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상담사가 '복지 사각' 26만명 발굴···"고령층 복지, 사람 손길 필수"
지자체 초기 상담 AI가 공무원 대체 1년간 43만명 통화해 위기 가구 분류 예산·비용 절감···생계 지원-취업 연결 "고령층은 정서적 지원 병행해야"
# '복지 사각지대 발굴 사업' 안내 문자를 받은 70대 박모 씨. 며칠 뒤 걸려 온 전화는 자신을 ‘AI 상담사’라고 소개하며 생활 형편을 물었다. 박씨는 보이스피싱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전화를 끊었다. 이후 주민센터에서 공무원이 직접 찾아와서야 복지 상담 전화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요즘 사기가 많다 보니 기계 음성은 더 믿기 어렵다”며 “필요한 도움도 결국 사람을 만나야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정부가 지난해 7월부터 1년간 ‘AI 활용 복지 사각지대 발굴 초기 상담 정보 시스템’을 운영한 결과 경제적 어려움 등에 처한 26만명이 지자체와 연결돼 긴급 생계 지원, 취업 정보 제공 등 복지 서비스를 받았다. 다만 AI 상담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류와 기술적 한계가 지적된다. 특히 고령층은 현장 자율성과 사람 간의 지속적인 관계 형성이 부족하면 복지·돌봄 지원에 한계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15일 한국사회보장정보원(정보원)에 따르면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7월까지 ‘AI 활용 복지 사각지대 발굴 초기 상담 정보 시스템’을 통해 43만1087명이 상담을 마쳤으며 이 중 26만5954명이 지자체와 연계돼 지원을 받았다. 정부는 매년 6차례 단전, 단수 등 47종의 위기 정보를 입수, 분석해 복지위기가구를 파악하고 사각지대에 놓인 가구를 발굴하고 있다. 이를 통해 위기 가구와 복지 수요를 파악한 다음 심층 상담과 가구 방문 상담을 진행해 사회보장급여를 주거나 민간 서비스를 연계한다. AI 상담 완료율은 60대 이상이 46.8%로 20대(18.5%)보다 높았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한국이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는 등 복지 관련 인력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단순 업무에 AI를 활용해 예산과 비용을 줄이는 시도를 하고 있다. 과거에는 지자체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이 직접 전화를 걸어 초기 상담을 했으나 지난해 7월부터 전국 101개 시군구에서 AI 상담을 시범적으로 도입했다. AI 상담은 대상자에게 건강, 경제 상황, 고용 위기 등과 관련한 공통 질문을 던진 뒤 위기 정보에 따라 추가 질문을 이어가며 상담 도중 전화를 끊더라도 최소한 생사를 확인할 수 있다.
상담 내용은 지자체 복지 담당 공무원에게 전달되고 이후 심층 상담이 이어진다. 시범 사업에 참여하는 지자체는 대상자가 전화를 받도록 미리 문자메시지를 발송해 안내한다. 긴급하게 복지 도움이 필요한 가구는 읍면동 주민센터에 신속하게 연락하도록 담당 공무원의 연락처를 함께 전달한다.
전문가들은 AI 상담이 일정 부분 효율성을 높일 수 있지만 복지의 실질적 효과는 결국 사람과의 직접적인 만남과 대화에서 나온다고 강조한다. 특히 고령층은 복지 수요가 많은 주요 집단으로 경제적 지원뿐 아니라 정서적 돌봄과 사회적 관계 회복이 병행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 치매안심센터 관계자는 “(노인의 경우) AI 스피커를 보급하는 연구에서도 설치와 점검을 위해 사람이 자주 찾아가면서 어르신과 대화가 늘어난 것이 긍정적 효과로 나타났다”며 “AI 서비스나 기기 등 기술은 매개체일 뿐 사람의 지속적인 방문과 대화가 정서 지원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중요한 것은 이웃 간 안부 확인과 돌봄 문화 조성”이라고 덧붙였다.
박승희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여성경제신문에 “AI 상담은 지자체가 수행하지만 실제 대상자 선정과 방식은 중앙정부 주도의 체계에서 이뤄지고 있어 기초지자체가 현장에서 주도적으로 판단하는 구조가 아니다”라며 “스웨덴처럼 기초지자체가 복지 수요 발굴부터 집행까지 전권을 갖는 구조라면 AI를 굳이 동원할 필요가 없다. 다만 지금처럼 중앙과 지방의 역할이 얽힌 상태에서는 AI를 보조 수단으로라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여성경제신문 김정수 기자 essence@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