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미 더봄] 어르신 말투를 어찌하리?

[이수미의 할머니 육아] 알게 모르게 손주에게 스며든 할머니 말투

2025-08-25     이수미 전 ing생명 부지점장·어깨동무 기자

아이가 말을 배워 가는 과정은 참으로 경이롭다. 옹알이부터가 시작이다. 첫아이의 옹알이를 보고 엄마가 느끼는 환희와 기쁨은 육아의 모든 고단함을 보상하고도 남는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모두 수다쟁이가 된다. 아이가 듣건 말건, 보건 말건, 계속 말을 하면서 대화를 시도한다.

어느 날, 아기가 엄마와 눈을 맞추면서 입술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한다. 엄마 말이 끝나면 무슨 소리를 내고, 또 엄마 말이 끝나면 반응을 한다. '주거니 받거니'를 하게 된다. 처음에는 의심스럽기도 하다. ‘우연히 낸 소리인가?’

서너 번 반복하다 보면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 ‘아··· 대꾸를 하는구나···.’ 엄마는 더 수다쟁이가 되고 아이는 엄마와 대화를 주고받으며 울고 웃는다. 그때부터가 아이 키우는 재미의 시작이다.

손주는 이제는 어엿한 초등학생 능변가가 되었다. /이수미

손주는 말이 빠른 편이 아니었다. 사내아이라 그런가, 말보다 몸인가? 그러면서도 감정적인 반응은 누구보다 활발했다. 사실, 엄마들보다는 할머니들이 더 수다쟁이다. 목소리도 더 크고 반응도 과장이 심한 편이다. 많이 들어야 말을 잘한다는 것쯤은 아는 할머니라서 정확한 말을 많이 해주려 애썼다.

단어가 문장이 되고, 꾸밈말이 들어가 제 생각까지 담게 되려면 몇 년이 걸린다. 게다가 한국말은 얼마나 어려운 언어인가. 할머니도 ‘함미’로 시작하더니 ‘할미’로, 어려운 발음인 할아버지는 ‘하비’로 몇 년을 불렸다.

문제는 할머니가 키우면서 알게 모르게 터득한 '어르신 말투'다.

“할머니! 나 힘이 장사지?”
“아이고, 집이 엉망진창이 됐네.”
“이러면 뭘 보고 배우겠어?”

답답하면 깊은 한숨도 내쉬고, 적절할 때 혀도 끌끌 찬다. 처음엔 기특하다고 웃다가, 젊은 세대가 안 쓰는 말들을 내가 많이 했고 애가 자연스럽게 배웠음을 깨달았다. 큰 문제는 아니지만 듣고 배우는 것이 이렇게 무섭구나, 경각심이 든다.

살면서 겪어보니 말에 품위가 있는 사람이 있고 뭔가 경박한 말투의 사람도 많다. 본인은 전혀 의식하지 못한다. 말 배울 때 노출된 환경 탓이 아니겠는가. 어차피 학교에 가서 제 또래들과 어울리다 보면 자연스레 고쳐지는 '어르신 말투'이겠지만,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옛말을 다시 한번 되새긴다.

여성경제신문 이수미 전 ing생명 부지점장·어깨동무 기자 leesoomi71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