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업계 눈치보다 中에 시장 먹힐 판···韓 로보택시 '속도전' 시급
中 스타트업 강남에서 시범 운행 시작 모자이크 규제로 AI 정밀 학습 어려워 업계 반발에 택시보단 버스로 우회 중 "기술 자립도 떨어져 해외 의존 불가피"
중국 자율주행 스타트업 포니.AI가 최근 서울 강남대로에서 자율주행 택시(로보택시) 시범 운행을 시작하며 국내 주행 데이터 확보에 나섰다. 중국이 상용화에 속도를 내는 반면 국내 기업은 제도적 제약과 산업계의 반발로 경쟁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자국 시장을 해외 기업에 내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6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포니.AI는 올해 1분기부터 서울 강남 일대에서 자율주행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시범 차량 4대 중 3대는 자율주행 시범운행지구에서 주행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으며 1대는 고정밀 지도 구축 및 지형 정보 확보에 활용되고 있다.
포니.AI는 현재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선전 등 중국 4대 도시에서 유료 로보택시 서비스를 운영 중이며 유럽 시장 진출에 이어 한국에서도 전국 단위 운행 허가를 취득한 상태다. 제임스 펭 포니.AI 최고경영자(CEO)는 "해외 규제가 1~2년 내 정비되면 시장 성장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자율주행 기술 세계 2위 기업으로 꼽히는 바이두 역시 국내 최대 모빌리티 플랫폼 '카카오T'를 보유한 카카오모빌리티와의 합작을 통해 한국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이 빠르게 시장을 넓히고 있는 배경에는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있다. 지난 2017년 자동차 산업 중장기 계획을 통해 자율주행차를 고려한 도로 건설 방침을 제시했고 이후 △로드 트래픽 안전법 △지도 제작법 개정 △데이터 보안 규정 정비 △공공 도로 무인 운행 허가 등 구체적 로드맵을 순차적으로 마련했다.
반면 한국은 2021년 자율주행 자동차법(자율주행 특별법)을 제정해 상용화를 유도했지만 실질적인 성과는 미미한 상황이다. 특히 자율주행 과정에서 수집되는 영상정보 데이터는 규제 샌드박스를 통과해야 활용할 수 있으며 외부망과 분리된 폐쇄된 환경에서만 사용이 가능해 제도적 장벽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율주행 기술 개발에는 보행자 시선, 아동·노년층의 걸음걸이 등 실제 움직임 데이터가 중요하지만 영상 속 인물·사물 블러 처리로 인해 인공지능(AI)이 정밀하게 학습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업계는 "현행 규제로는 기술 자체가 고도화될 수 없다"라고 입을 모은다.
이에 지난 3월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포함한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의원 11인은 자율주행 R&D를 위해 원본 영상 활용을 허용하도록 개인정보 보호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을 담은 '자율주행 자동차 상용화 촉진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발의했으나 현재 해당 법안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택시 업계의 반발도 현실적인 걸림돌이다. 자율주행 스타트업 관계자는 "로보택시 확대로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규제뿐 아니라 투자 유치조차 쉽지 않다"라고 말했다. 지자체 지원 예산 역시 같은 이유로 택시보다는 자율주행 버스 등 상용화 속도가 빠른 분야에 집중되고 있다.
업계는 신사업과 기존 업계 간 충돌로 스타트업들이 과감한 투자를 주저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지적하며 국내 모빌리티 혁신이 또 다른 '타다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일각에선 로보택시가 오히려 법인 택시 업계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7월 기준 서울시에 등록된 법인 택시 2만2600대 가운데 5810대는 운행하지 않는 '휴업 택시'로 분류돼 전체의 약 25.7%에 이른다.
현행법상 로보택시 역시 택시 면허가 필요하므로 면허를 가진 법인이나 개인과의 협업이 필수적이다. 이 경우 정기 임대료를 통해 기존 택시 면허 소유자도 소득을 보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여성경제신문에 "중국은 대도시를 테스트베드로 활용해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이미 확보했고 알고리즘 수준도 한국보다 3~4년 앞서 있다"라며 "자율주행에 대한 규제 완화와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는 보험 체계 마련이 시급하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지금처럼 방치한다면 국내 기술 자립도는 더욱 떨어지고 결국 해외 기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성경제신문 김성하 기자 lysf@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