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의 정치In] 감정보다 이성이 앞서야 할 정치

[신율 칼럼] 윤 전 대통령 '속옷 저항' CCTV 공개하려는 여당 전 대통령 망신 주자고 국격 훼손 아랑곳 않는가

2025-08-26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더불어민주당 3대 특검 종합대응특별위원회의 의원들이 11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수감된 서울구치소를 방문해 취재진 앞에서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당이 빠르면 25일 법사위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구치소 CCTV 자료 제출 요구를 의결키로 했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이른바 '속옷 저항' 관련 CCTV를 공개하려는 것이다. 윤 전 대통령 측은 지병으로 인한 체온 조절을 위해 속옷을 착용했을 뿐 저항 의도는 없었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해당 사안 발생 당시 전 세계는 이를 보도했고 많은 국민은 불편한 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누구의 말이 옳든 중요한 것은 이런 일이 전 세계에 보도됨으로써 국격 추락에 따른 창피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특검 소환에 응하지 않은 윤석열 전 대통령을 옹호하려는 것은 아니다. 전직 대통령이라면 한때 대한민국을 이끌었던 지도자로서 당연히 법을 준수하는 모습을 보여야 했다. 자신에게 비록 불리하더라도 민주주의의 핵심 토양인 법치 확립을 위해 법의 요구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여야 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니 비난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CCTV 공개를 추진하는 민주당의 행보 역시 이해하기 어렵다. CCTV가 공개되면 전 세계의 주목도는 더 높아질 것이고 우리 국민은 해외에서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할 정도의 창피함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란 본래 권력적 현상이다. 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노력의 과정이 정치라는 말인데 권력 획득을 위해서는 선거에서 승리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진영뿐 아니라 다수 국민의 지지를 확보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상대 진영을 무시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 상대 진영을 지나치게 무시하고 자신의 주장만 앞세우면 중도층의 지지를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점이 중요하다. 상대가 싫어도 최소한 상대를 정치적 파트너로 인정해야만 선거 승리도 가능하고 이를 통해 권력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적 상대방에 대한 '이성적 접근'이 필요하다. 그런데 민주당은 지금 뭔가를 착각하는 것 같다. 이번 대선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승리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기 때문이다. 윤 전 대통령이 상상을 초월한 불법적이고 위헌적인 계엄을 선포했기 때문에 그 반대급부로 권력을 잡을 수 있었다는 것인데 이렇게 승리한 것을 두고 자신들에 대한 '절대적 지지' 덕분이라고 착각하는 것 같다는 말이다. 

지금 민주당이 CCTV 공개를 추진하는 것 역시 이런 착각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민주당은 집권 여당이다. 야당도 마찬가지겠지만 집권당은 특히 대한민국의 여러 측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거기에는 당연히 '국격'도 포함된다. 여당은 국격을 제고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는 뜻이다. 국내적으로 갈등이 있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에 대해 창피를 주거나 나쁜 여론을 형성시키기 위해 국격 추락을 무릅쓴다고 가정하면 이는 여당이 할 일이 아니다. 아마도 민주당 역시 이런 측면을 모르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식의 주장을 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려고 하는 것은 '이성'보다는 '감정'이 앞서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민주당을 비롯한 진보 진영의 행동을 보면 정치에서는 있어서는 안 될 '정치에 대한 감정 이입'의 흔적을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감정’ 때문에 일종의 분풀이 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말이다. 이것이 윤 전 대통령 한 사람에게만 국한돼도 문제지만 이런 감정적 행위가 국가 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면 이는 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또한 감정이 정치를 지배하게 되면 정치 자체가 사라지게 된다. 이는 곧 민주주의의 종말을 의미한다.

우리는 비상계엄이라는 엄청난 사건을 겪었다. 이런 상황에서 여당이 해야 할 일은 놀란 국민의 마음을 다독이고 분열한 대한민국을 통합시키려고 애쓰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감정의 절제'가 필요하다. 상대방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국격을 고려한다는 것은 '이성적' 접근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지금이라도 민주당은 이성적 차원에서 정치를 해야 한다. 그래야만 여당다운 모습 그리고 대한민국을 위한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특정 진영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한국국제정치학회 부회장
한국세계지역학회 부회장
한국국제정치학회 총무이사
통일부 정책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