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후유증 단 '몇 차례' 지원하고 끝···"지속 관리 필요"

참사·재난 대응 인력 심리 지원 환자 맞춤형 꾸준한 치료 관건 횟수보다 이어가는 연속성 중요

2025-08-21     김정수 기자
2022년 10월 30일 새벽 소방 대응 3단계가 발령된 사고 현장에 급파된 119 구조대원들이 희생자 구조활동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태원 참사 현장에 투입됐던 30대 소방관이 실종 열흘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고인은 참사 이후 후유증으로 수차례 심리 상담과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재난 대응 인력에 대한 국내 심리 지원 체계의 한계가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21일 인천소방본부와 경찰에 따르면 고인은 참사 직후인 2022년 10월 31일부터 두 달간 소방청이 제공한 ‘이태원 사고 관련 긴급 심리 지원’ 프로그램에 9차례 참가했다. 같은 해 말에는 외부 병원을 찾아 우울증·불안·주의력 검사 등 정신과 치료를 4차례 받았다.

이후 2023년부터 올해까지 소방청이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심리 상담도 세 차례 받았다. 이태원 참사 특화 프로그램에는 더 이상 참여하지 않았다. 상담과 진료가 이어졌지만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맞춤형 관리 체계는 부족했다는 평가다.

고인은 지난 10일 새벽 남인천요금소 인근 갓길에 차량을 세운 뒤 연락이 끊겼다. 경찰은 20일 낮 경기 시흥시 고속도로 교각 아래에서 시신을 발견했다. 타살 혐의점은 없었으며 휴대전화에는 가족과 지인에게 미안하다는 취지의 메시지가 남아 있었다.

소방청에 따르면 이태원 현장에 투입된 소방대원은 1316명이다. 당국은 참사 직후 약 11개월간 ‘집중 지원’ 기간을 운영해 1629건의 1차 스크리닝(중복 포함)과 고위험군 28명을 포함한 142명 심층 상담(총 334건), 병원 연계 178건을 진행했다. 다만 이후 ‘찾아가는 상담실’이나 연례 설문은 자발적 신청과 정례 점검 위주라 개별 대원의 상태를 장기·체계적으로 추적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소방 내부의 심리 부담은 통계로도 드러난다. 소방청이 실시한 마음건강 설문조사에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호소한 비율은 2023년 6.5%에서 지난해 7.5%로 늘었다. 우울 증상 응답은 6.3%에서 6.5%로, 자살 위험군은 4.9%에서 5.2%로 각각 상승했다.

소방청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이태원 참사와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에 투입된 3300여 명을 대상으로 긴급 추가 상담을 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참사 출동 대원 전원에게 개별 전문 상담사를 지정하고 선별·검사·치료가 한 번에 이어지는 원스톱 지원 체계를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상담 비용은 전액 지원된다.

지난해 10월 29일 압사 사고가 발생했던 이태원 1번 출구 인근 골목에는 피해자들을 추모하는 손길이 이어졌다. /김정수 기자

해외에서는 재난 피해자 전반을 대상으로 한 장기 지원 체계가 자리 잡고 있다. 미국은 대통령 재난 선포 시 연방재난관리청(FEMA)과 보건복지부 산하 약물남용·정신건강청(SAMHSA)이 운영하는 ‘위기상담지원프로그램(CCP)’을 가동한다. 단기 지원은 최장 60일, 필요시 최대 9개월까지 연계되며 24시간 재난 스트레스 핫라인도 운영된다.

일본은 2013년 도입된 재난정신의료지원팀(DPAT)을 통해 정신과 의사·간호사·심리사 등으로 구성된 전문팀을 피해 지역에 파견하고 필요에 따라 수개월간 지역사회와 연계한 장기 치료를 이어간다. 두 제도 모두 특정 직업군이 아닌 재난 피해자 전체를 대상으로 하되 현장 대응 인력도 지원 범주에 포함한다.

특수 사례로 미국은 9·11 테러 이후 ‘월드 트레이드 센터(WTC) 건강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이 제도는 자드로가법(Zadroga Act)에 근거해 2090년까지 연장됐으며 구조 인력과 생존자를 사실상 평생 추적 관리한다. 소방관·경찰·응급구조 대원은 물론 청소·자원봉사 인력도 포함된다. 정신건강은 물론 신체 질환까지 포괄 관리하며 생존자 수를 통계화한다.

차승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트라우마나 PTSD는 몇 차례 상담으로는 극복이 어렵고 지속적이고 꾸준한 치료가 필요하다. 보통의 우울·불안도 최소 6개월 이상, 1~2년 이상 계속 치료한다”며 “그럼에도 국내 제도는 9번, 10번 같은 정해진 횟수 중심으로 운영돼 사실상 ‘하다 만 것’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환자마다 개인적 요인도 작용하기 때문에 단정은 어렵지만 본인이 힘들어할 때는 증상이 호전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맞춤형 관리가 필요하다”며 “현재처럼 형식적·보여 주기 식 지원으로는 실질적 회복이 힘들다”고 말했다.

여성경제신문 김정수 기자 essence@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