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수의 첫조명] 잊힌 이름들···노들섬에 모인 여성 독립운동가 80인의 얼굴

서울문화재단 '독립, 너의 미래를 위해서였다' '여성 독립운동가 초상화展'서 잊힌 이름 조명 유관순 등 80인···각계 현장서 치열하게 활동

2025-08-15     김정수 기자
15일 여성경제신문이 노들섬에서 진행하는 '여성 독립운동가 초상화展'을 방문했다. /김정수 기자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얼굴이 광복절을 맞아 서울 한복판에 걸렸다. 올해 3월 기준 여성 독립유공자 포상자는 664명, 전체 독립유공자 1만8258명의 3.6%에 불과하다. 결코 작지 않았던 여성의 독립운동 참여가 기록에서는 여전히 부족한 현실을 이번 전시가 정면으로 마주했다.

서울문화재단이 광복 80주년을 맞아 연 기념행사 '독립, 너의 미래를 위해서였다'가 17일까지 서울 용산구 노들섬에서 열린다. 역사와 예술을 잇는 이번 기획은 과거-현재-미래를 서사적으로 연결해 광복의 의미를 재발견하도록 구성됐다.

사단법인 여성항일운동기념사업회가 보관한 80인의 초상화가 노들갤러리 2관 벽면을 가득 메웠다. /김정수 기자

15일 여성경제신문이 노들섬을 찾았다. 행사 프로그램 가운데 가장 주목받는 전시는 '여성 독립운동가 초상화展'이다. 사단법인 여성항일운동기념사업회가 보관한 80인의 초상화가 노들갤러리 2관 벽면을 가득 메웠다. 유관순 열사를 비롯해 황애시덕, 조신성, 차경신 등 여성 선각자들의 의연한 얼굴이 관람객을 맞이했다.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 김모 씨(여·24)는 "사진 속 인물들이 마치 '잊지 말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며 "이름조차 처음 듣는 분이 많아 부끄럽기도 했다"고 말했다.

여성 독립운동가 권기옥은 한국 최초의 여성 비행사다. /김정수 기자

대표적 인물로는 한국 최초의 여성 비행사 권기옥이 있다. 평양 출신인 그는 3·1운동에 참여해 구류를 겪은 뒤 임시정부 공채 판매·군자금 송금에 관여했다. 1920년에는 평양청년회 여자 전도단을 조직해 전국 순회강연과 비밀공작을 이끌었고 일경의 추적을 피해 같은 해 상해로 망명했다. 임시정부 추천으로 1923년 운남육군항공학교 1기에 입학, 1925년 졸업해 풍옥상 휘하 공군 등에서 한국 최초의 여성 비행사로 복무했다. 1943년 임시정부 직할 한국애국부인회를 조직(사교부장)해 독립운동을 이어갔다.

독립운동가 김규식과 결혼해 상해로 간 김순애는 1919년 상해에서 창립된 신한청년당의 주도 인물 중 하나로 여성 독립운동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 /김정수 기자

독립운동가 김규식과 결혼해 상해로 간 김순애는 1919년 상해에서 창립된 신한청년당의 주도 인물 중 한명으로 여성 독립운동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 의용단을 발기해 독립공채 모집과 사상 계몽을 이끌었고 대한애국부인회 회장으로 태극기 제작과 보급, 임시정부 회의장 준비 등 민중 기반의 선전에 앞장섰다. 대한적십자회 간호원양성소 설립을 주도했고 국제적십자회와의 외교적 교섭을 통해 적십자회의 독립을 실현하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이후 상해한인여자청년동맹과 임시정부 경제후원회, 애국부인회 재건에도 적극 참여했다.

황해도 장연 출신의 김마리아는 일본 동경에서 학업을 이어가다가 2·8독립선언문 수십 장을 가지고 귀국해 3·1운동 준비에 참여했다. 오른쪽 초상화는 유관순 열사다. /김정수 기자

황해도 장연 출신의 김마리아는 일본 동경에서 학업을 이어가다가 2·8독립선언문 수십 장을 가지고 귀국해 3·1운동 준비에 참여했다. 상해 임시정부 지원을 위해 군자금 모금과 독립선언문 배포를 주도했다. 고문으로 중병을 얻었으나 상해로 탈출해 남경 금릉대학에서 수학했으며 1923년 치료차 미국으로 건너가 파크대학을 졸업했다. 귀국 후 교육 활동을 이어가다 1944년 서거했다.

독립운동은 총과 칼을 든 무장투쟁뿐 아니라 교육, 계몽, 조직 활동, 구호사업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어졌다. 여성들의 독립운동은 사회 각계 현장에서 치열하게 전개됐다. 이름은 덜 알려졌지만 하층민과 노동자 등 삶의 현장에서 저항한 여성들 역시 독립운동의 주역이었다.

전시장 내부는 조명을 낮춰 초상화 속 인물들이 더욱 또렷하게 보였다. 방문객들은 발걸음을 천천히 옮기며 설명문을 읽고 한참 동안 그림 앞에 서 있었다. /김정수 기자

전시장 내부는 조명을 낮춰 초상화 속 인물들이 더욱 또렷하게 보였다. 방문객들은 발걸음을 천천히 옮기며 설명문을 읽고 한참 동안 그림 앞에 서 있었다. 가족과 함께 온 박모 씨(남·45)는 "광복절이면 늘 유관순 열사만 떠올렸는데 이렇게 많은 여성이 있었다는 걸 처음 알았다"며 "아이들에게 꼭 알려주고 싶다"고 했다.

서울문화재단은 "많은 여성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에 참여했지만 우리는 이들을 기억하지 못한다. 여성 독립운동가 80인의 초상화 전시는 이 잊힌 이름들에 주목한다"고 소개하며 "그들의 이야기는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지금 이곳에서 우리에게 다시 묻는다. '당신에게 광복은 어떤 의미입니까?'"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초상 앞에 선 시민들은 사진 속 인물들의 시선과 마주하며 각자만의 답을 떠올렸다.

서울문화재단은 "많은 여성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에 참여했지만 우리는 이들을 기억하지 못한다. 여성 독립운동가 80인의 초상화 전시는 이 잊힌 이름들에 주목한다"고 소개하며 "그들의 이야기는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지금 이곳에서 우리에게 다시 묻는다. '당신에게 광복은 어떤 의미입니까?'"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김정수 기자

노들섬 곳곳에서는 다른 전시와 설치물도 함께 운영되고 있다. '역사 속의 태극기展'은 최초의 태극기부터 현재의 태극기까지 변천사를 보여주고 1층 잔디마당에는 가로 40m, 세로 27m의 초대형 태극기 작품 '광복의 바람'이 펼쳐진다. '독립운동가의 말씀展'과 '태극기 역사기록 사진展'도 마련돼 관람객을 맞는다.

광복절 노들섬은 역사 속 인물들의 초상과 태극기 물결, 그리고 그 의미를 되새기는 시민들의 발걸음으로 가득했다. 그 속에서 마주한 얼굴들은 잊히지 말아야 할 역사적 증언이다.

서울문화재단이 광복 80주년을 맞아 연 기념행사 '독립, 너의 미래를 위해서였다'가 17일까지 서울 용산구 노들섬에서 열린다. /김정수 기자

여성경제신문 김정수 기자 essence@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