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투자 접고 관세 내자고?···그렇게 해서 죽는 건 韓 제조업뿐
美 단속 사태 맞춰 나오는 허황된 주장 잠재적 규범 위반 국가란 인식 키울 뿐 韓보다 높은 인건비 기회비용으로 봐야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공장의 불법 고용 단속 사태와 고율 관세 압박이 겹치자 “차라리 관세 내고 수출하는 게 낫다”는 허황된 주장이 흘러나온다. 그러나 25%의 관세를 맞으면 미국으로의 수출길이 막히고 기업은 곧바로 생존 위기를 맞는다.
벼랑 끝에 선 재계에선 “불확실성이 더 두렵다”는 하소연이 이어진다. 트럼프 행정부가 예고한 25~50% 고율 관세는 미국 내 투자를 유인하기 위한 조치일 뿐, 반미 국가주의적 접근으로 막을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차라리 관세를 내겠다”는 말도 물건이 팔리지 않아 실제로 관세를 낼 일이 없을 것이기에 공허해 보인다.
9일 한국경제인협회 등에 따르면 올해 한국 기업들이 발표한 대미 투자 규모는 1500억 달러(약 209조원)에 달한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대응 차원에서 진행된 조치다. 자동차 25%, 철강·알루미늄 50% 같은 고율 관세가 현실화되면 미국 내 생산 기지 없이 버틸 수 있는 기업은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미국에 공장을 짓는 비용이 한국보다 약 30% 비싸다 해도 관세로 막히면 아예 시장을 잃는 것과 같다”며 “고비용을 감내하는 이유는 미국 시장이 세계 최대 소비처이자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단순한 건설비 차이가 아니라 세계 최대 단일시장에 안정적으로 진입하기 위한 ‘입장료’라는 것이다.
경제학적으로 설명하면 기회비용(opportunity cost)에 해당한다. 관세로 차단될 경우 얻을 수 있는 매출과 네트워크 효과가 사라지기 때문에 현지 투자로 불확실성을 줄이는 편이 합리적 선택인 것이다. 특히 글로벌 공급망이 정치·안보 변수에 의해 재편되는 시대에는 생산거점을 확보하는 것이 곧 위험 회피(risk hedging) 전략이 된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현지 생산을 통해 단순한 고비용을 상쇄할 뿐 아니라 공급망 내재화(supply chain internalization) 효과까지 얻게 된다”며 “결국 미국 내 공장 건설은 단순한 회계적 손익을 넘어선 전략적 투자이며 이는 시장 점유율과 기업 생존력을 동시에 담보한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가 미국 텍사스 테일러시에 건설 중인 반도체 공장 비용은 당초 170억 달러에서 250억 달러로 치솟은 사례를 들어 '관세를 무는 게 낫다'는 조갑제·정규재·이병태 등 극우 일각의 주장은 극단적 반미 선동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문제는 비용이 아니라 시장 접근권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인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 가치로 두고 투자 기업에 대해 지분 확보나 보조금 축소 같은 강수를 두고 있다. 기업에게 불편할 수 있으나, 미국 내 생산을 통해야만 안정적 시장 진입이 가능하다는 메시지다.
1인당 GDP가 한국의 두배 수준인 미국에서 인건비 부담이 높은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미국 투자가 불가피한 이유는 관세보다 ‘시장 접근권’의 가치가 훨씬 크기 때문이다. 4대그룹 고위 관계자는 “국내 기업들은 적자를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수출길이 막히는 걸 두려워한다”며 “관세 인하를 포기하는 순간 경쟁력을 잃는 것은 한국내 제조업이지 미국 현지 투자 기업이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여성경제신문 이상헌 기자 liberty@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