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 결제·물건 던지기 30분 '컷', 신종 마약 '러시' 기막힌 거래법

기업 홈페이지도 버젓이 마약 홍보에 악용 임시마약류 지정에도 솜방망이 처벌 이어져 수사·법 제도 허점 속 러시 유통망 확산

2025-09-08     김현우 기자

단 30분이면 마약을 손에 넣는 시대다. 해외 코인으로 결제만 하면 고객이 있는 곳까지 신종 마약이 곧장 배송된다. 코로 기체를 흡입하면 일정 시간 흥분감을 높여주는 ‘러시(Rush)’ 이야기다.

한 인테리어 자재 업체의 공식 홈페이지. ‘건축용 접착제’, ‘외부 마감제’ 같은 자재 카테고리들이 메인 화면에 배열돼 있다. 회사 소개 페이지에는 대표 이름까지 올라와 있다. 그런데 ‘고객지원-Q&A’ 게시판으로 들어가면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러시파퍼 판매하는 곳 환각제 구입 방법 텔레그램 ㅇㅇㅇㅇ”라는 글이 버젓이 달려 있다.

인테리어 자재 업체 공식 홈페이지의 ‘고객지원-Q&A’ 게시판에 정상적 안내글 대신 신종 마약 ‘러시파퍼’ 판매 글이 올라왔다. 글에는 “부부 권태기 효과”, “중독성·해로움 없음” 등 허위 문구와 함께 강한 최음·환각 효과를 강조하며 텔레그램 연락처까지 남겼다. /여성경제신문

해당 글은 “부부 사이 권태기에 효과적”이라며 “마약처럼 중독되거나 해롭지 않다”는 문구로 시작한다. 이어 “강한 최음 효과와 황홀감을 느낄 수 있다”며 텔레그램 연락처까지 남겼다.

러시는 이소부틸 나이트라이트·이소프로필 나이트라이트 성분으로 분류되는 신종 마약이다. 코로 흡입하면 흥분과 환각을 유발해 유흥업소 등에서 최음제로 쓰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는 의식 상실이나 심장 발작 등 부작용 우려로 ‘임시 마약류’로 지정돼 있다. 소지하는 것만으로도 형사처벌 대상이다.

배송 방식은 이른바 ‘물건 던지기’다. 판매자는 오토바이나 차량으로 구매자 근처를 지나가며 도로변 가로등 밑에 물건을 내려놓고 위치 사진을 구매자에게 전송한다. 결제는 해외 코인 거래소만 허용된다. 국내 거래소는 차단돼 있다. “단속될 일은 없냐”는 질문에 판매자는 “안전하다”며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러쉬' 판매자는 "오토바이·차량으로 이동하며 구매자 근처 도로변에 물건을 두고 사진을 전송하는 ‘물건 던지기’ 방식으로 배송한다"고 했다. 결제는 해외 코인 거래소만 가능하며 단속 우려를 묻자 “안전하다”며 안심시키는 태도를 보였다. /여성경제신문

해외 전자상거래 사이트에서는 ‘아로마·클리너’로 위장해 판매된다. 판매 서버가 해외에 있고 표기와 성분이 수시로 바뀌어 단속과 적발은 늘 뒷북이 된다. 암호화 메신저·폐쇄형 커뮤니티에 은어로 글을 올리고 택배 소형화물이나 편의점 픽업을 이용해 발자취를 지운다. 병당 수만 원대에 마진을 붙여 팔린다.

실제 적발 사례도 있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지난 2월 러시 원재료를 베트남에서 들여와 국내에서 제조·유통한 외국인 남성 A씨를 검찰에 구속 송치했다. A씨가 제조한 양은 4리터. 4000회 흡입할 수 있는 분량이었다. A씨는 “중독성이 없다”며 병당 최대 30만원에 판매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A씨뿐 아니라 중간 유통책 C씨와 D씨까지 검거해 모두 구속 송치했다.

신종 마약 '러시(Rush)'를 흡입하면 의식을 잃거나 심장 발작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서울 강남경찰서

러시는 2013년 12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2군 임시 마약류로 지정했다. ‘과학적으로 입증되진 않았지만 남용 시 위험이 있어 마약류에 준해 취급하는 물질’이라는 이유였다.

당시 식약처는 세계 최초로 러시의 강한 중독성과 의존성을 동물실험으로 입증했고 2016년 UN마약총회에서 알킬 나이트리트 독성을 경고하며 공식 마약류 지정을 추진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러시는 임시 마약류에 머물러 있다. 

관세청 자료에 따르면 외국인 마약 밀수 사범은 2019년 196명에서 2023년 590명으로 3배 증가했다. 2014년 신종 마약 적발 건수의 40%가 러시였다. 국내 유입 마약의 95% 이상이 해외 밀반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러시가 사실상 주요 통로가 되고 있는 셈이다.

법원 양형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한다. 마약류관리법은 2군 마약류를 단순 소지만 해도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다만 지난해 재판에 넘겨진 마약사범의 43.5%가 집행유예에 그쳤다. 서울고법은 2015년 러시 밀수 사건에서 “중독성 검증이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하기도 했다.

변호사들은 형량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 마약사건 전문 변호사는 여성경제신문에 “신종 마약사범이 초범이라는 이유로 집행유예를 받는 관행은 더 이상 반복돼서는 안 된다”며 “형량을 강화하거나 실형 비율을 높이는 방식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

마약 거래는 텔레그램과 코인 결제를 기반으로 한 비대면 방식이다. 현행법에는 마약 범죄에 대한 위장 수사 규정이 없다. 경찰이 잠입 수사에 성공해도 법정에서 적법성 논란에 휘말린다. 한 형법 변호사는 “디지털 성범죄 사건에는 위장 수사가 허용되지만 마약 사건에는 금지돼 있다”며 “법 개정을 통해 합법적인 위장 수사가 가능해야 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러시를 임시 마약류가 아닌 정식 마약류로 지정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임시 지정만으로는 법원 해석의 틈새가 생기기 때문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에 “해외에서 합법이라도 국내 반입·판매·소지는 형사처벌 대상”이라며 “중독성이 없다는 식의 기만적 홍보는 엄정히 단속하겠다”고 했다.

여성경제신문 김현우 기자 hyunoo9372@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