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ESTA는 韓 특권 아니다···반미에 기댄 극우 몰이 함정
ICE 고발자도 "한국인 많을 줄 몰랐어" 동맹=시혜로 여겨온 韓 정치권에 경고 MAGA 악마화 보도로 양국 신뢰 파탄 현대차-LG엔솔 고용 계약 수사 불가피
미국 조지아주 현대자동차 합작 배터리 공장에서 한국인 200여 명이 무더기로 불법 체류 혐의로 적발되면서 한국 기업과 정치권의 안이한 한미 동맹 인식이 도마에 올랐다. 이번에 체포된 한국 국적의 이들은 단기 상용 비자(B1), 전자여행허가제(ESTA)로 입국한 경우가 다수였다.
7일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에 불법 고용 실태를 고발한 토리 브래넘은 자신의 SNS에 “한국 기업이라면 H-1B(전문직 취업비자) 비자로 왔을 거라고 생각했다”며 놀라움을 드러냈다. 불법 체류 적발 사실보다도 ESTA와 단기 비자를 꼼수로 활용한 고용 구조 자체가 문제의 본질이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한국 일부 언론은 토리 브래넘을 ‘극우 성향’으로 규정하며 고발의 정당성을 희석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이는 사태의 본질을 직시하기보다 불편한 진실을 외부 프레임으로 가려버리는 물타기 방식이라는 비판을 낳고 있다. 정작 이번 사건은 한국식 도급·노조 구조가 글로벌 시장에서 어떻게 충돌하는가를 보여준 사례다.
특히 정치권과 한국 기업들이 한미동맹을 일종의 시혜적 특권으로 착각해왔다는 점이 뿌리 깊게 드러난 사건이다. ‘동맹국 기업’이라는 지위를 방패 삼아 법 집행이 느슨할 것이라 믿었지만 이번 대규모 단속은 그 착각을 여실히 깨뜨린 계기가 됐다.
불법 체류자 475명 가운데 한국인이 300명가량이라는 사실은 이를 증명한다. 미국 당국 입장에서 ESTA나 B1 비자로 입국해 현장 노동에 투입된 것은 단순 행정 착오가 아닌 구조적인 불법 고용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우선 현대차는 “무관용 원칙”을 강조하며 발 빠르게 선을 그었지만 LG에너지솔루션은 내부 책임 소재조차 정리하지 못해 비판을 자초했다. 미국 노동시장에서 위장고용은 원청까지 곧장 책임이 미치는 사안인 만큼 합작 파트너에게까지 부담을 안기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법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일 경우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 간의 고용 계약 구조 자체가 수사대상으로 번질 수밖에 없다. 합작사(HL-GA) 운영 과정에서 원청·하청 간 책임 범위를 어떻게 규정했는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 당국이 ‘고용 프로세스 전반’에 대한 계약 문서와 내부 합의 절차를 들여다볼 가능성도 제기된다.
현대차가 일찍 불법 고용에 무관용 원칙을 천명하며 선 긋기에 나선 배경이기도 하다. 원청으로서 책임 전가를 피하려면 협력업체와 맺은 고용 계약 관계가 합법적이고 투명하게 유지됐음을 입증해야 한다. 그럼에도 인력 충원 과정에서 협력업체 ESTA·B1 비자 소지자와의 간접적 계약 사실이 확인된다면 전반적인 조사 압박은 불가피하다.
그럼에도 정치권 반응은 오히려 우려를 키운다. 대표적으로 한동훈계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은 SNS에 “개개인의 불법 체류 문제가 전혀 아니다. 대미 투자 기업 직원들의 권익과 비자 편의 문제일 뿐이며, 범죄가 아니라 외교·통상 현안”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불법 체류와 위장고용을 ‘통상 현안’으로 치환하는 태도는 미국 당국의 시각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으로 한국 정치권이 사태의 본질을 오히려 흐린다는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
여기에 친이재명 성향으로 알려진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까지 반미적 접근에 힘을 싣는 모양새다. 그는 "한국인을 범죄자 취급하고 쇠사슬로 묶어간 것은 전 세계에 미국 행정부가 얼마나 야만적이고 퇴행적인가를 알린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이런 태도야말로 트럼프 지지층(MAGA)을 악마화하는 일부 언론과 마찬가지로 ‘신뢰 우선 동맹’을 흔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한미동맹은 이제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 이른바 ‘특혜 동맹’에서 ‘신뢰 검증 동맹’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한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 7월 31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폐기하고 상호 관세율을 15%로 잠정 결정한 것이 출발점이다. 현대차 합작 공장 불법 고용 단속 사태는 이 같은 흐름을 더욱 가속화하는 사건일 뿐이다.
여성경제신문 이상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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