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웅익 더봄] 방학천 이야기
[손웅익의 건축마실] 작은 물길 하나가 품고 있는 수많은 삶의 이야기
지하철 1호선을 타고 가는데 누가 큰 목소리로 “나 지금 방학이야~!” 하기에 쳐다보니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이었다. 무슨 노인대학이 방학인가 하고 잠시 고민하던 차에 지하철 안내 방송이 나왔다. “이번 역은 방학역입니다.” 서울에도 재미있는 지명이 많이 있다. 그중에 방학동은 온통 방학이다. 유치원도 방학이고 초, 중, 고도 모두 방학이다.
그런데 방학동에는 일 년 내내 방학이 없이 흐르는 방학천이 있다. 방학천은 중랑교로 유입되는 13개 지류 중 하나다. 방학동에 접한 도봉산 기슭에서 발원하여 상계교 인근에서 중랑천으로 흘러 들어간다. 오늘은 상계교 인근에서 방학천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 본다. 며칠 전 폭우로 여기저기 가이드레일이 넘어지고 우수 맨홀도 떨어져 나간 곳이 있어 위험한 구간이 있다.
아침부터 소나기가 두 차례 지나갔다. 소나기 지나면 하늘은 더 청명해진다. 아침부터 방학천 변을 걷는 사람들이 많다. 며칠 전 폭우 때 곧 넘칠 듯 몰려 내려가던 흙탕물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평소대로 잔잔해졌다. 여기저기 오리가 주둥이를 물속에 넣었다 뺐다 하면서 무얼 찾아 먹는다.
방학천을 가로질러 지나가는 지하철 1호선 철길이 하류와 중류를 구분한다. 철길 밑을 통과해서 중류로 올라가면 ‘방학천 문화예술 거리’가 나온다. 줄여서 ‘방예리’라고 부른다. 아담한 각종 공방과 매장, 카페, 음식점들이 방학천 양쪽에 죽 늘어서 있다. 매장마다 이름이 특별하고 간판이나 인테리어도 특색이 있어 지나가면서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다.
여기서부터는 방학천을 걸어 오르는 내내 북한산 인수봉의 거대한 바위가 바라보인다. 오늘은 구름이 정상을 휘감고 있어 인수봉이 더 신비롭게 보인다. 방학천은 대략 600m 정도의 짧은 하천이라 금방 상류에 이르게 된다. 상류에는 발바닥공원이 있다. 말 그대로 맨발로 걸을 수 있는 황톳길을 잘 만들어 두었다. 근처 아파트에 사는 어르신들이 맨발로 줄지어 걷고 계신다.
방학천을 복개한 상류 도로 옆 화단에 김수영의 시비가 있다. ‘풀이 눕는다. /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이렇게 시작되는 시는 두꺼운 철판에 새겨져 화단 풀밭에 비스듬히 누워있다. 김수영 문학관에 들어가니 땀이 난 등짝이 서늘해진다. 영상관에 잠시 앉아 시인 김수영의 짧은 삶과 시에 대해 생각해 본다. 평일 개관하자마자 들어오니 관람객은 나 혼자다.
김수영 문학관을 지나 방학천의 발원지인 북한산 자락에 이르면 조선의 10대 국왕 연산군 묘가 있다. 그냥 지나치려다가 잠시 들렀다. 1513년에 조성되었다고 하니 512년이 흘렀다. 연산군 묘 바로 옆에는 거창군 부인 묘가 있고 바로 아래에는 의정궁주 묘가 있다. 그리고 그 아래 연산군의 딸 묘와 사위의 묘가 있다. 연산군 가족묘를 전부 합쳐도 다른 왕의 능 규모에 비하면 백분의 일도 안 된다. 그래도 한때 왕이었는데 묘가 너무나 초라하다.
방학동은 600여 년 전에 파평윤씨가 최초로 정착한 동네다. 연산군 묘 바로 옆에 원당샘이 있다. 원당샘은 600여 년 전에 파평윤씨가 이 동네에 정착하면서 생활용수로 사용하던 샘이라고 전해진다. 그 오랜 세월 동안 북한산 자락에서 솟아 나온 물이다. 원당샘에서 목이라도 축이렸더니 중년 남자가 2ℓ짜리 페트병 십수 개를 세워두고 계속 약수를 채우고 있어, 그냥 지나쳤다.
연산군 묘 바로 앞에 서울시 지정 보호수 1호인 거대한 은행나무가 서 있다. 수령이 870년 정도라고 한다. 이 은행나무는 파평윤씨 일가가 이 동네에 정착하는 것도 봤고 연산군이 이곳에 묻히는 것도 보았을 것이다. 문득 지금의 정치 상황이 오버랩 된다. 주어진 권력을 잘못 사용한 왕이 폐위되어 누워있는 이 작고 초라한 묘는 그 자체로 이 시대 정치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여성경제신문 손웅익 건축사·수필가 wison77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