼봉에 오르고 누각에서 사진 찍던 때는 명승으로 지정되기 전이어서 가능했던 모양이다. 수억 년의 시간이 만든 고수동굴의 감동도 오랜 시간 기억에 남았다.

내가 다시 단양을 가게 된 해는 건축사사무소 고참 시절이던 1987년이다. 당시 사귀던 여학생의 대학원 졸업논문 주제가 ‘신도시 건설에 대한 사례연구:신단양을 중심으로’였다. 충주댐으로 수몰된 해발 148미터 아래 원단양 지역의 문제와 수몰로 인해 대를 이어 살았던 삶의 터전을 떠나 새로운 정착지인 신단양 지역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이주민들에 관한 연구였다.

그때 사진도 찍고 여러 가지 조사를 도와준다는 핑계로 동행했던 그 여학생과 나는 지금도 같이 살고 있으니 단양이 맺어준 인연이라고 하겠다.

단양팔경 중 하나인 사인암 /그림=손웅익

이십여 년 전에 영월에 현장답사를 갈 일이 있었다. 초가을이었다. 서울에서 이른 새벽에 출발해서 도담삼봉에 도착했더니 안개에 싸인 도담삼봉은 그야말로 한 폭의 동양화였다. 주변은 안개에 잠겨 있고 삼봉만이 구름 위에 뜬 듯한 그 선경을 잊을 수가 없다.

단양에서 영월로 가는 길은 남한강 상류 물줄기를 따라간다. 마침 전날 밤에 비가 많이 와서 남한강 변의 절벽은 장대한 천연 폭포로 변해 있었다. 청명한 햇살 아래 옥수수밭이 펼쳐지고 잠자리가 날던 그 가을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며칠 전 오랜만에 단양에 가게 되었다. 이제 운전이 부담스러운 나이가 되었는데 마침 단양까지 KTX로 갈 수 있게 되었다. 자가용으로 가면 3시간은 족히 걸리는 거리인데 청량리역에서 1시간 반 만에 단양역에 도착했다.

택시 기사에게 단양읍내로 가는 길에 도담삼봉을 보고 싶다고 했더니 흔쾌히 안내하겠다고 했다. 심지어 사진을 찍어 주겠노라고 하니 관광지라는 게 실감이 났다. 청명한 하늘과 솜사탕 같은 구름이 남한강에 그대로 반영되어 하늘과 물이 구별 안 되는 선경 속에 도담삼봉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이번 여행의 주목적은 단양읍내 다누리센터에 있는 다누리아쿠아리움을 보기 위해서였다. 90억원을 들여서 대대적으로 리모델링한 이후에 관광객이 많이 늘었다는 기사가 인터넷에 자주 떠서 그 실체가 궁금했다.

다누리센터에 도착하니 정오가 가까웠다. 이른 점심을 먹고 나서 천천히 돌면서 아주 꼼꼼하게 아쿠아리움을 분석하기로 하고 택시 기사에게 식당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 짐작은 했지만 혼자 식사할 곳이 거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관광지라서 그렇다고 하면서 올갱이(다슬기의 사투리)국을 하는 집은 혼자 먹을 수 있을 거라 했다.

단양에서는 꼭 먹어봐야 한다는 떡갈비의 꿈이 여지없이 깨져버렸다. 식당에 들어갔더니 1인 메뉴는 올갱이국밖에 없다고 했다. 과연 메뉴판에는 전부 ‘2인 이상 주문’이라고 되어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주문한 올갱이국은 맛도 없었을뿐더러 몇 개 안 되는 연두색 올갱이를 세면서 먹었다.

내가 처음 왔던 40여년 전과 비교하면 단양은 많이 변했다. 단양팔경에 더해 국내 최장 시루섬 출렁다리가 개통되었다. 남한강을 내려다보며 구름 위를 걷는듯한 만천하스카이워크와 전망대도 만들었고 국내 최대 민물고기 수족관도 있다.

요즘 지자체마다 시니어 관광객 유치를 위해 많은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그동안 관광지엔 단체 관광객이 대부분이었지만 앞으로는 1인 시니어 관광객들의 추억 여행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들은 SNS에 능숙하고 그들이 올리는 유튜브 영상은 날로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여행에서 음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이번 단양 여행에서는 멀건 올갱이국이 인상적인 기억으로 오래 남을지도 모르겠다. 가끔은 약한 바람에도 흔들리는 갈대와 같은 관광객들의 마음을 단양은 잘 헤아려야 할 것이다.

여성경제신문 손웅익 건축사·수필가 wison77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