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5 금융 잇따라 테더·서클 만나는데···원화 스테이블코인에 붙는 물음표
USDT· USDC 점유율 시장 양강 구도 통화주권 중요성·선 제도 정비 제고점
국내 주요 금융사들이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와 잇따라 회동하며 협업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논의가 본격화되기 전 선제적으로 글로벌 사업자와 접촉해 사업 구상을 가다듬으려는 행보로 해석된다.
8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 금융권의 잇단 행보는 글로벌 발행사와의 네트워크 구축을 넘어 원화 스테이블코인 필요성과 실효성을 둘러싼 논의를 본격화하는 계기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8일 진옥동 신한금융 회장은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 USDT 발행사 테더의 마르코 달 라고 부사장, 퀸 르 아태지역 총괄, 안드레 킴 중남미 매니저 등과 만났다. 이번 만남은 스테이블코인 시장 흐름을 점검하고 상호 협력 가능성을 논의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진 회장은 지난달 22일 또 다른 스테이블코인 USDC 발행사 서클의 히스 타버트 사장과도 만나 의견을 교환했다. 그는 1일 열린 창립 24주년 기념식에서도 "플랫폼 기업과 디지털 화폐 확산으로 은행 예금 기반이 위협받을 수 있다"며 "스테이블코인 관련 생태계 기술 맵은 현재 부재한 상태로 기술의 내재화와 이해도 확산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KB금융은 조영서 국민은행 부행장이 마르코 부사장 등 테더 경영진과 회동할 예정이며 우리금융 실무진도 미팅을 진행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NH농협금융 블록체인·가상화폐 담당 실무진은 지난 5일 퀸 르 아태지역 총괄 등 테더 방한단과 먼저 회동했다. 테더 측은 금융지주·은행 외에도 나이스그룹과 토스 등과 만남을 이어갈 예정이다. 이은형 하나금융 부회장과 박근영 하나금융티아이 사장은 10일 테더 측과 회동하며 김형년 두나무 부회장도 함께 자리할 것으로 전해진다.
스테이블코인 시장은 테더와 서클이 양분하고 있다. 테더는 USDT를 발행하며 점유율 시장 1위를 차지하고 있고 서클은 USDC를 발행하며 2위를 유지하고 있다. 두 회사 모두 글로벌 거래소와 결제 네트워크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국내 은행권의 협력 논의도 이들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국내 은행들은 글로벌 발행사 접촉과 동시에 자체 준비도 병행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은행연합회를 통한 공동 발행 가능성에 무게를 두면서도 원화 연동 스테이블코인 결제 실험을 내부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또 스테이블코인이 발행될 경우 자사 배달앱 ‘땡겨요’에서 결제 수단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KB금융은 그룹 차원의 ‘가상자산 대응 협의체’를 운영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스테이블코인 분과를 상설화했다. 하나금융은 해외송금 및 지급결제 활용 가능성을 분석하며 관련 인프라와 제도를 점검 중이고 우리은행은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준비하면서 관련 상표권 20건을 출원했다.
다만 국내에서는 “굳이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필요하냐”는 질문도 제기된다. 이미 카드·간편결제 등 국내 결제 인프라가 충분히 발달해 있고 원화가 국제적으로 기축통화가 아니어서 글로벌 확장성도 제한적이라는 지적 때문이다. 반대로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원화 기반 디지털 자산이 통화 주권 방어, 환율 안정, 해외송금 비용 절감 등 전략적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토스의 금융경영연구소 토스인사이트는 최근 ‘스테이블코인:새로운 금융 인프라의 부상 보고서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금융 시스템 개선을 위한 인프라로 작동하기 위해서 는 스테이블코인의 가치안정성에 대한 시장의 안정적 신뢰 구축 및 유동성 문제 최소화가 중요하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핵심 목표를 이루기 위한 한 가지 방안으로 은행 등 기존 금융기관 중심의 컨소시엄 또는 신탁 구조를 기반으로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발행 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며 “기존 시스템 내 금융규제와 감독 도구를 통한 준비금 투명성 확보가 용이하고 여러 금융기관의 자본력을 활용하여 초기에 대규모의 유동성 풀 형성 가능하다”고 짚었다.
전문가들은 통화정책 안정성을 고려한 제도적 검토 필요성을 강조한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여성경제신문에 “스테이블코인은 중앙은행의 통화량 조절 기능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제도적 통제가 없으면 통화정책이 흔들릴 수 있다”며 "정책 당국에서 통화 주권이나 자본 유출, 금융안정성에 미치는 영향을 충분히 검토한 뒤 신중한 입법과 제도 정비를 거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성경제신문 박소연 기자 syeon0213@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