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기 단 문화예술진흥기금, 남은 수명은 '2년'···20년째 대책 없는 정치권
모금 제도 폐지 후 폭발적 수요 감당 못 해 "재원 확보 위한 중장기적 안목 부족" 비판
50년 동안 유지하던 문화예술진흥기금(문예기금)이 고갈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와 국회 등 정치권에서는 20년째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어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예술 업계에서는 정부의 문화·예술 재원 확보를 위한 중장기적 안목 부재가 원인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1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문예기금이 고갈되면서 관련 종사자들 사이에서 성토의 목소리가 나온다. 문예기금은 유일한 국가 단위의 '순수예술' 지원 재원으로 창작과 보급, 민족전통문화의 보존·계승 및 발전, 국제 교류, 문화예술인 후생 복지, 지역문화 진흥 등을 돕고 있다.
1973년 공연장, 영화관, 문화재 등의 입장료에 일정 비율의 금액을 부가해 징수하는 방식으로 조성돼 2003년엔 세율이 6.5%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2003년 말 헌법재판소가 "관람객에게 예술 발전의 책임을 전가해 헌법상 명시된 국민의 재산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는 위헌"이라고 결정하면서 문예기금의 주요 재원인 모금 제도는 폐지됐다.
이후 기금은 단년도 예산심의 과정에 의존하는 정부 내부 수입(전입금) 위주의 불안정한 재원 구조로 전환됐다. 나아가 수요 대비 미진했던 재원 대책으로 인해 고갈 우려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전입 규모를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지만 2004년 적립금 5273억원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해 지난해 말 기준 남은 금액은 626억원에 불과하다.
지난해 11월 국회 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열린 '문화예술진흥기금 재원 안정화를 위한 국회 토론회'에서 김진각 성신여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는 "이대로라면 적립금은 2년 이내에 고갈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지난 20년 동안 재원 구조 안정화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이 실현되지는 못했다. 이에 예술 업계에서는 정치권에서 재원 확보를 위한 중장기적 계획이 부재했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원재 문화연대 집행위원장은 여성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문예기금 고갈·불안정성 문제는 20년 넘게 이야기됐다. 그러나 이번에 나온 예산안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정부가 바뀌어도 예술의 지속성과 안정적 기금 재정 마련 계획은 계속 나오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난 7월 4일 가결된 정부로 이송된 2025년도 문화예술진흥기금운용계획변경안을 보면 세부적인 변동이 있었지만 수입 면에서 큰 변동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금 조달을 위한 추가적인 개정이나 방안도 담기지 않았다.
이 위원장은 한국의 문화 재정 자체가 단기적 기금 마련에 집중하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그는 "중장기적 계획과 원칙 없이 단기적 기금 마련에 집중하다 보니 문체부 내 기금에서 전입이 이루어지고 이를 예산이 확보된 것처럼 허위 홍보하는 때도 많았다"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결국 문화·예술 정책도 안정적인 운용을 위해서는 예산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위원장은 이어 "자본주의 국가에서 정책은 예산과 동반된다. 국가적으로 예술을 강조하고 예술계의 독립성 확보도 필요한 상황에서 중장기적 계획을 세워 안정적으로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장 재원을 마련하는 것도 쉽지는 않다. 정병국 한국문화예술위원장은 여성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문화예술계에서도 기금을 확충할 방안을 마련하고자 한다"라면서도 "현재 기금을 마련할 수 있는 곳들은 다른 기금을 위해 전환된 상태라 새로운 곳을 확보하는 게 쉽지 않다"라고 설명했다.
정 위원장은 "예산 당국에서는 기금을 쌈짓돈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라며 "지금 세수가 굉장히 부족한 상황에서 기금을 사용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기금에 대한 중장기적인 계획은커녕 기존 기금조차 빼먹는 현상이 일어났다"라고 비판했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국내 창작자들의 기반을 지탱해 온 유일한 순수예술 기금은 20년째 땜질식 대책에 의존해 왔다고 비판한다. 창작자들의 최소한의 생태계를 지키기 위한 장기적·구조적 재원 계획을 서둘러 마련이 시급한 상황에서 정치권의 움직임에 관심이 쏠린다.
여성경제신문 김민 기자 kbgi001@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