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주 칼럼] 핑크 필라테스 프린세스 PPP '웰니스의 새 계급'

[허영주의 크리에이터 세상] 핑크 필라테스 프린세스 트렌드 ‘애슬레저 룩’ PPP 스타일의 핵심 ‘운동·음료·뷰티·소품’ 소비 패턴 웰니스의 계급화를 보여주는 상징

2025-08-14     허영주 크리에이터
'핑크 필라테스 프린세스(PPP)' 트렌드를 일컬어 Urban Dictionary는 이를 "핑크색 옷을 입고 운동하며 말차를 마시고 뷰티 루틴을 지키는 소녀"라고 정의했다. /허영주 크리에이터 제공

‘핑크색 애슬레저를 입은 인플루언서가 필라테스를 하고 말차 라떼를 마시는 모습’ 인스타그램과 틱톡을 스크롤 하다 보면 이와 같은 장면이 반복해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해시태그는 언제나 #PinkPilatesPrincess, #softgirl, #cleangirl

이른바 '핑크 필라테스 프린세스(PPP)' 트렌드다. Urban Dictionary는 이를 "핑크색 옷을 입고 운동하며 말차를 마시고 뷰티 루틴을 지키는 소녀"라고 정의했다. Vogue Business는 더 직설적으로 PPP는 웰니스·운동·패션·뷰티를 통합한 핵심 소비자 계층이며 브랜드들이 무시할 수 없는 구매력을 가진 집단이라고 분석했다. 

필자는 처음엔 이것이 단순히 소셜미디어에서의 트렌드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 필자가 다니는 회사의 ‘집안이 좋은’ 인턴이 매일 말차 라테를 마시고 필라테스를 하는 것을 보며 이것이 진짜 그들의 라이프 스타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PPP는 어떻게 GenZ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이유는 단순하다. “나는 나를 돌본다”라는 메시지를 예쁘고 인스타그래머블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과거 필라테스가 중년 여성의 저강도 운동 이미지였다면 지금의 필라테스는 ‘고급 자기 관리’ 이미지가 되었다. PPP 트렌드는 과거 피트니스 문화와 완전히 다른 결을 가진다. 피트니스 문화가 힘과 파워를 보여준다면 PPP는 날씬함과 부드러움을 보여준다. 

PPP 트렌드에 말차가 함께하게 된 이유도 흥미롭다. 핑크에 초록이 더해지면 미적으로 건강한 느낌과 ‘젠(禪)’한 느낌이 추가되기 때문이다. 말차로 인해 힐링과 명상 같은 자기돌봄의 이미지가 떠올려지는 것이다. 

HYPERBAE가 분석했듯 말차는 PPP 세계관에서 필수 액세서리다. 실제로 인턴이 매일 말차를 마시는 모습은 매일 커피를 마시는 모습과는 달리 깔끔해 보인다 라는 인상을 남겼다. 

현재 PPP가 쓰는 제품은 마치 ‘공식 유니폼’처럼 정해져 있다. 먼저 옷은 알로(Alo)가 압도적으로 많다. 연핑크·살몬핑크 계열의 레깅스와 브라톱, 가벼운 크롭 집업이 기본 세트다. 운동 후 길거리에 나설 때도 그대로 입고 나갈 수 있는 ‘애슬레저 룩’이 PPP 스타일의 핵심이다.

텀블러는 스탠리(Stanley)가 자리 잡았다. 특히 한정판 핑크나 파스텔톤 컬러는 말차 라테를 담아 들고 다니는 PPP의 ‘필수 소품’이다. 손에 들린 텀블러 하나만으로도 그들이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지향하는지 단번에 드러난다.

헤어케어는 Gisou Honey-Infused Hair Oil이 상징적이다. 필라테스 후 드라이룸에서 머리끝에 오일을 바르는 모습은 ‘PPP의 마무리 의식’처럼 자리 잡았다. 꿀방울 모양의 고급스러운 병은 단순히 머릿결을 관리하는 제품을 넘어 ‘소프트 라이프’를 완성하는 장식품이 되었다.

결국 PPP의 소비 패턴은 ‘운동·음료·뷰티·소품’이 끊김 없이 연결된 패키지다. 옷, 음료, 화장대 위 아이템까지 모두 같은 세계관 속에 놓여 있을 때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은 완성된다. 

PPP 열풍은 당분간 이어질 것이다. '건강, 미학, 자기 관리'라는 메시지는 젠지뿐 아니라 밀레니얼, 심지어 알파 세대까지 포괄할 수 있는 키워드다. 

PPP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그들이 추구하는 건 운동 그 자체가 아니라 '예쁘게 나를 돌보는 삶'이라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이미지가 모두에게 같은 방식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누군가에겐 동경이지만 누군가에겐 '그들만의 리그'로 느껴진다. PPP를 구성하는 요소—고급 필라테스 수업, 프리미엄 애슬레저, 매일 사 마시는 말차 라테—는 사실상 경제적 여유가 없는 사람에겐 진입장벽이기 때문이다.

러닝화 하나면 시작할 수 있는 조깅과 달리 PPP 라이프스타일은 기본 진입 비용만 월 60만~70만원이다. Alo 레깅스 20만원, 필라테스 월 수강료 30만원, 매일 말차 라테 20만원. 이는 단순한 건강 관리가 아니라 '여유롭고 예쁘게 건강을 챙기는 공주님'만이 할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인 셈이다.

진정한 아이러니는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이라고 알려진 이 문화가 사실상 ‘경제력 과시의 새로운 방식’이라는 점이다. 인스타그램에 올라가는 PPP들의 일상 속 브랜드 로고들이 이를 증명한다.

PPP 트렌드는 웰니스의 계급화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건강 관리마저 프리미엄 브랜드와 고급 서비스로만 완성된다는 인식을 확산시키며 웰니스 접근성에도 격차를 만들어내고 있다. 결국 이들이 추구하는 것은 건강 그 자체가 아니라 '명품 웰니스'를 통한 계급적 정체성의 표현인지도 모른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여성경제신문 허영주 크리에이터 ourcye@seoulmedia.co.kr

허영주 크리에이터

성균관대학교에서 연기예술학과 철학을 전공했다. 걸그룹 ‘더씨야’, ‘리얼걸프로젝트’와 배우 활동을 거쳐 현재는 팬덤 640만명을 보유한 글로벌 틱톡커 듀자매로 활동하고 있다. <2022콘텐츠가 전부다> 책을 썼다.
다재다능한 ‘슈퍼 멀티 포텐셜라이트’로서 여러 채널에서 크리에이터 이코노미를 설계,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가고 있다. ‘한평생 내가 될 수 있는 모든 것이 되어 열정적으로 살아보기’를 실천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