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미옥 더봄] 길냥이의 부재가 몰고 온 전쟁터(농장) 이야기

[송미옥의 살다보면2] 마당에 심어놓은 나무 열매가 사라졌다 온갖 야생동물이 몰려와 농작물 서리를 어우렁더우렁 잘 살아보세

2025-08-17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사람이나 동물이나 배고픔을 면하면 맛있는 것을 찾는다. /게티이미지뱅크

또 사라졌다. 어제 눈도장까지 찍어 둔 탐스러운 열매가.

몇 년 전 신품종으로 바꾼 스무 그루 남짓한 블루베리 이야기다. 올해는 청년기를 맞아 오백원짜리 동전만 한 열매를 많이도 달았다. 품종 자랑할 만하다. 까만 아로니아와 빨간 보리수 열매도 가지가 찢어질 만큼 달려 마당엔 풍요함이 절정이다.

블루베리는 한꺼번에 익지 않아서 대량으로 농사짓는 농가에선 수확할 때가 가장 큰 고역이다. 그나마 나는 몇 주 안 되니 수고가 적다. 해마다 한 알 한 알 따서 소중한 이들에게 선물하는 기쁨이 컸는데 올해는 영 수확이 없다.

전날 눈도장을 찍어놓은 것이 아침이면 없어지니 착시현상인가 싶어 사진을 찍어놨는데 아침에 나오니 정말 없어졌다. 오늘은 작심하고 먼동이 트기도 전에 나와 보니 밭에 모여 열매를 훔치던 팔뚝만 한 새들과 참새 무리가 인기척에 놀라 우르르 날아오른다.

새는 작년에도 많았다. 작은 포유류와 조류를 막아내며 경비를 서던 막강한 길냥이의 부재가 소문이 난 것이다. 가출을 수시로 하는 야생 고양이가 몇 년째 우리 집 마당에서 살았다. 해마다 그들끼리 쫓고 쫓기고 죽고 죽이는 전쟁이 펼쳐졌지만 올해는 어디서 사고가 난 건지 명이 다한 건지 나타나지 않아 벌어진 사태다.

야생동물의 사냥 모습은 경이롭다. /게티이미지뱅크
야생동물의 사냥 모습은 경이롭다. /게티이미지뱅크

‘얘들아~이 집 파수꾼이 사라졌어. 완전 무방비 상태야.’

늘 잡히기만 하던 두더지 파가 이때다 하고 땅굴 재건 공사에 박차를 가하고, 그 바람에 잘 크던 묘목 몇 그루가 고사했다. 나는 떼 지어 날아드는 온갖 새들의 습격에 놀라고 작은 포유류들의 번식에 놀랐다.

몇 년 전 큰 산불이 났을 때도 야생동물들의 반란이 있었다. 퇴근하면 마당에 내 키만 한 고라니가 상추를 뜯어 먹다가 저도 놀라고 나도 놀라고, 앞 강섶엔 멧돼지가 새끼까지 끌고 와 사람이 보든 말든 돼지감자를 파먹었고 그해 고구마를 심은 농가는 한 집도 빠지지 않고 싹쓸이당했다.

생명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배고픔과, 더 맛있는 것을 먹고 싶은 욕구는 동물도 똑같다.

‘약을 확 쳐버릴까 부다.’

작은 새에게 화풀이하고 있는 내 모습이 멋쩍다. 임시방편으로 반짝이와 낚싯줄을 사 와서 나무 위에 얼기설기 방호벽을 쳤다. 그런데 반짝이를 친 다음 날 가지가 찢어질 만큼 열렸던 키 큰 보리수나무 열매가 싹 사라졌다. 더 놀랍다.

우리 집 마당에 심어놓은 보리수나무 열매가 하루아침에 다 사라졌다. /사진=송미옥

문득 내 머릿속에 동화 한 장면이 펼쳐진다.

‘엄마 새가 말했습니다.

"보리수가 맛은 좀 떫지만 꼭꼭 씹다 보면 달아. 골고루 먹어야 튼튼해."

"엄마, 그래도 블루베리가 제일 맛있는데, 히잉."

위대한 엄마 새는 밤새 생각하다가 자식들을 깨웠습니다.’

새벽에 열매를 수확하러 나가니 팔뚝만 한 지빠귀 어미 새가 내 옆 라인을 뛰어다닌다. 그 뒤를 따라 새 무리가 낮은 곳에 달린 열매를 콕콕 따먹고 낮은 비행을 하며 도망친다. 엄마 하이힐을 처음 신어 보듯 엉덩이와 두 다리를 한껏 휘저으며 뒤뚱뒤뚱 걷는 새 무리에 어이없고 웃음도 나지만 약이 더 올라 꽥 소리를 질렀다.

멀리서 소쩍새가 운다. 소쩍~하고 울면 흉년이, 소쩍다~하고 울면 풍년이라는 옛이야기가 생각난다. (솥이 작으니 큰 솥을 준비하라는 뜻이라 해석)

어떤 절망에도 해학으로 희망을 품었던 옛사람들의 지혜다. 자연의 이치를 이해한다는 건 결국 어울려 사는 방법을 배우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글로 달래보지만 어리석고 욕심 많은 중생은 솔직히 아직도 약이 오른다.

여성경제신문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sesu32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