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라 더봄] 사용이 어떻게 의미를 창출하는가?
[윤세라의 미술관에서 만나는 세계와 나] 태국 출신 티라바니자의 작품 세계 관람객과 함께 예술과 삶 사이 경계를 오락적 환경으로 조성, 퍼포먼스화 예술과 일상적 삶 사이의 거리 좁히기
인생의 많은 시간을 길 위에서 보내며 글로벌한 삶 속에서 일상의 삶과 예술 사이를 좁히는 것이 항상 자신의 관심사라고 말하는 태국 출신의 러크리트 티라바니자와 그의 작품 세계를 소개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시대 현대 미술 경향을 가장 드라마틱하게 변혁하며 예술의 경계를 확장하는 진정한 창조 아이콘으로 여기는 작가이다.
그는 1961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나 태국, 에티오피아, 캐나다에서 자랐으며 오타와와 토론토에서 대학에 다녔고, 베를린과 뉴욕 그리고 시카고에서 공부하고 현재는 베를린, 뉴욕, 치앙마이를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외교관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다양한 문화와 언어를 체득하고 다름과 새로움 또는 복합적이고 통합적인 것들을 이해하는 능력을 자연스럽게 경험했던 배경을 가지고 있다.
요리와 같은 개인적이고 공유된 공동체 전통 중심의 친밀하고 참여적인 작업을 예술 작업의 매개로 사용하며 그 의미를 창출하는 작가로 그의 작업은 "근본적으로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인간 상호작용의 관계 미학은 관람객과 함께 예술과 삶 사이의 경계를 오락적 환경으로 조성하여 반복되는 일상의 삶은 그의 작품 속에서 이벤트가 되고 퍼포먼스가 된다.
1990년대 아방가르드 예술 관행에서 벗어난 그의 작업 속에서 관람객은 일상의 공간이 특별하게 변화하는 경험을 하며 스쳐 지나가는 삶의 소중함을 인지하고 공동체와 소통하고 협업하도록 격려한다.
1990에 시작된 그의 ‘팟 타이’ 시리즈에서 보여주듯 그는 관람객들을 위한 음식을 요리하여 나누고 흰색 방안에 여러 유명 작가의 모조품들을 전시하며 존경받는 예술 작품의 우월성을 훼손하고 조롱하며 “우리가 예술이나 하이아트라고 생각하는 것과 일상에서 하는 일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것이 항상 나의 관심사다”라고 말하며 기존의 미술 시장을 비판한다.
자신의 아파트를 모방한 공간을 갤러리에 설치하여 문과 창문을 떼어내고 오픈하여 관람객들이 공유하도록 초대하며 개인의 공간과 사회적 공간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관람객에게 대접하고 남은 음식, 캠핑 장비, 혹은 탁구대와 같은 일상용품들(quotidian items)을 설치하여 사람들 사이 상호작용의 의미를 느끼게 하고 이용 가능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이는 사회 참여 윤리를 강조하여 목적 있는 장난기와 비판적 사고를 통하여 사용이 어떻게 의미를 창출하는지를 탐구하게 한다. 일상적인 기성품을 예술로 승화하여 예술계에 혁명을 일으킨 마르셀 두샹과 마찬가지로 티라바니자는 예술이 무엇인지에 대한 우리의 선입견에 의문을 제기한다.
1996년(잠/겨울)에는 공간에 짚 매트와 침대 매트리스를 제공하여 방문객들이 잘 수 있게 한다. 심지어 ‘Tomorrow is another fine day(2004-2005)’는 이스트 빌리지 아파트를 충실히 재건축하여 대중에게 냉장고, 조리 공간, 침대를 24시간 이용할 수 있도록 제공한다.
이러한 작품들은 90년대의 경제적 여파를 경험하는 대중에게 절실히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했다. 이 기간 뉴욕시와 쾰른에서는 실업률이 거의 두 배로 증가했다.
즉각적인 시간에 대한 반응과 관객의 자발적 참여는 작품과 공간을 활성화하고 변화시킨다. 누가 무엇을 소유하는지 그리고 언제, 어떻게 어디서 얻는지 티라바니자는 이러한 질문들을 분해하여 소유권의 개념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 결과는 무엇인지에 대해 고찰하고 있다.
그는 새로운 장소에서 전시할 때마다 참여하는 모든 새로운 관객들이 그 장소를 독특하게 변화시킨다는 점에서 관객과의 상호작용이 자신이 시작하는 상황을 어떻게 변화시킬지에 대한 탐욕스러운 기대감을 전제로 공간과 작품을 구성한다. 관객의 참여와 반응이 작업의 주요 미디움이 되는 것이다.
