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계엄 이후에도 선 넘은 '정치'···민주주의 위기 만든 건 '규범'의 부재

원인은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 실종 '합법'이라는 이름으로 과격한 수단 사용

2025-09-07     김민 기자
지난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기국회 개회식에서 한복과 상복을 입은 여야 의원들이 애국가를 부르고 있다.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만들어낸 '선'의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연합뉴스

'선 넘지 마라'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말이다. '선'이란 개념은 모호하지만 대체로 누구나 마땅히 지키는 규범의 의미로 쓰인다. 

이는 정치에도 적용할 수 있다. 12.3 불법 계엄 사태가 발생한 지 벌써 9개월이 지났다. 정치권이 반복해서 '선'을 넘어선 끝에 '헌법'이라는 최후의 기준마저 넘어선 순간이 12.3 불법 계엄이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선'이란 무엇일까?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저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민주주의를 지켜온 보이지 않는 규범으로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를 제시한다. 상대방이 사회를 통치할 동등할 권리를 가졌다는 것을 인정하고 법을 존중하면서도 동시에 입법 취지를 훼손하지 않는 자세로 움직인다. 민주주의는 이런 규칙 아래에서 유지될 수 있다. 

지난 2024년 점점 정치권에서 상호 존중이 부족해지고 있던 상황에서 여소야대 정국이 형성됐다. 민주당의 입법 강행과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반복되면서 양측의 감정의 골이 더 깊어졌다. 이후에도 특검법 발의와 국무위원 탄핵 시도, 예산안 삭감 등 민주당의 압박은 계속됐고 국민의힘과 정부 측도 이재명 당시 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바탕으로 한 정치 공세를 이어갔다.

정치적 갈등은 점점 심각해졌고 더 이상 패배를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양 정당 모두 불법이 아니라면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렇게 존중이 사라지고 자제를 거둔 정치는 계엄으로 귀결됐다.

규범이라는 선을 넘어선 것이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가 된 셈이다. 탄핵과 조기 대선, 새 정부의 선출을 겪으면서 한국 민주주의는 언뜻 회복세에 접어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만들어낸 '선'의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당 별로 봐도 여전히 한국 정치가 선에서 돌아오지 못했음은 명확하다. 민주당은 다수당의 힘과 정권 초기 높은 지지율을 믿고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인다. 국민의힘은 '탄핵의 강'을 아직도 넘지 못하면서 국정에 사사건건 반대의 목소리를 높인다. 조국혁신당은 성 비위 문제가 당내 민주주의대로 처리되지 않아 자중지란에 빠졌다. 3당 모두 선을 지킬 필요가 있다.

법과 제도는 결코 완벽하게 모든 것을 규정할 수 없다. 언제나 새로운 해석의 여지가 생기고 예외적 상황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결국 민주주의 시스템이 잘 정착하려면 법과 제도를 넘어서 민주주의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선'이라는 규범을 지켜야만 한다.

불법이 아니라면 자행해도 괜찮은가? 상대가 과격한 수단을 썼으니 우리도 과격한 수단을 써야 하는가? 이것은 특정 정당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권 전체가 공유해야 할 규범을 잃어버린 결과다. 정치가 선을 지우는 순간, 민주주의도 함께 무너진다. 이제 그 선을 복구해야 한다.

여성경제신문 김민 기자 kbgi001@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