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은미 더봄] 과학의 심장에서 ‘송오성의 다이아몬드’가 태어나다
[민은미의 보석상자] (106) 서울시립대 송오성 교수의 주얼리 혁신 반도체 기반 신소재공학자의 보석 연구 최근 국내 기업, 인도 수랏에 공장 가동 보석용·산업용 다이아몬드 양산 눈앞에
과학과 기술은 우리의 삶 전반을 재편해 왔다. 증기기관은 산업혁명을 열었고, 전기는 인간의 하루를 확장했다. 반도체는 디지털 시대를 만들어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2021년, 국내 다이아몬드 산업에도 그런 혁신이 찾아왔다. 서울시립대 송오성 교수 연구팀과 KDT 다이아몬드(대표 강승기)가 손잡고 세계에서 여덟 번째로 보석용 랩 그로운(Lab-grown, 실험실에서 성장한) 다이아몬드 개발에 성공한 것이다.
해외 의존도가 100%인 국내 다이아몬드 시장에 자립의 길이 열린 순간이었다. 한국이 글로벌 무대에서 새로운 주체로 떠오를 수 있는 발판도 마련됐다. 이 혁신을 가능하게 한 주인공, 송오성 교수를 지난 8월 27일에 만났다. 반도체 전문가이자 신소재 공학자인 그는 어떻게 주얼리라는 새로운 세계에 들어서게 되었을까. 인도 수랏에서 한 달간 머물다 막 귀국한 직후였다.
—인도 수랏을 다소 길게 방문했는데.
“KDT가 인도 수랏에 양산 공장을 설립해서죠. 2025년 6월부터 현지 공장 가동이 시작되어, 마침 방학을 맞아 현장을 다녀오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이번 출장은 작심하고 나선 장기 체류 일정이었습니다. 대학에서 보직을 맡아 해외 출장이 여의치 않았는데 지난 3년 동안 다이아몬드 양산 기술이 급격히 발전했거든요.
특히 대구경 씨드(seed)를 활용해 10캐럿 이상의 대형 다이아몬드 생산이 가능해졌고, 전자 재료용 기판 소재로의 응용도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술적 진보를 현장에서 직접 확인하고 국내 기업(KDT 다이아몬드)이 설립한 수랏 공장의 양산 공정과 인프라를 심층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장기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수랏까지 비행 노선이 있나요.
“직항이 없어 델리를 경유하거나 뭄바이에서 하루 머문 후 육로로 이동해야 합니다. 전체 이동에만 약 48시간이 소요됩니다. 도착하고 나면, 이곳만의 독특한 리듬과 산업적 활기가 낯설지만 흥미롭게 다가오는 곳입니다. 7월 말에서 8월은 인도가 우기(雨期) 시즌이라 낮 기온은 28~32℃로 높은 편이지만, 오히려 서울보다 시원했습니다.”
인도는 세계적인 다이아몬드 강국이다. 원석의 가공과 연마, 글로벌 유통까지 아우르는 중심지로 ‘세계의 다이아몬드 연마 센터’라고 불린다. 특히 인도 서부에 위치한 수랏은 그 심장부라 할만하다. 인구 약 850만명의 중견 도시지만, 그 절반 이상이 다이아몬드와 텍스타일 산업에 종사한다.
전 세계에서 거래되는 다이아몬드의 약 90% 이상이 이곳에서 가공된다. 수랏의 작업장에는 하루 수천만 캐럿의 다이아몬드가 흘러들고, 미세한 절단과 정교한 연마가 세계 시장의 흐름을 좌우한다. 바로 이곳에서 한국 다이아몬드 산업의 미래를 모색하는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다.
—교수님은 언제 주얼리 업계에 입문하셨나요.
“처음 교수로 발을 디뎠을 때 현실은 이상과 달랐어요. 1997년 11월에 IMF가 터져서 100만원도 채 되지 않는 월급으론 미래를 계획하기에 턱없이 부족했고, 자연스럽게 내 삶의 방향과 비전을 깊이 고민하게 됐습니다. 당시 내게는 ‘반도체’라는 첨단 분야에 대한 전문성이 있었고 동시에 그를 활용하는 기술을 어디에 접목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까를 자문했습니다.
그 답은 의외로 가까이에 있었어요. 첨단기술을 보석과 귀금속 분야에 적용한다면 귀보석의 품질을 획기적으로 향상하고 귀금속의 정련·가공 기술에서도 혁신을 일으킬 수 있다고 봤습니다. 이런 고민이 이어지던 중 1999년 교수 창업 경연대회에서 우승하게 되었어요. 상금을 곧장 GIA(Gemological Institute Of America, 미국보석연구원) 교육 과정에 투자했습니다. 그 상금이 내 인생을 전환한 첫 번째 자본이 된 거죠. 세계 최고 수준의 보석학 교육을 받으며 체계적인 지식과 글로벌 네트워킹을 동시에 얻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때부터였습니다. 반도체와 재료 공학의 기술을 기반으로 하여 보석·귀금속 분야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야겠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 것은···. 나의 주얼리 여정은 그렇게 과학자의 현실적인 고민과 교수로서의 미래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것입니다.”
