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주 더봄] 매일 아침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권혁주의 Good Buy] 불규칙한 프리랜서의 아침 '갓생'을 다짐하는 한마디 "아아 한 잔 주세요"
나는 프리랜서다. 스케줄에 맞춰 살다 보니 아침에 일이 있으면 일찍 일어나고 별일 없으면 늦게 일어나기 십상이다. 불규칙한 생활에 들쑥날쑥한 컨디션을 관리해야겠다 생각한 어느 날, 갓생(갓: God과 인생: 生이 합쳐진 신조어로, 부지런하고 계획적으로 자기 계발을 하며 하루하루를 알차게 보내는 삶) 한번 살아보자는 포부로 기상 시각을 정하기로 했다.
그렇게 다짐한 여섯 시 반 기상. 매일 같은 시각에 칼같이 일어나진 못하지만, 대개 아침 여섯 시 반에서 일곱 시 사이에 일어나는 패턴을 어언 2년째 이어오고 있으니 나름 선방 아닌가 싶다.
아침에 일어나면 고민 없이 몸을 움직인다. 가볍게 머리를 감고 세수를 하고 양치를 한다. 외출복을 입고 휴대폰과 지갑과 차키를 챙겨 헬스장으로 향한다. 헬스장까지는 차로 20분. 주차장에 도착 후 헬스장 근처 카페에 들러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산다. 칸트의 오후 4시처럼, 하루키의 글쓰기처럼 나만의 ‘루틴’이다.
주문은 늘 같고, 컵 온도도 늘 같다. 한 손에 닿는 차가운 플라스틱 컵이, 어쩐지 정신을 먼저 일으킨다. 찬 얼음 위로 짙은 에스프레소가 쏟아져 들어가는 소리. 그 짧고 선명한 순간이 좋다. 매일 반복되는 장면인데도 그날의 기분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들린다. 어느 날은 경쾌하고, 또 어느 날은 묵직하다. 하지만 확실한 건 그 순간이 내 하루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날은 몸이 무겁고, 어떤 날은 마음이 흐릿하더라도 이 루틴만큼은 지키려 노력한다.
누군가는 묻는다. 매일 똑같은 반복, 지겹지 않냐고. 나는 고개를 젓는다. 오히려 그 똑같음이 나를 붙잡아준다. 루틴은 습관이 아니다. 루틴은 의식이다.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는 건 그만큼 내 삶에 단단한 중심이 있다는 뜻이다. 특히나 프리랜서의 불규칙한 삶에서는 그런 무언가가 간절히 필요하다. 나에겐 '매일 아침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 단단한 중심이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는 손놀림, 얼음을 바라보는 눈빛, 첫 모금을 마시는 입술의 움직임까지. 매일 똑같은 장면이 지루할 법도 한데, 이상하게도 매일 조금씩 다르다. 반복된 일상이지만 그 안에 투영된 그날의 ‘진심’이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이 루틴을 멈추지 않으려 한다. 차가운 커피 한 잔이, 내 안의 뜨거운 의지를 일으켜 세우는 일이니까.
여성경제신문 권혁주 쇼호스트 kwonhj100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