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택 칼럼] 실버타운, 신뢰라는 튼튼한 뿌리를 내려야 오래 간다
[문성택의 실버행] 운영사가 갖춰야 할 필수 요소 정보 공개와 전용 등급제 필요 공정성 위한 표준계약서 도입 전문적 서비스 뒷받침되어야
부모님 모시기 힘든 자녀, 살던 집을 처분하고도 갈 곳이 마땅치 않은 시니어들. 오랜 기간 한의사로서 많은 어르신들을 만나며 '나이가 들어서도 믿고 편히 살 수 있는 곳이 없다'는 막연한 불안감을 수없이 들었다. 대한민국은 인구 절반 가까이가 50대 이상이 될 만큼 빠르게 늙어가고 있다. 이 불안과 관심은 결국 새로운 노후 주거 모델인 실버타운으로 향한다. 하지만 소비자의 불안은 여전하다.
실버타운이 단순히 돈벌이 수단을 넘어 고민 없이 믿고 맡길 수 있는 '노후의 안식처'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제도 개선뿐 아니라 운영사 스스로의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25년 경력의 한의사이자 시니어 주거 전문가로서 건강한 실버타운 시장을 위해 운영사가 갖춰야 할 네 가지 필수 요소를 제시한다. 이 네 가지는 마치 우리 몸의 건강을 지탱하는 사지(四肢)와 같다.
1. 투명성 : 정보 공개가 시장의 혈액 순환을 만든다
많은 사람이 실버타운 상담을 받고 나서 이렇게 말한다. "보증금과 월 생활비는 알겠는데 정작 중요한 정보는 알 수 없네요." 이렇다 보니 소비자의 불안은 커질 수밖에 없다. 마치 건강검진 결과가 '정상'이라는 말만 들었을 뿐 구체적인 혈액 수치를 모르는 답답함과 같다.
실제 입주자는 몇 명인지, 직원은 얼마나 있는지, 간호사나 물리치료사는 상주하는지, 재정 상태에 문제는 없는지 등 기본적인 정보조차 공개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런 정보의 비대칭성이 시장의 불신을 키우는 가장 큰 원인이다. 일본처럼 주요 정보를 의무적으로 공개하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자신 있게 정보를 공개하는 운영사만이 소비자의 신뢰를 얻을 수 있으며 이는 시장 전체에 활발한 혈액 순환을 가져온다.
2. 객관성 : 등급 평가제가 합리적인 진단을 돕는다
호텔에 별점이 있고 음식점에 리뷰가 있듯이 수억 원의 보증금이 오가는 실버타운에도 객관적인 평가 기준이 필요하다. 현재 요양시설은 A~E 등급을 매기지만 실버타운은 법적 범주가 달라 평가 사각지대에 있다.
시설의 안전, 직원 전문성, 의료 연계, 문화·여가 프로그램, 입주민 만족도 등을 종합 평가하는 실버타운 전용 등급제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마치 숙련된 한의사가 환자의 체질과 상태를 종합적으로 진단하듯 등급제는 소비자가 자신의 상황과 예산에 맞는 시설을 쉽게 고를 수 있도록 돕는다. 운영사는 단순히 가격 경쟁이 아니라 서비스 품질 경쟁으로 나아가 시장의 질적 성장을 이끌 수 있을 것이다.
3. 공정성 : 표준 계약서가 뼈대를 튼튼하게 한다
실버타운 계약은 억 단위 보증금과 장기간의 거주를 담보로 하는 만큼 계약의 공정성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계약서가 운영사 중심으로 짜여 있어 보증금 반환 지연이나 과도한 위약금으로 입주민이 피해를 보는 사례가 끊이지 않는다.
분쟁을 막고 입주민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정부가 준비 중인 표준계약서는 반드시 도입해야 한다. 표준계약서는 보증금 반환 조건, 계약 해지 및 위약금 조항, 시설 보수 책임, 관리비 산정 방식 등을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 입주민이 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명시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 표준계약서는 실버타운 시장의 뼈대를 바로잡아 불필요한 마찰을 줄이고 모두가 상생하는 기반이 될 것이다.
4. 전문성 : 서비스 혁신이 몸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투명성, 객관성, 공정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운영사의 서비스 혁신이 뒷받침되어야 신뢰를 완성할 수 있다.
실버타운은 단순히 주거 공간을 넘어 스마트 헬스케어 플랫폼으로 진화해야 한다. 웨어러블 기기를 활용한 건강 모니터링, AI 기반 응급 알림, 원격 진료, 맞춤형 영양 관리 같은 서비스는 이미 현실이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 고립을 막는 일이다. 동호회, 취미 프로그램, 지역사회 봉사 활동 등을 통해 시니어들의 교류와 활력이 있는 노후 생활을 지원해야 한다. 이런 전문적인 서비스는 몸의 기력을 회복하고 활력을 되찾게 하는 보약과 같다.
결론 : 신뢰는 튼튼한 몸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약재다
실버타운은 앞으로 고령 사회의 핵심 주거 대안이 될 것이다. 하지만 소비자가 신뢰하지 않으면 시장은 결코 성장할 수 없다.
운영사가 투명성, 객관성, 공정성, 그리고 전문성을 갖추고 스스로 노력한다면 소비자는 안심하고 노후를 맡길 수 있다. 이는 단순히 비용을 지불하고 서비스를 받는 관계를 넘어 입주민과 운영사가 서로 믿고 의지하는 '신뢰 공동체'를 만드는 과정이다.
마치 환자가 의사를 믿고 몸을 맡기듯 소비자가 실버타운에 노후를 맡길 수 있는 '신뢰'가 시장의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하고 건강한 성장을 이끌 것이다. 눈앞의 이익에 매달리지 않고 신뢰를 쌓는 것. 그것이 바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가장 중요한 약재다.
여성경제신문 문성택 유튜브 '공빠TV' 대표 mst2000@hanmail.net
문성택 유튜브 '공빠TV' 대표
문성택 공빠TV 대표는 한의사로 25년간 의료현장에서 진료하며 행복한 노후의 집을 연구하고 있다. <실버타운 올가이드>, <건강하고 행복한 노후의 집>, <행복 계약서>를 펴냈고, 유튜브 채널 ‘공빠TV’를 통해 고령자 주거, 실버타운, 요양시설 정보를 24만 구독자와 공유하고 있다. 정부·지자체·학회 등의 정책 자문과 강연도 활발히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