—교수 창업 경연대회에서 어떤 내용으로 우승했나요.
“지금도 또렷이 기억납니다. 연구실에서 우연히 실험하던 중, 사파이어 단결정에 코발트 분말을 확산시키면 청색으로 변화하는 현상을 확인하게 되었어요. 이는 단순한 색 변화가 아니라, 당시로서는 공업용 사파이어를 보석용 블루 사파이어로 전환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놀라운 발견이었습니다. 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공업용 사파이어를 처리하여 보석용 블루 사파이어를 대량 공급하겠다’는 창업 계획을 세웠죠. 경연대회 심사에서는 탁월한 성과로 인정받아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실제로 그때 회사를 바로 세우지 않은 것이 오히려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나는 젊은 교수로서 기술 개발에는 자신 있었지만, 경영이라는 전혀 다른 세계를 감당할 준비는 되어 있지 않았어요. 기술과 경영은 마치 보석의 양면처럼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지만, 동시에 각기 다른 전문성을 요구합니다.
그때 창업으로 뛰어들지 않고 연구와 교육에 집중한 덕분에, 이후 주얼리 분야의 과학적 기반을 더 단단히 다질 수 있었고 나만의 길을 개척할 수 있었습니다. 젊은 시절의 그 결단은 잘한 선택이었고, 결과적으로 나를 연구자이자 교육자, 그리고 주얼리 전문가로 성장시킨 발판이었습니다.”
송오성 교수는 서울대학교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MIT에서 재료공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본과 한국 삼성전자에서 글로벌하게 활동하며 첨단 반도체 분야에 몸담았다. 최첨단 기술의 한복판에서 연구와 개발을 이어가던 중 서울시립대학교 신소재공학과 교수로 임용됐다.
주얼리 분야에서 송오성 교수의 전문성은 귀보석과 귀금속 전반에 걸쳐 있다. 하지만, 그중 특히 주력해 온 분야는 조금 독특하다. 보석 전문가인데도 불구하고 드러나는 미적 가치를 추구하기보다는 그 뒷선에서 재료와 기술을 혁신하는 연구에 전념해 왔다. 대표적인 성과가 변색하지 않는 은 합금 개발, 18K 골드의 강도와 경도에 버금가는 24K 순금 소재 연구, 로듐의 99.9% 정련 기술 확립 등이 있다.
보석 쪽에서는 루비와 사파이어의 색 향상에 고온고압 기술을 접목했고, 아콰마린의 열처리 시도 그리고 다이아몬드의 색을 고온고압법으로 향상한 경험도 그의 연구 여정 중 중요한 성과였다. 이 모든 바탕을 토대로 2021년 국내 최초로 캐럿급 랩 그로운 다이아몬드(1.27ct) 성장에 성공했다. 인간의 감성과 연결된 주얼리 분야지만, 첨단 공학적 접근을 통해 새로운 도약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젊은 시절 송오성 교수의 직관이 30여 년 후 현실이 된 것이다.
—지금까지 연구 주제는 어떻게 정하셨어요.
“업계 대표님들과 교류하면서 ‘현장에서 진짜 필요한 기술은 무엇인가’를 캐치하고, 이를 내가 가진 반도체 공정 기술로 풀어내는 과정에서 많은 주제가 발굴되었습니다. 연구 주제는 결코 책상 위에서만 나온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업계의 요구와 나의 연구가 딱 맞아떨어져 획기적인 성과를 내기도 했는데, 이런 순간들이 지금까지 연구를 지속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동력이었습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늘 어려움이 있었어요. 기술 연구만으로는 성과가 완성되지 않습니다. 제조, 디자인, 마케팅 전문가들과 협업해야 했는데, 분야마다 가치관이 다르고 목표가 다르다 보니 이들을 한 방향으로 모으는 일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수랏 외 주얼리 여행을 한 곳은 어디인가요.
“2005년을 기점으로 연구실에 머무르지 않고, 여행을 통해 직접 현장으로 발을 옮기는 경험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주얼리 분야는 책이나 연구 논문만으로는 결코 다 담을 수 없는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해외 주얼리 페어는 기본적으로 참석했고 거기서 멈추지 않았어요. 현장에서 원석을 캐고 보석으로 다듬어지는 순간을 직접 보고 싶어 여러 광산을 방문했습니다.