근작 2023년 10월, 뉴욕현대미술관 모마(the Museum of Modern Art )의 피에스원(PS1)의 전시 ‘A LOT OF PEOPLE'에서는 티라바니자를 불안한 여행자로 묘사한다. 1994년 티라바니자가 마드리드 공항에서 레이나 소피아 박물관까지 트레킹한 경험을 소재로 한 전시에서 도보로 4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경로를 여러 날에 따라가며 현지인들과 자연스럽게 요리하고 소통한다.
PS1에서는 그 여정의 흔적을 담은 영상을 재생하고 길에서 얻은 영감들을 작품화하고 서구 중심의 예술 세계에서 그의 ‘타자성'을 느낄 수 있는 이민자로서의 경험을 다룬 설치 및 필름 실험에서부터 40년간의 경력을 망라한 회화, 판화, 비디오, 사진, 혼합 매체 집합체, 음악 등 다양한 미디어와 설치물을 볼 수 있다.
브레이싱 MoMA PS1 설문조사는 'A LOT OF PEOPLE’을 2023년 최고의 박물관 전시회로 뽑았다. 또한 그의 사회적 관계 미학은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개방성과 참여를 강조하며 예술계의 구조적 한계에 진정한 도전을 하고 있는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나는 그의 전시 기획에 참여했던 경험으로 개인적 편향된 관점으로 'FEAR EATS THE SOUL’ 전시의 감상을 독자들과 나누고 싶다.
'FEAR EATS THE SOUL: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Angst Essen Seele Auf)’는 1974년 독일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Rainer Werner Fassbinder)의 동명 영화 제목이다. 사회적 상호작용, 문화적 갈등, 예술과 삶의 모호함 등의 주제를 탐구하는 작품으로 다양한 요소를 포함하며, 관람객이 사회적인 환경에서 예술에 역동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한다.
두려움은 사람의 인간성과 사랑, 연민, 타인과의 연결 능력을 약화할 수 있고 특히 ‘타인’에 대한 두려움이나 사회적 반대에 대한 두려움이 어떻게 소외와 진정한 자아 상실로 이어지고 또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갤러리 전체가 전시 공간이지만 전시 초기에 방문한 관람객들은 입구의 벽에 써진 ‘NO SOUP’ 네온사인을 보며 전시실에 들어와 텅 빈 흰색 벽에 작가가 크게 그린 “FEAR EATS THE SOUL”이라는 문구를 본다.
건물에서 뜯긴 창틀들이 벽에 기대어져 있고 합판으로 칸막이를 한 공간 안은 실크 스크린 티셔츠 워크 숍으로 모호한 문구들이 프린트된 흰색 티셔츠들이 걸려 있다. 그리고 전시실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긴 간이 식탁과 벤치들이 있고, 전시실의 코너를 돌아가면 고든 클럭의 몇몇 작품들이 있다.
막다른 벽엔 눈동자만 한 구멍에 속눈썹이 그려져 있다. 그 구멍으로 들여다본 공간은 마치 건축이 중단된 공사장 같기도 한데 한가운데 먼지로 뒤덮인 SUV 자동차가 반쯤 비닐로 덮여 있다. 인류의 미래를 잠시 엿본 것 같은 느낌이다.
관객들이 의아함과 불안함으로 방황할 때 뮤지엄 안내원들은 틀에 박힌 상술로 티셔츠 워크 숍에서 티셔츠를 직접 만들어볼 것을 권유한다. 관람객들은 20달러를 지불하고 실크스크린 프린팅 티셔츠 만들기 쇼핑을 한다.
워크 숍의 뒤쪽 공간은 작가가 바닥에 깔고 잤던 간이 매트리스와 음악 CD들이 나뒹굴고 있다. 한쪽엔 앤디 워홀의 모조품 브릴로 박스(Brillo Boxes)와 코카콜라 박스가 쌓여 있고, 그것들은 모두 세라믹에 팔라듐 광택으로 코팅된 번쩍이는 팝 아트 작품들이다.
이 설치 미술 공간은 우리가 매일 쓰고 보는 것들의 의미를 재조명하고 사회적 상호작용을 장려하고 예술과 일상생활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사회적 참여와 공동체 경험을 위한 공간을 창출한다.
