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탓도 어렵겠네···'쌀·소고기 개방=새로운 요구'란 외교부 주장은 허구

조현 장관, 한일 회담 건너 뛰고 급거 방미 백악관 이미 밝혔으나 韓이 쉬쉬해온 내용 미국 원화 절상 압력 작전까지 세워뒀는데 재계 총수 동원해 농축산물 방어전에 투입

2025-08-22     이상헌 기자
조현 외교부 장관과 수기오노 인도네시아 외교장관이 21일 서울 외교부에서 열린 외교장관회담을 하기 위해 함께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에 농축산물 시장 개방을 본격적으로 요구하고 나섰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23일 예정된 한일 정상회담 배석을 포기하고 급거 미국으로 향했다. 외교부는 “정상회담 조율을 위한 방문”이라고 설명했지만 실제론 농축산물 카드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22일 한겨레신문 보도에 따르면 조 장관은 이재명 대통령의 방미 일정에 앞서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정부 관계자는 “농축산물 관련 새로운 요구가 제기돼 조율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사안은 이미 구윤철 경제부총리가 트럼프를 만난 당시 협상 테이블에 오른 내용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요구’라 보기 어렵다.

조 장관의 조기 방미는 전날 전격적으로 결정됐다. 그는 직항편이 아닌 경유편을 이용할 만큼 촉박하게 출발했으며, 워싱턴에서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등 미 행정부 인사들을 만날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는 “첫 한·미 정상회담의 무게감을 감안해 현장에서 직접 최종 점검할 것”이라고 밝혔다.

외교 수장의 이례적 일정 변경은 사실상 농축산물 문제를 둘러싼 미측 압박이 격화됐음을 보여준다. 여권 관계자 역시 “트럼프 쪽이 수용하기 어려운 요구를 제기해 이를 조율하기 위해 급거 방미한 것”이라고 전했다. 정상 간 만남이 이뤄지기도 전에 감춰왔던 고름이 터진 셈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 재계 총수들을 대거 대동한다. 정부는 ‘경제 협력 확대’를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실상은 쌀·소고기 등 농축산물 시장 개방 압박을 막아내기 위한 완충장치 성격이 짙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경제사절단은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비롯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박지원 두산에너빌리티 회장,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구광모 LG 회장,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이재현 CJ 회장, 허태수 GS 회장,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최수연 네이버 대표 등 사실상 ‘전 산업권 총동원 체제’다.

그러나 워싱턴 현지에선 이번 경제사절단을 ‘농축산물 개방 협상에 끌려가는 동행자’ 정도로 평가한다. 산업·IT·제조를 대표하는 재계 수장들이지만 정상회담 테이블에서 실질적 역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미 3500억 달러 대미 투자 약속과 90% 수익 환류 구조 등 핵심 사안은 합의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최측근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 8월 2일 공식 브리핑에서 “한국 기업의 수익 90%가 미국 국채 상환 등 정부 재정에 쓰인다”고 밝혔다. 이는 미국이 한국 기업의 대미 투자 수익을 단순 세제 차원이 아니라, 국가 재정 보전 장치로 강제 환류(repatriation)하는 구조를 명시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1985년 플라자합의보다 훨씬 노골적인 조치다. 당시 미국은 일본에 엔고 압박을 가해 단기간에 환율을 두 배 가까이 끌어올렸고, 일본은 내수 부양을 위해 금리를 낮췄다. 그 결과 자산·부동산 버블이 형성됐다가 붕괴하며 ‘잃어버린 30년’으로 이어졌다. 이번에는 우회적 압박이 아니라 미국채를 사들이게 하는 방식의 90% 수익 귀속이라는 직접적 개입이 선포됐다.

미국의 통상·투자 협상 실세는 스콧 베센트 재무부 장관이다. 농축산물 개방은 정치적 목표이고, 기업 수익 환류는 재정 카드이며, 원화 환율 압박은 금융 카드다. 관세 부담을 만회하기 위해 한국은행이 환율을 조정하려 해도 미국은 미리 절상 압력을 가하며 한국을 구워삶을 가능성이 크다.

재계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에 “지금까지 외환차익을 보고 코스피에 들어온 외국인을 두고 밸류업이라 떠든 이들이 낭패를 볼 것이다. 신한금융지주 오건영 연구원을 필두로 ‘대만 사례가 언급되며 사전적으로 환율을 조정하는 시나리오’가 나오는데 미국이 이를 모를 리 없다”며 “자칫 환율조작국 논란으로 번질 수 있는 위험한 시도”라고 지적했다.

여성경제신문 이상헌 기자 liberty@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