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웅익 더봄] 동화 나라 같은 익선동 한옥마을
[손웅익의 건축마실] 다다익선 익선동은 과유불급을 염두에 두어야
사람 구경도 하고 리모델링 아이디어도 얻고 싶을 때 익선동으로 간다. 3호선, 5호선 종로3가역에 내리면 바로 익선동 골목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여러 개의 좁은 골목을 따라 빽빽하게 늘어서 있는 작은 가게는 다다익선 익선동이라는 말에 걸맞게 구경거리를 제공한다. 언제부턴가 익선동을 다녀온 사람들이 SNS에 공유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고 영화, 드라마에도 나오면서 급속히 떴다. 행인 중에 외국인이 상당히 많다.
익선동 한옥마을은 일제강점기에 분양된 주택단지라고 한다. 독립운동을 지원하던 부동산개발업자가 조선인 서민들에게 분양한 주택단지라고 한다. 1만 평(약 3만3000㎡) 가까운 땅을 15평(약 49.5㎡) 정도로 작게 쪼개서 분양했다고 하니 당시 익선동에 지어진 한옥은 수백 채가 되었을 것이다.
익선동의 북쪽에 있는 북촌은 조선시대 세도가들이 살았으므로 전통 한옥이고 그 규모도 크지만 여기는 서민용이라 대부분 작은 개량한옥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지금 익선동은 어느 정도 면적인지 궁금해서 자료를 찾아보니 5만㎡ 정도라고 한다. 대략 1만5000평 정도인데, 남북 길이가 300m이고 동서는 170m 정도의 아주 작은 직사각형 동네다.
익선동 바로 북쪽에 붙은 동네가 운니동인데 바로 길 건너에 지금은 아라리오뮤지엄으로 바뀐 공간 사옥이 있다. 운니동에는 과거에 한정식집과 술집이 많았다. 공간 사옥에서 공연이나 전시를 하는 예술가들은 운니동을 자주 찾았다고 한다.
대단한 애주가였던 건축가 김수근도 길만 건너면 술집 동네라서 술을 멀리할 수 없었을 것이다. 현상 설계 공모에 당선된 날은 운니동의 술집이 시끌벅적했음이다. 때로는 건축도 심한 스트레스였을 텐데 건축을 하면서 술과 담배를 과다하게 했던 김수근은 55세의 나이에 간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골목을 걷다가 문득 여기가 한옥마을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와지붕과 나무 기둥 몇 개만 남기고 다 현대식으로 바꾸었다. 익선동과 같은 한옥마을의 리모델링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본다. 처음부터 개량한옥으로 지어졌고 세월이 흐르는 동안 원형도 많이 훼손되었으니 지붕, 기둥처럼 최소한의 한옥 요소만 남기고 공간이나 재료를 현대식으로 바꾸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오랜만에 골목을 걸으며 가게마다 들여다보니 재미가 있다. 특별한 정원으로 꾸며놓은 가게가 발길을 멈추게 한다. 물과 식물을 활용한 작은 중정이 있는 가게다. 이런 가게는 예외 없이 고객들로 붐빈다. 앞으로 이렇게 정원을 주제로 한 인테리어 가게가 많이 생길 것이다. 차 없는 서울 도심 골목을 사람과 사람이 마주치면서 걷다 보면 아주 오래전 과거 시간 속으로 돌아간 것 같다.
어느 순간 화장실이 궁금해졌다. 물론 지하철 역사로 가면 되지만 외국인들도 상당히 많은데 골목 투어 하는 사람들이 들어갈 공중화장실이 보이지 않았다. 무작정 가게로 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골목을 다 돌아다니면서 화장실 안내판을 열심히 찾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익선동 골목에서 큰길로 빠져나오는 길목엔 고깃집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고기 굽는 냄새와 자욱한 연기가 골목을 가득 채우고 있다. 불을 사용하는 고깃집이 골목 입구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것이 갑자기 불안해졌다.
문제는 익선동 골목이 미로처럼 복잡하기도 하고 폭이 매우 좁다는 것이다. 도로가 좁아 소방차의 진입도 불가능하다.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면 일시에 사람들이 몰려나와 그야말로 도로를 꽉 채울 것이고 화재라도 나면 혼란은 극에 달할 것이다. 비상시 골목을 쉽게 빠져나갈 수 있는 탈출로 표시 등 비상 상황에 대비할 수 있는 안전대책이 시급해 보인다.
익선동은 특별한 가게가 많아 볼거리가 넘쳐나는 동화 같은 동네다. 고객을 사로잡기 위해 가게마다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마주 오는 사람들과 부딪치지 않으려면 서로 피해야 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골목을 메우고 있다. 다다익선이라는 말은 익선동에 딱 어울린다. 그러나 다다익선은 항상 과유불급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여성경제신문 손웅익 건축사·수필가 wison77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