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은심 더봄] 기후현(岐阜県)의 세계문화유산 시라가와고(白川郷)

[양은심의 일본 열도 발도장 찍기](36) 손을 합장한 것 같은 지붕이 매력적인 갓쇼즈쿠리(合掌造り) 1995년 세계문화유산 등록 시장바구니와의 인연은 시라가와고

2025-09-04     양은심 번역가(영상/책)·작가

우리 동네에 일주일에 한 번 오는 유기농 채소 가게가 있다. 그곳에 갈 때마다 떠오르는 마을이 있다. 기후현(岐阜県)에 있는 시라가와고(白川郷)다. 이유는 그곳에서 산 까맣게 물들인 대나무 가방 때문이다. 친환경을 지향하는 그 채소 가게는 비닐봉지 같은 건 준비해 놓지 않는다. 그리하여 이런저런 채소를 넣기에 딱 좋은 대나무 가방이 시장바구니로 간택되었다.

커다란 암석에 '세계유산 시라카와 갓쇼즈쿠리 마을 (世界遺産白川合掌造り集落)'이라 새겨져 있다. 1995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사진=양은심

몇 년 전 시라가와고를 여행할 때였다. 집합 장소로 향하는데 오렌지 불빛이 고운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다리만 건너면 주차장인데 나는 가게로 들어갔고,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평상시 들지도 못할 대나무 가방을 손에 들고 있었다. 특히 국내 여행은 백팩 하나로 다녀서 짐 늘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 말이다.

결국은 샀다. 그 후 한참 동안 쓰임새를 찾지 못한 채 그릇장 위에 놓여 있던 그것은 지금 시장바구니로 대활약 중이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예쁘다는 칭송까지 받으면서.

'갓쇼즈쿠리'라는 건축양식의 집들. 창문은 다 남쪽을 향하고 있다고 했다. 해가 잘 들고 바람이 잘 빠지게 하기 위함이라 했다. /사진 =양은심

기후현(岐阜県) 시라가와고(白川郷)는 겨울이면 빠짐없이 미디어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마을이다. 두 손을 모은 것처럼 가파르게 경사진 지붕들이 눈에 덮이면 그야말로 딴 세상 같은 풍경을 만들어낸다. 언젠가 한 번쯤은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드디어 어느 해 가을날, 그곳에 갈 기회가 생겼다. 1박 2일로 떠나는 패키지여행이다. 꿈에 그리던 풍경을 보려면 겨울을 기다려야 했겠지만, 하루라도 빨리 가보고 싶은 마음이 이겨버렸다.

여행을 떠날 때는 소풍 가는 아이처럼 일찍 일어나게 된다. 새벽 4시에 눈이 떠졌다. 일찌감치 외출 준비를 마치고 어둠이 가시지 않은 거리로 나섰다. 집합 장소에서 대형 버스를 타고 한 시간 정도 달렸을까. 어느새 버스는 도심지를 벗어났다. 가을옷으로 갈아입은 들판과 산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도심지와는 달리 자연은 제대로 계절을 살아내고 있었다.

완연한 가을 풍경 /사진=양은심
강물은 어쩜 저리도 아름답던지. 차창에서 얼굴을 땔 수가 없었다. /사진=양은심

이번 여행에서 나의 최대 관심사는 시라가와고(白川郷)다. 하지만 패키지여행인지라 그 외의 곳에도 나를 데려간다. 먼저 도착한 것은 역시 기후현에 있는 히다타가야마(飛騨高山)라는 곳이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마을을 둘러보는 시간을 가진 후 시라가와고로 향한다.

기후현의 향토 요리인 ‘히다 쇠고기 황목련잎 된장 구이(飛騨牛朴葉みそ焼き/히다규 호바 미소 야끼)'/사진=양은심

금강산도 식후경, 동네를 둘러보기 전에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기후현의 향토 요리인 ‘히다 쇠고기 황목련잎 된장 구이(飛騨牛朴葉みそ焼き/히다규 호바 미소 야끼)'를 먹기로 했다. 팬 위에 말린 황목련잎을 깔고 그 위에 고기와 채소를 올려놓았는데 불을 피워도 타지 않았다. 천천히 고기를 익힐 뿐이었다.

기후현의 쇠고기를 된장으로 맛을 낸 요리다. 된장 양념이 맛있어서 고기가 채 구워지기도 전에 밥 반 공기를 먹어 치웠다. 밑반찬도 동이 났다. 고기를 먹기 위해 밥을 추가 주문했고 게다가 밥 한 톨 남기지 않고 싹 비웠음은 말할 것도 없다.

히다타가야마(飛騨高山)의 상점가 풍경 /사진=양은심

식사를 마치고 1시간 정도 동네를 돌아다녔다. 일본술 전문점이 꽤 있었는데 그때는 관심이 없던 때여서 그냥 지나쳤던 게 아쉽다. 다시 가게 된다면 시음하면서 천천히 즐기고 싶다.

시라가와고 입구에 있는 화장실 건물. 이 건물을 표식으로 내가 타야 할 버스가 있는 곳을 기억했다. /사진=양은심
데아이 바시(であい橋)다. '만남의 다리'라고 번역하면 될까. 이 다리를 건너면 시라가와고가 나타난다. /사진=양은심

시라가와고(白川郷)를 향해 출발. 한참을 달려 마을 입구 주차장에서 내렸다. 지붕이 두 손을 모은 듯한 모양의 건물이 보였다. ‘갓쇼즈쿠리(合掌造り)’라 불리는 건축양식이다.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제법 크고 근사했는데 화장실이란다.