관람객들은 의구심을 갖고 전시장 곳곳을 살피고 경험하며 전시물의 의미를 찾으려 고민하고 방황한다. 자연스럽게 쌓여가는 불안과 어색함, 불편한 의문들은 이러한 기본적이고 철저하게 상업화된 요소들을 사용하였다.
전시장 가장 안쪽에 설치되어 있는 것은 수프 키친(Soup Kitchen)으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이동하고 줄을 서서 수프를 받아 긴 식탁에 다른 관람객들과 함께 앉아 먹는다.
따뜻한 수프를 먹으며 그제야 관람객은 자신의 앞에 혹은 옆에 앉은 사람들을 바라보고 ‘Hi’ 하고 인사를 건네고 이름을 묻기도 하고 자신을 소개한다. 자연스럽게 전시에 대한 의견도 나누며 대화는 진지해지기도 한다.
명성이 높은 뮤지엄 레스토랑의 셰프가 유기농 재료를 이용하여 만든 품위 있는 맛을 자랑하는 수프다.
이 모든 것은 부드럽게 연결되고 미소와 환대로 무장 해제된 관람객은 지금까지의 혼돈과 불편함을 순식간에 날려버리며 마음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공짜 수프의 위력이다. 해피 엔딩의 영화와 같이 한 그릇의 수프가 만든 유쾌함과 함께 그들은 뮤지엄을 떠난다.
방문객들은 환대와 상업, 대중과 개인, 진정성과 연극이 혼합된 공간을 탐색하면서 그 설치 미술의 주인공인 자신을 외부인으로 믿으며 감상을 마친다. 중요한 것은 갤러리, 복제품, 주방, 작업장 등 결코 매끄럽지 않은 공간의 모호한 정체성이 가져온 작은 협상의 순간들이다.
비어 있는 흰 벽은 우리들의 시간을 공간으로 형상화했다. 지역의 작가들이 그린 그라피티는 마치 역사 속에 개인이 남기고 지나간 흔적이고 그렇게 앞서 간 사람들의 역사는 뒤에 오는 세대에 의해 덮이고 또 덮인다.
개인의 낙서는 누구도 이해할 길이 없고 또 누구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역사를 만들어 가기에 바쁜 사람들은 모두 앞도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마치 맨해튼을 가득 채운, 전 세계에서 몰려든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들을 스치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지 않는 것과 같다.
우리는 가끔 이해할 수 없는 영어나 외국어를 프린트한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을 본다. 외국어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저 패션의 디자인쯤으로 생각하며 그 옷들을 입는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나는 규정되고 정의된다. 사회는 사람들을 그렇게 분류하고 차별한다.
티라바니자가 모조품으로 쌓아 둔 유명 작가의 작품으로 표현된 미술계의 오래된 장르별, 성별, 인종별 계급 관행의 불평등과 비 공정성은 다른 기회에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인종, 종교, 정치 성향으로 극단적으로 양분화되는 세계를 무엇으로 통합할 수 있을까? 현대인들의 두려움을 무엇으로 위로하고 치유할 수 있을까? 보편적이고 단순하며 손쉬운 방법은 혹시 맛있는 음식을 나누어 먹는 것처럼 단순한 일은 아닐까?
나는 매일 새로운 사람들이 와서 같은 호기심과 의아함으로 전시실에 들어오고 같은 미소와 명랑함으로 떠나가는 모습을 보며 그 경험이 얼마나 아름답고 귀한 시간이었는지 기억한다.
음식을 나눠 먹는 상호 관계적 미학이 그를 통하여 새로운 다문화주의적 트렌드가 되었고 태국 정부는 “팟 타이 외교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문화 외교 또는 미식 외교의 도구로 사용하기도 했다.
태국 치앙마이 산파퉁에서 현재 진행 중인 티라바니자의 예술, 건축, 환경 회복 프로젝트 ’The Land(1998 ~)’는 쌀 재배, 지속 가능한 주택 건설, 또는 태양광 발전 개발을 위한 실험실로 그와 뜻을 함께하는 지역 주민과 전 세계에서 모인 예술가들이 토지를 공유하며 커뮤니티로 개발하여 현실의 삶 속에서 예술과 이상을 함께 실현하는 도전과 연구를 함께 하고 있다.
티라바니자가 추구하는 관계 미학은 예술과 사람뿐 아니라 자연과 통합하는 사용의 의미를 삶 속에서 지속적으로 창출하고 있다.
여성경제신문 윤세라 Glenstone Museum 근무 lovelysarah0613@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