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통화스와프, 재판대 오른 한국은행···정부와 상담소 개설?

트럼프 전혀 관심 없는 국내용 메시지 외환보유 소진 아닌데 유언비어 확산 IMF 트라우마 자극, 시장 불안만 키워 용산발 자가발전에 발 묶인 통화당국

2025-09-17     이상헌 기자
한국은행 본점 전경 /여성경제신문DB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의 ‘무제한 통화스와프’ 역제안에 냉담한 반응을 보이면서 통화정책 기관인 한국은행까지 재판대에 오른 모양새다. 외환보유액을 직접 소진하는 구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스스로 만들어낸 방어 논리가 한은을 끌어들이며 정치적 부담으로 확산하는 양상이다.

17일 재계에 따르면 한미 관세 협상 결과로 등장한 3500억 달러 대미 투자 요구는 당초 기업 몫이었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가 ‘외환보유액 84%에 해당한다’면서 마치 국가 차원의 자금조달 과제인 양 포장했다. 여기에 대한 대응 카드로 ‘무제한 통화스와프’가 꺼내졌다.

하지만 통화스와프는 위기 발생 시 한시적으로 발동되는 장치일 뿐, 즉각적인 투자 재원으로 쓸 수 있는 수단이 아니다. 미국 역시 한국 같은 비기축통화국과 상설 무제한 스와프를 체결할 유인이 없다. 이미 일본·유럽·영국 등 5개국 중앙은행에만 개방돼 있는 제도다.

일본이 미국에 약속한 5500억 달러 투자 역시 보유액의 42% 수준이지만 스와프 활용보다는 자체 현금흐름과 금융시장 차입이 우선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가 스와프를 마치 현실적 대안처럼 띄우면서 시장의 혼란만 키우고 있다.

이날 한은이 내놓은 “정부 및 관계기관과 협의 중”이라는 설명은 사실상 미국과의 협상이 아닌 내부 조율을 뜻한다. 한국은행 내부에는 뉴욕 연준과 직접 맞닿는 국제협력 라인과 기재부와 호흡을 맞추는 정책 라인이 공존한다. 이런 상황에서 한은에서 나온 메시지는 자칫 '구색 맞추기' 혹은 '외환시장 개입을 위한 준비 작업'으로 비칠 수 있다.

전문가들은 “통화스와프는 외환시장 안정장치일 뿐 투자 자금 조달과는 별개”라며 “3500억 달러 투자를 막아낼 만병통치약으로 포장하는 순간 오히려 협상력이 약화된다”고 지적한다. 기업이 미국에서 집행하는 투자는 현지 법인 차입, 미국 자본시장에서의 조달, 자체 현금 흐름을 통해 진행되는 것이 원칙이다. 따라서 외환보유액이 직접 소진되는 구조가 아니다.

물론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 지적처럼 한국이 비(非)기축통화국인 만큼 환율 불안정성에 취약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2025년 7월 기준 외환보유액의 71.9%가 달러 자산으로 구성돼 있으며 이는 주로 미국 국채와 예치금 등 안전자산 중심으로 운용된다. 

미국 스콧 베센트 재무 장관의 카드로 거론되는 ‘현지 수익의 미국채화’ 모델 역시 미국 내에서 발생한 달러 자금을 현지에 묶어두는 방식이어서, 본국 외환보유액에 직접적으로 잡히는 성격이 아니다. 결국 무제한 스와프 주장은 외환위기 트라우마를 자극해 관세 협상 실패를 미국 탓으로 돌리기 위한 국내용 메시지 성격이 강하다.

이재명 정부는 외환차익과 기업 지배권을 노리고 국내에 유입된 외국인 자금을 활용해 코스피 지수를 유지하고 있다. 환율이 급등하면 이 구도가 흔들리기 때문에 원화 절상 유인이 작동한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즉 외환보유액은 이미 달러 중심으로 운용돼 안정 장치 역할을 하고 있어 ‘거품 붕괴 위험’을 어떻게 방지할지가 더 본질적 과제로 꼽힌다.

결론적으로 이재명 정부의 통화스와프 카드는 대외 협상에서 실익을 얻기보다는 국내 정치용 메시지 성격이 강하다. 재계 관계자는 "미국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상황에서 한국은행까지 재판대에 오른 듯한 구도는 시장 건전성에도 좋지 않다"며 "통상 문제에 통화주권까지 연결한 정치적 프레임이 결국 금융정책 기관의 신뢰까지 시험대에 올려놓은 셈"이라고 지적했다.

여성경제신문 이상헌 기자 liberty@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