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화폰이 뭐길래?···조희대 대법원장 통화기록 까자는 김어준팀

정보보고 글 공유하며 특검에 수사 압박 '암호화 단말' 기본 원리조차 왜곡된 주장 증인 없는 한동훈 자서전 작동원리 유사

2025-09-16     이상헌 기자
조희대 대법원장이 9월 12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중앙홀에서 열린 '2025 대한민국 법원의 날 기념식'에서 시상에 앞서 안경을 고쳐 쓰고 있다. / 연합뉴스

조희대 대법원장을 둘러싼 ‘비화폰 통화기록’ 관련 정보보고 글이 일부 국회의원실과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확산된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글에는 조 대법원장의 내란 연루 가능성 등 자극적 표현이 담겼지만 근거는 불명확하고 과장된 해석이 덧칠돼 있었다.

16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정보보고 글의 요지는 “조 대법원장이 비화 단말을 사용했다”는 추정에 기초한다. 여기에 “계엄 시나리오와 연결된다”는 식의 댓글이 붙었다. 하지만 정보보고 형식만 흉내낸 채 사실 검증은 없었다. 정치적 프레임으로 활용되기 쉽게 짜인 문건이었다.

비화 단말은 군·정부 기관에서 사용하는 암호화 장치다. 쌍방이 같은 단말을 쓸 때만 통화가 암호화되며, 한쪽이 일반 단말이면 그 순간부터 평문 통화다. 이는 오래전부터 확인된 원리다. 따라서 “상대가 일반폰이어도 비화가 된다”는 식의 설명은 기초를 놓친 해석일 뿐이다.

김어준 씨는 전일 자신의 방송 '김어준의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에서 바로 그 주장을 내놨다. “상대가 일반 폰이어도 비화”라는 말은 청취자에게 그럴듯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암호화 원리상 불가능하다. 조금만 들여다봐도 드러나는 오류다. 주진우 씨는 “특별한 전화”라고 거들었다. 하지만 비화 단말은 국제적으로도 사용되는 암호화 장치와 크게 다르지 않다. 신비화는 오히려 무지를 드러낸다.

같은 방송에서 KBS 기자 출신 홍사훈 씨는 “비화폰을 써본 적 없다”면서도 기능 설명에 동참했다. 경험조차 없는 상태에서 기능을 단정하는 모습은 발언의 신뢰성을 떨어뜨린다. 선수라면 언급을 자제했어야 할 대목이다. 신용한 씨는 한 발 더 나아가 “상대방의 녹음을 원격으로 차단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단말 내부 녹음을 외부에서 제어하는 방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조금만 기술을 아는 이라면 즉시 반박할 수 있는 주장이다.

받글 형식의 유언비어가 퍼지기 전 시점인 전일 방송에서 이들의 발언은 서로 맞장구로 이어졌다. “그렇죠, 그건 남아요”라는 말이 반복되며, 청취자에게 비화폰이 모든 증거를 제어하는 ‘만능 장치’인 것처럼 비쳤다. 급기야 “최고 등급 비화폰은 조직표가 뜬다”는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조직도는 단말 기능이 아니라 시스템 관리 차원의 문제다. 비화 단말 자체와는 무관하다.

방송인 김어준 씨가 자신의 SNS에 올린 비화폰 의혹 관련 카톡 정보보고 글 / X 갈무리

지난 5월 대통령경호처 서버에서 비화폰 데이터베이스(DB)가 확인됐다고 한국일보가 보도한 바 있다. 경호처는 “서버가 이틀마다 초기화된다”고 설명해 왔으나 실제로는 데이터 일부가 남아 있었다는 것이다. 다만 이를 두고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고 표현한 건 과장이다. 포렌식 과정에서 흔히 있는 데이터 잔존을 정치적으로 부풀린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해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 직전,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비화폰으로 전화를 걸었다는 진술도 전해졌다. 이런 특정 시점 통화 기록을 근거로 “절대 복원 불가 신화가 깨졌다”는 식의 해석은 앞서간 주장이다. 결국 수사의 초점은 비화폰 자체가 아니라 당시 어떤 통화가 있었는지 여부다. 

조은석 특검이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를 상대로 제기한 출석 요구도 맥락은 같다. 특검팀은 의견서에서 “한 전 대표가 저서에서 밝힌 ‘비상계엄 해제 표결에 참여하려 했으나, 추경호 전 원내대표의 의총 장소 변경으로 참석하지 못한 의원’을 특정할 필요가 있다”고 적시했다. 기술적 신비화를 앞세운 해석이나 자서전을 근거로 한 정치적 수사는 증거 능력이 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지적이다. 특정 시점과 구체적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것이야말로 수사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특히 김어준 씨는 전일 방송에서 “김건희 여사와 노상원(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 등으로 구속 수감 중인 전 국군정보사령관)의 통화가 나와야 한다”며 주장을 확대했다. 비상계엄에 김 여사의 개입 여부를 규명하는 것은 사건의 본질을 밝히는 데 중요한 쟁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비화 단말’이라는 장치의 신비성에 기대어 해석하는 것은 검증 방법으로서 한계를 갖는다.

정보 공동체에선 이런 논의가 대통령실과 여당의 사퇴 압박을 받는 조희대 대법원장을 둘러싼 재판 거래 음모론과 결합하는 것을 우려한다. 특정 인물을 겨냥해 통화기록 공개를 압박하는 도구로 전용되면 수사의 본질을 흐릴 수 있기 때문이다.

비화 단말을 오래 다뤄 온 정보기관 출신 관계자는 “조건이 맞아야 암호화가 되고 그렇지 않으면 일반 통화와 같다”며 “절대적인 장치가 아닌데도 이를 신비화하며 의혹을 증폭시키는 것은 한동훈 전 대표의 증인 없는 자서전과 마찬가지로 수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여성경제신문 이상헌 기자 liberty@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