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영 더봄] 문학과 예술의 산실 프랑스 카페 문화와 크루아상

[전지영의 세계음식이야기] 파리의 카페는 일상의 예술 무대 크루아상과 프랑스 빵 문화의 역사 미술 속 풍요와 카페 체험의 연결

2025-10-01     전지영 푸드칼럼니스트

프랑스 파리는 누구에게나 여행하고 싶은 로망이 있는 도시이다. 파리하면 떠올리는 장면은 에펠탑과 길거리 예술가들, 그리고 따뜻한 커피 한잔과 크루아상의 여유로운 카페 풍경이다. 햇살 아래 놓인 테이블, 커피 향이 퍼지는 거리, 바삭한 크루아상이 아침을 여는 풍경은 영화와 그림 속에서 자주 등장한다.

파리의 카페는 단순한 커피를 판매하는 곳이 아니라 역사와 문화, 예술이 녹아 있는 공간으로 수많은 예술가의 아지트였다.

파리 카페, 일상의 예술 무대

문헌과 미술 작품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19세기 파리 카페가 단순한 휴식 공간이 아니라 시민들의 사회적 교류와 여가의 중심지였다는 사실이다.

르누아르의 '물랭 드 라 갈레트' 속 장면에서 볼 수 있듯 커피잔과 와인이 놓인 테이블에서 시민들은 담소를 나누고, 바삭한 빵과 크루아상을 곁들이며 웃음을 나눈다. 이는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도시 생활의 활기와 여유를 상징한다.

카페는 예술가들의 영감의 원천이기도 했다. 파리의 ‘카페 드 플로르(Café de Flore)’와 ‘레 두 마고(Les Deux Magots)’는 장 폴 사르트르와 시몬 드 보부아르가 철학적 토론을 벌이던 장소였다. 피카소와 헤밍웨이도 즐겨 찾았다고 전해진다. 이 공간에서 커피 한 잔은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새로운 사상과 예술적 실험을 자극하는 불씨였다.

오늘날 여행자가 아니더라도 기록과 사진, 문학 작품을 통해 이 장면들을 상상할 수 있다. 햇살이 비치는 카페테라스, 에스프레소를 홀짝이며 노트를 펼쳐 든 예술가의 모습은 여전히 우리의 머릿속에 생생히 재현된다.

커피 문화 또한 카페의 중요한 축을 이룬다. 진한 에스프레소, 우유가 듬뿍 들어간 카페 오 레, 거품이 풍성한 카푸치노는 각각의 개성과 이야기를 지닌다. 이름과 유래를 공부하는 것만으로도 마치 커피 향이 코끝에 스며드는 듯한 경험을 선사한다.

파리의 에펠탑과 커피 /픽사베이

크루아상과 프랑스 빵 문화의 역사

크루아상은 많은 사람들이 ‘프랑스의 발명품’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 기원은 오스트리아 빈의 ‘키펠(Kipferl)’이라는 페이스트리다. 오스만 제국의 빈 포위전(1683년) 이후 빵 굽는 제빵사들이 새벽에 몰래 땅굴을 파던 터키군을 발견해 도시를 구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오스트리아 제빵사들이 오스만 제국의 상징인 초승달 모양을 본뜬 빵을 만들었고, 그것이 크루아상의 시초라는 일화가 있다.

17세기 후반 이 빵이 프랑스로 전해지면서 프랑스 특유의 버터 풍미와 레이어가 살아 있는 바삭한 식감으로 새롭게 발전했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크루아상’은 이때부터 자리 잡은 것이다. 아몬드 크루아상, 초콜릿 크루아상(팡 오 쇼콜라), 햄과 치즈를 넣은 세이버리 크루아상 등으로 다양하게 변주되며 아침 식탁의 주인공이 되었다.

프랑스 혁명 시기에는 빵이 국민의 권리와 자유의 상징으로 자리했다. “빵이 없다면 케이크를 먹어라”라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일화는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당시 빵이 민중에게 얼마나 중요한 상징이었는지를 보여준다. 이후 정부는 바게트 규격을 표준화하여 모든 시민이 쉽게 빵을 구할 수 있도록 했고, 바게트와 크루아상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평등한 일상의 권리’를 의미하게 되었다.

프랑스 지역마다 밀가루와 버터, 발효 방식에 차이가 있어 같은 크루아상이라도 맛과 식감이 조금씩 다르다. 이 차이는 미술의 붓질과 색채가 지역과 화가에 따라 달라지듯, 지역성과 장인의 손길이 담긴 차별성으로 이어진다.

프랑스의 크루아상 /픽사베이

미술 속 풍요와 카페 체험의 연결

프랑스 음식과 미술은 서로 깊이 맞닿아 있다. 정물화 속 와인, 치즈, 빵은 풍요와 부를 상징하며, 색채와 질감이 그대로 살아 있다. 세잔의 정물화에 놓인 과일과 빵은 단순한 먹거리를 넘어 예술적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예술가들은 카페를 단순한 휴식 공간 이상으로 바라봤다. 카페테라스에서 만난 사람들, 한 손에 커피잔을 든 지식인, 바삭한 크루아상을 베어 물던 일상의 순간들은 화폭에 담겨 시대의 초상으로 남았다. 헤밍웨이는 자신의 작품 속에서 파리 카페를 삶의 일부로 묘사했고, 피카소는 카페에서 스케치하며 영감을 얻었다.

비록 직접 파리를 찾지 않아도 그림과 사진, 문학을 통해 우리는 그 장면들을 생생히 상상할 수 있다. 카페테라스에 앉아 크루아상과 커피를 즐기며 햇살과 웃음을 느끼는 상상은 실제 여행 못지않은 문화적 체험을 선사한다. 커피의 진한 향, 크루아상의 고소함, 바게트의 바삭함을 글과 자료로 접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프랑스 카페의 풍경 속으로 발걸음을 옮긴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파리의 카페 /픽사베이

파리 카페와 크루아상은 단순히 여행자의 미각을 자극하는 것을 넘어 문화와 역사, 예술을 배우는 통로가 된다. 비록 발걸음을 직접 옮기지 않았더라도 그림과 문헌, 자료를 통해 우리는 그 공간과 시간 속으로 여행할 수 있다.

커피 한 잔과 크루아상 한 조각 속에는 수백 년의 역사와 장인의 손맛, 문화적 이야기가 담겨 있다. 상상과 기록 속에서 우리는 음식과 예술, 역사와 일상이 한데 어우러진 파리의 풍경을 경험하게 된다.

여성경제신문 전지영 푸드칼럼니스트 foodnetwork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