베트남에서는 룩엔 광산을 찾아가 원석 채굴의 현장을 경험했고, 중국에서는 사파이어 광산을 탐방하며 색과 품질이 결정되는 자연의 비밀을 목격했습니다. 러시아 야쿠츠크에서는 혹독한 환경 속에서 진행되는 다이아몬드 가공시설을 둘러보며, 보석 산업의 저력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피부로 느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인도 수랏의 KDT 다이아몬드 공장에서 한 달간 체류하며 전 양산 공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는 특별한 기회를 가진 겁니다. 씨드에서 시작해 성장, 커팅, 연마, 그리고 최종 완제품에 이르는 전 과정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직접 목격한 경험은 그 어떤 교과서보다 생생했습니다. 이런 현장 경험은 내게 단순한 ‘여행 기록’이 아니라, 주얼리 산업을 바라보는 시야를 확장하고 한 단계 더 나아가게 한 원동력이 됩니다. 연구자이자 교육자로서 그리고 주얼리 전문가로서 내가 지금의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데는 이런 여행과 현장 경험에서 얻은 깨달음이 주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지난 한 달간 수랏에서 느낀 점은.
“보통 여행이라 하면 차를 타고 시속 100km로 창밖 풍경을 스쳐 지나가듯 바라보는 것이지만, 이번에는 차에서 내려 천천히 걸으며 길가의 풀 한 포기까지 바라보는 여행을 한 셈입니다. 그 한 달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45년 전 과거로 돌아간 듯한 체험이었습니다. 수랏에서 본 사람들의 삶은 내가 대학 1학년이던 시절, 토요일과 일요일도 일하며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던 한국의 모습과 겹쳤고 귀한 노동의 의미를 다시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문화적으로도 많은 깨달음이 있었는데 힌두교와 유교의 가치관이 생각보다 많이 닮아 있었어요. 가족을 중시하고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인도인의 태도는 낯설지 않았습니다. 또한 이곳에서는 한 분야에서 30년 이상을 한결같이 일해 온 장인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어요. 이번 한 달은 그런 장인들의 30년 경험과 노하우를 단 30일 만에 압축해 배우는 귀한 호사였습니다. 단순히 기술만이 아니라, 장인 정신이 어떻게 산업을 지탱하고 있는지를 몸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몇 해 전 송오성 교수를 만났을 때, 자신의 꿈은 ‘농부가 되는 것’이라는 의외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땀 흘리며 정성껏 작물을 기르고 돌보며 열매를 얻고 수확하는 과정이 자신이 몸담은 연구와도 닮아 있다는 그의 이야기가 오래 기억에 남았다. 배·아로니아·블루베리를 직접 심어 가꾸고 가지를 다듬으며 계절이 바뀌는 소리를 듣고 작은 텃밭에서는 토마토와 미니 오이, 버터 크러쉬가 자라는 모습을 즐긴다고 말하는 그의 모습은 행복해 보였다.
—농부의 꿈은 지금도 여전하세요.
“매주 열심히 가서 농장 생활을 즐기지요. 일요일 아침이 되면 도시의 분주함을 잠시 내려놓고 농장으로 향합니다. 누군가는 이 시간을 ‘노동’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내게는 쉼이고 충전이에요. 농장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반려견 또치(시베리아허스키)와 뭉게(포메라니안)를 산책시킵니다. 넓은 들판을 뛰노는 녀석들을 보면 마음이 탁 트입니다. 배 과수원으로 발걸음을 옮겨 전지하고 봉지를 씌우며 나무를 돌보고 수확 철이 되면 땀 흘려 수확을 돕습니다. 내 손길이 닿아 무르익어 가는 열매를 보면 고단함보다 기쁨이 앞서요.
비록 전문가처럼 많은 소출은 기대하기 어렵지만, 일주일에 한 번 농장에 와서 이들의 성장을 지켜보고 소박한 결실을 맛보는 일은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입니다. 무엇보다 이런 시간은 건강을 지켜줘요. 햇볕을 받으며 땀을 흘리고 흙을 만지는 일이 몸을 튼튼하게 할 뿐 아니라 마음을 단단하게 합니다. 도시에서의 긴장과 피로가 농장에서의 하루로 풀려나갑니다(웃음…).”
—이번 여행의 가장 큰 성과는.
“이제 은퇴까지 약 3년의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사실 예전 같았더라면 마지막 순간까지 좋은 강의와 연구로 마무리하겠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 수랏에서의 한 달은 내 시각을 크게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제 은퇴 이후에도 여전히 일할 기회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일을 통해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기술과 문화가 연결되면서 세상은 좁아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넓어지고 있습니다. 새로운 도전과 협업의 길이 끊임없이 열리고 있어요. 그렇기에 은퇴는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출발점일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이번 여행이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은 용기와 희망입니다.”
여성경제신문 민은미 주얼리 칼럼니스트 mia.min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