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韓 기업 노조까지 칼댄다···노동·비자 가이드라인 제시
러트닉 "이전 방식 안 통할 것" 경고 통상 압박 넘어 고용 관행 정조준 떠돌이 단기 인력 원천 차단한 구조 재계 비자 완화 운운 주장 무색해져
미국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이 한국 기업의 노무 체계를 정조준한 강경 메시지를 던졌다. “이전 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그의 발언은 단순한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압박이 아니라 한국 기업들의 현지 고용 모델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신호로 읽힌다.
러트닉 장관은 11일(현지시간) CNBC 인터뷰에서 “한국은 무역협정을 수용하거나 관세를 내야 한다. 선택은 명확하다”고 말했다. 이어 “적법한 비자가 없는 고용 관행은 이제 용납하지 않겠다”고 못 박았다. 이는 통상 압박을 넘어 노동 문제까지 협상 테이블 위로 올려놓은 것이다.
같은 날 조지아주에서 구금됐던 한국인 근로자 300여 명이 집단 귀국했다. ESTA, B-1 등 단기 체류 자격으로 입국해 사실상 생산 라인에 투입된 이들은 ‘위장 고용’ 논란의 중심에 섰다. 미국 정부가 무역과 노동을 한 묶음으로 관리하겠다는 신호가 분명해진 셈이다.
러트닉 장관은 일본 사례를 언급하며 비교 압박을 가했다. 일본은 5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확정하고 알래스카 LNG 송유관 건설 등 인프라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초기에는 미·일이 수익을 절반씩 나누지만, 이후 미국이 90%를 가져가는 구조다. “한국도 이를 보고 있을 것”이라는 발언은 일본보다 더 나은 조건은 없다는 경고였다.
무역협정의 핵심이 25% 상호관세를 15%로 낮추는 대신 3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약속하는 구조라는 점에서 한국은 투자뿐 아니라 노동 규정까지 맞춰야 하는 이중 과제를 안게 됐다. 단순히 자금을 내는 문제가 아니라 사람을 어떻게 고용하고 활용할지까지 미국식 규범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이 새롭게 제시한 고용정책의 골자는 ‘입국(A)–미국인 훈련(B)–귀국(C)’이다. 한국에서 파견된 숙련 인력은 단기 취업비자를 받고 미국에 들어오되 라인에 투입되는 대신 현지인을 교육·감독한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반드시 귀국해야 한다. 미국 내 일자리를 보호하면서 기술은 미국인에게 이전되도록 설계된 방식이다.
이 체계가 작동하면 기존의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조지아 배터리공장 방식의 ‘단기 비자 인력 대량 투입→현장 노동 참여→불법 체류 위험’ 구조는 원천적으로 봉쇄된다. 파견자는 교육·훈련에 한정되고 생산과 임금은 철저히 미국인 고용으로 채워야 한다.
급여 체계 역시 분리될 전망이다. 파견자는 원소속사에서 급여를 받고 현지 고용인은 미국 법인의 임금을 받는다. 임금 명세와 세금 신고 체계가 달라져 ‘위장 고용’의 여지가 줄어든다. 문서화도 철저하다. 교육계획서, OJT(On-the-Job Training) 기록, 출결 시스템이 비자 체류 기록과 맞물려 있어 한 줄이라도 어긋나면 적발될 수 있다.
하도급 구조도 단속망에 포함된다. 공동사용자(Joint Employer) 책임이 강화되면서 원청 기업이 협력업체 고용 인력의 비자·임금·안전까지 확인해야 한다. 그림자 업체를 통한 편법 고용이 사실상 차단되는 셈이다. 입국 단계에서 걸러지고 귀국 절차까지 감독 선상에 오른다. 이 과정에서 ‘노란봉투법식 위장 고용’이 촉발한 조지아 사태 같은 상황은 반복되기 어렵다.
특히 이번 조치는 적발된 LG엔솔 인력이 단순 생산직이 아닌 배터리 공정 전문 인력이었다는 점과도 맞닿아 있다. 미국은 핵심 기술 인력이 라인 투입에 머무르는 구조를 차단하고 동시에 단기 체류를 빙자한 떠돌이 건설 인력 유입까지 막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한 것이다.
한화오션과 HD현대가 참여한 마스가(MASGA) 프로젝트에 우선 적용될 현지 트레이닝센터 설립, 커뮤니티 칼리지와의 합작 교육 프로그램이 병행돼 자본 투자보다 더 치밀한 ‘노동·비자 컴플라이언스’가 요구되는 셈이다. 현대차 조지아 공장 사태로 촉발된 반미 감정을 관세 협상의 지렛대로 삼으려던 이재명 정부가 어떤 메시지와 전략으로 대응할지가 관건이다.
여성경제신문 이상헌 기자 liberty@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