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주 더봄] 시간을 기록하는 '스마트폰 사진', 순간을 간직하는 '폴라로이드 사진'

[권혁주의 Good Buy] 인스탁스 와이드400 즉석카메라 '손에 잡히는 사진'의 가치 흘러가는 시간을 잠시 붙잡아두는 힘 폴라로이드 사진 한 장에 담긴 감성

2025-08-20     권혁주 쇼호스트

스마트폰 사진첩을 열어본다. 여행지의 아름다운 풍경, 맛깔스러워 보이는 음식 사진, 친구들의 해사한 얼굴, 어느 카페의 감각적인 인테리어 등. 얼핏 헤아려도 수천 장이 넘는 사진들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기억 못하고 있었는데, 내가 이런 사진도 찍었구나.” 순간을 무한으로 보관해 주는 위력을 지닌 디지털 사진. 다만, 그중 무엇이 소중했는지는 흐릿하다. 기록은 넘치지만, 기억은 희미한 셈이다.

후지필름 즉석카메라 인스탁스 와이드 400 /권혁주

올 초 즉석카메라를 하나 샀다. 후지필름의 <인스탁스 와이드 400>이라는 제품이다. 매트한 에메랄드색에 크기도 두께도 꽤 묵직하니 레트로한 감성이 물씬 묻어나는 카메라다. 얼핏 보면 장난감 같기도 한 이 카메라를 처음 알게 된 건, 사회자로 참석했던 어느 결혼식에서였다.

사회자석에서 바라본 하객들. 유독 한 분이 눈에 띄었다. 결혼식이 진행되는 동안 에메랄드색 묵직한 뭔가를 들고 사진을 찍는 모습. (나중에 알고 보니 그날 결혼식 신부의 친동생이었다) 곧바로 사진을 인화하는 걸 보아하니 폴라로이드 카메라인 것 같았다.

흔히 알고 있던 즉석카메라의 모양이 아닌지라 내내 호기심이 들었다. ‘결혼식에 폴라로이드 사진이라? 괜찮은데?’ 식이 끝나고 신부 친동생에게 가서 낯가림을 무릅쓰고 물어보았다. “저기 혹시, 아까 쓰셨던 카메라 뭐였나요?”

인스탁스 와이드 400을 샀다. 두 손 가득 감기는 묵직함, "이 카메라. 매력 있네." 하지만 이 카메라의 진짜 매력은 ‘불편함’에 있다. 디스플레이가 없다. 찍은 사진을 확인할 수 없다. 필터도 보정 기능도 없다. 뷰파인더로 보고 셔터를 누르면 사진이 바로 나온다. 돌이킬 수 없다.

무엇보다 한 장당 필름 가격이 2000원(와이드 필름이라 일반 필름보다 비싸다) 정도다. 스마트폰 사진처럼 와다다다- 찍고 맘에 드는 걸 고를 수도 없다. 그래서 찍기 전에 숙고하게 된다. 지금 내 동공이 보는 이 장면이 과연 간직할 만한 순간인가?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는 모습 /권혁주

그런데 이상하게도, 바로 그 질문이 사진의 밀도를 바꿔놓는다. 무심코 셔터를 누르지 않는다. 신중하게 된다. 누구와, 어디서, 어떤 표정으로 있는지를 의식하고, 프레임을 조율하고, 숨을 고른다. 마침내 하나 둘 셋, 찰칵! 사진을 찍는 사람도 사진에 찍히는 사람도, 이 한 장에 정성을 다한다. 그 순간은, 스마트폰의 간편함으로는 담을 수 없는 감정의 무게로 남는다.

그런 경험 있지 않은가? 고향집에 갔다가 발견한 먼지 쌓인 옛날 앨범을 마주한 경험. 멈춰진 사진들 위로 풍부한 이야기가 떠오른다. 손에 잡히는 사진의 특권이다. 기록했기 때문에 더 특별해진 감정의 흔적 같은. 어쩌면 그 감정을 재현하고 싶어 즉석카메라를 샀는지도 모르겠다.

폴라로이드 카메라는 일상 속 단 한 번의 시간을 조금 더 밀도 있게 간직하는 도구가 되었다. 나 같은 경우에는 목적을 정해두었다. 내가 운영하는 서점에 '뜻밖의 기쁨'으로 방문한 손님들을 기억하기 위해 카메라를 꺼내 든다. 그날의 분위기, 그날의 옷, 그날의 표정, 그날의 기분이 사진 한 장에 모두 담긴다. 

실물보다 못 나온 얼굴, 어둡게 나온 사진, 잘못 맞춘 초점이라도 그 안에는 오히려 서사가 있다. 완벽하지 않아서 오히려 완전하다. 빈틈이 있어야 이야기가 스며들 수 있고, 이야기가 들어가야 폴라로이드 사진 한 장이 완성된다. 그 순간들을 흘려보내지 않고 사진으로 남겨두는 일. 그게 이 카메라의 진짜 쓰임새다. 

폴라로이드 사진 /권혁주

최신 스마트폰처럼 선명하지 않은 '인스탁스 와이드 400' 카메라.  확대도, 보정도, 공유도 어렵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장점이 된다. 손으로 잡히는 한 장의 사진. 거기엔 흘러가는 시간을 잠시 붙잡아두는 힘이 있다.

뭐든 빨리 찍고, 빨리 넘기고, 빨리 잊는 요즘. 중요한 순간까지 그렇게 흘려보내선 안 된다고 느낀다면 —특별한 날, 특별한 사람을 만났다면— 한 장의 사진으로 그들을 내 삶 속에 머물게 해보자.

여성경제신문 권혁주 쇼호스트 kwonhj100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