그 왼쪽으로 ‘데아이 바시(であい橋)’라는 다리가 있고, 다리 건너편에 마을이 있다. 1995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곳이다. 마음이 설렌다. 과연 어떤 풍경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이번 여행에서는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촌락의 풍경을 보는 것이 주목적이다. 가을 풍경은 어떨지 궁금했다. 그런데 아쉽게도 셔틀버스가 2시 40분에 끝나버렸단다. 우리가 도착한 것은 3시쯤. 여행사의 미스 아닌가 하는 불만이 꿈틀거렸지만 어쩔 수 없다. 주어진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밖에.

마을 전경을 보려면 전망대로 가야 한다. 돌아올 때쯤이면 어두워질 것이 분명하기에 한눈팔지 말고 서둘러야 한다. 사진을 찍을 때 외에는 뛰었다. 파란 하늘이 사라지기 전에 전망대로 가고 싶었다.

1801년에 처음 세워졌다는 메이젠지(明善寺)의 종루 문 /사진=양은심

처음 세워진 것은 1801년이었다는 메이젠지(明善寺)의 종루 문을 지나 성내 전망대(城内展望台)라는 팻말이 있는 곳까지 와서 망설이게 되었다. 오른쪽으로 가야 할지 왼쪽으로 가야 할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디로 가라는 거지? 처음 오는 사람에게는 알 길이 없었다.

일단 오른쪽으로 가봤다. 가다 보니 패키지여행 일행이 돌아오고 있었다. 그쪽에는 전망대가 없단다. 그럼, 왼쪽으로 가야 하는구나. 발걸음을 서둘렀다. 시간이 없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전망대를 가려면 사진 왼쪽에 세워진 팻말이 보이면 왼쪽으로 꺾어서 걸어 올라가야 한다. /사진=양은심

이때부터 오르막길이 시작되었다. 무거운 몸이 원망스러웠다.그래도 오로지 마을 전경을 보고 싶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뛰었다. 전망대에서 본 풍경은 그야말로 동화책을 펼쳐 놓은 듯했다. 급하게 경사진 지붕을 억새로 덮었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들은 말인데, 모든 집 창문이 남쪽을 향하고 있다고 했다. 해가 잘 들고 바람이 잘 빠지게 하기 위해서란다. 그 생활의 지혜는 아름다운 저녁 풍경까지 만들어낸다. 마을의 전경을 보겠다는 목표를 달성한 나는 이번에는 뛰지 않고 천천히 걸으며 동네를 구경했다.

동네 어디를 찍어도 그림이 되는 곳이다. /사진=양은심
억새와 어우러진 와다야(和田家)/사진=양은심

시라카와고에서 가장 유명한 집 '와다야(和田家)'에도 들렀다. 1층과 2층으로 된 집이다. 유명인들이 왔다 갔다는 증거 사진들이 즐비했다. 우리 부부 결혼식 때 썼던 노래를 부른 ‘드림 컴 트루’도 왔다 갔다 해서 괜히 반가웠다. 이곳에는 입장료도 있다. 관리 유지를 위해서는 당연한 일이지 싶다.

좁은 계단을 올라 2층으로 올라가다 보니 중간 참에 창고가 있었다. 이 또한 생활의 지혜이리라. 2층은 생각보다 높아서 등골이 오싹거릴 정도다. 이제 슬슬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집합 시간은 오후 5시. 일본에서 11월의 오후 5시는 어둡다.

오렌지색 불빛이 또 다른 풍경을 만들어낸다. /사진=양은심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한 마을에 오렌지색 전등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다. 불이 들어오니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가로등 하나 없는 마을에 불을 켠 집들. 이곳에 머무르며 저녁 풍경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딴 세상 같은 풍경에 홀려있다 보니 순식간에 주변이 어두워졌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길을 잃을 것 같았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길을 물어 집합 장소로 향했다.

주차장에서 가까운 데아이 바시(であい橋)까지 다 와서 오렌지색 불빛이 새어 나오는 이쁜 가게에 매료되어 버렸다. 시간도 없는데. 결국 이곳에서 지금 시장바구니로 대활약 중인 까만색으로 물들인 대나무 가방을 샀다.

물건과의 만남도 인연이라 할 수 있다면 시장바구니와 나의 만남은 과연 인연이라 해도 되지 싶다. 살 때는 시장바구니로 쓸 줄은 상상도 못 했으니 말이다. 종종 생각한다. 이렇게 쓰이려고 그때 내 손에 들린 거였구나 라고.

이 풍경이 보고 싶어서 오르막길이 이어지는 전망대까지 달렸다. 달릴 가치는 있었다. /사진=양은심

서둘러서 화장실에 들른 후 집합 장소로 향했다. 다음엔 초여름에 와보고 싶다. 모내기가 끝나고 벼가 어느 정도 자란 계절의 시라가와고는 엄청나게 아름다울 것이 틀림없다. 겨울이 아닌 여름에 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여성경제신문 양은심 번역가(영상/책)·작가 eunsim0304@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