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익종 더봄] 명절증후군아, 한번 와 봐라

[한익종의 삶이 취미 취미가 삶] 추석 명절, 전쟁 준비 잘하고 계시죠? 지긋지긋한 적 명절증후군 이기는 법

2025-09-23     한익종 발룬티코노미스트·알나만교장

추석 명절이 가까워지니 오래전 있었던 선친과 아름다운 추억 하나 공유하렵니다. 1990년대 말 즈음, 직장 생활을 할 때 모처럼 긴 기간의 추석 연휴를 맞았었습니다. 명절에 귀향과 성묘는 자손으로서는 당연한 의무였던 시절이니 고향에는 가야겠는데 모처럼 긴 시간을 얻었으니, 아내와 해외여행을 했으면 해서 오랜 고민을 했었습니다.

명절에 귀향을 고민하는 것 자체가 언감생심일 때이니 꾸중과 호령을 각오하고 부친께 내 마음을 비쳤었습니다. “모처럼 얻은 기회이니 에미와 함께 여행 다녀와라. 우리야 자주 만날 수 있고 조상님이야 혼령인데 세상 어디에서 모시면 어떠냐? 다 형식이지···.”

다른 가족들의 질시와 비난을 무릅쓰고 떠났던 뉴질랜드 남·북섬 여행은 그 후 명절때면 아내와 두고두고 추억하는 대표 레퍼토리가 됐습니다. 

며느리로서는 언감생심, 상상도 못 했던 명절 기간 부부 해외여행이니 아마 죽어서도 잊지 못할 추억일 겁니다. 그 이후 우리 부부 사이에서 흔히 얘기하는 명절증후군이 사라진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여러분은 명절 후 치를 부부간 전쟁 준비는 하셨습니까?” /게티이미지뱅크

최근의 추세는 조금 달라졌을지 모르지만, 명절을 즈음해 가족들이 겪는 스트레스와 명절 후의 가족 간 갈등은 아직도 남아 있겠다고 여겨집니다.

과거에는 주로 시댁을 방문하는 며느리에게서 나타나는 증후군이었지만 지금은 다양한 계층으로 확대됐습니다. 처가를 방문하는 남편이나 취업, 결혼 시기를 놓친 자녀들도 명절증후군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여러분께 질문하나 던지겠습니다.

“여러분은 명절 후 치를 부부간 전쟁 준비는 하셨습니까?”

이런 질문을 하면 대부분의 사람은(특히 남성 성인) “에이 그건 다른 집 얘기고요, 우리는 그럴 염려 없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우리 가족은, 나의 아내나 남편은, 또는 자녀는 절대로 그럴 일 없다며 고양이 심리에 빠진 분들은 지금부터 나의 얘기를 잘 들어두시고 전쟁 준비 확실히 하시기 바랍니다.

전쟁 준비(?)하라고 했더니 어떤 공격도 물리칠 자신이 있다는 확신과 철저한 방어 태세를 갖추라는 얘기로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태도는 오히려 부부 전쟁을, 가족 간의 갈등을 그야말로 끝장내는 수순으로 가져가겠다는 생각에 지나지 않습니다. 

지금 세월이 어느 때인데 케케묵은 주제를 다루느냐고 힐책하셔도 상관없습니다. 왜냐고요? 명절증후군과 그 후유증의 심각성은 남녀 간의 본성과 부부 사이의 역학관계를 고려하면, 그리고 우리네 유교적 명절 풍습이 존재하는 한 쉽게 해소될 사안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명절을 맞아 조상의 은덕을 기리고 집안 어른들의 문안을 여쭙는 우리네 고유 전통을 폄훼하거나 부정하고자 하는 의도는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네 아름다운 전통이 서로에 대한 불신과 일방적 희생으로 훼손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 글을 씁니다.

명절증후군을 겪지 않고 오히려 명절이라는 이벤트를 통해 구성원 간 연대를 더욱 끈끈이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우리 부부의 사례가 모든 이들에게 적용된다는 확신은 없지만 적어도 그 갈등과 후과를 어느 정도 감소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전쟁 준비를 하라는 얘기입니다. 그 전쟁 준비는 바로 ‘배려’, 명절 전부터 상호 간의 배려를 습관화하라는 주문입니다.

배려는 기본적으로 ‘함께’라는 개념 위에 성립됩니다. ‘함께’는 또한 즐거움에 기반합니다. 결국 배려는 함께 즐기는 시간이나 공간을 넓히는 방법으로 가능하다는 얘기가 됩니다. 꼭 물리적 측면에서의 함께 즐기기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즐기기를 함께하는 것은 취미생활이 으뜸인데 이 취미생활도 꼭 함께해야 배려심이 생기는 건 아닙니다. 서로 다르더라도 서로의 취미생활을 존중하고 독려하는 것도 좋은 배려이고, 함께한다는 심리적 연대를 가능케 합니다. 즐거운 기분으로 함께하는 취미생활은 서로를 배려하는 태도를 공고히 하며 혹여 구성원 간에 생길 수 있는 갈등의 앙금을 지속하지 못하게 하는 묘약입니다.

추석 명절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어떨지는 모르지만 추석이 가까워질수록 가족 구성원의 한 편에서는 스트레스의 농도가 점점 짙어갈 겁니다.

그럴 리 없다고 여기시더라도 명절증후군을 예방하고 치유하기 위해 서로 간에 예방주사를 놓아주는 것이 어떨까요? 지금부터라도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을 함께하고 그런 시·공간을 넓힘으로써 설사 추석 명절 기간 어떤 스트레스가 쌓여도 이후 그를 극복할 이유가 생기게 말입니다.

여성경제신문 한익종 발룬티코노미스트·알나만교장 immagic59@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