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이 곧 지시권?”···요양원 권력층의 요양보호사 착취
기부·물품 제공 뒤 과도한 요구 종교 일정 변경까지 ‘현장 피로’ 누적
# 요양원에 입소하신 할머니 보호자가 시설에 TV를 후원했다는 이유로 요양보호사에게 과도한 요구를 해요. 치매 어르신의 경우 상대방을 아무런 근거 없이 의심하는 행동 증상이 있거든요. 본인이 핸드폰을 서랍에 두었으면서 요양보호사가 훔쳐갔다고 자녀들에게 얘기하는 사례가 대표적이에요. 그러면 보호자는 곧장 원장에게 연락해 "요양보호사 교육을 똑바로 시켜라, 후원 물품도 가장 많이 했는데, 일 똑바로 해라" 등의 과도한 압박을 주는 사례가 적지 않아요.
요양보호사가 일명 '동네 북'이 됐다. 요양원 내부의 후원이 현장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심각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부 법인·종교계 요양원에서는 입소자나 보호자가 금전이나 물품을 기부(후원)한 뒤 이를 사실상의 영향력으로 삼아 요양보호사에게 과도한 복종을 요구하거나 업무에 수시로 개입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후원 규모에 따라 일부 종교 시설에선 예배 시간 등 시설 일정이 바뀌는 경우도 있어 돌봄 업무가 심각하게 왜곡된다는 것이다.
12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현행 제도에서 후원은 요양원의 재정을 보완하는 수단이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후원이 서비스 통제권처럼 작동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TV·공기청정기 등 물품을 기부한 보호자가 “우리 부모님 방만 특별 관리하라”거나 “식단과 배변 케어를 즉시 변경하라”는 요구를 직접 전달하는 사례가 있다.
경기도에 위치한 A 종교 법인 요양원에서 근무하는 요양보호사 A 씨는 여성경제신문에 "후원을 받은 원장 등 요양원 고위급 관계자는 관계 악화를 우려해 직원 보호에 소극적이고 요양보호사는 지침과 다른 즉흥적 지시를 처리하느라 표준 케어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특정 보호자의 과도한 전화와 메시지 지시가 돌봄 흐름을 끊는 수준에 이르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요양보호사는 식사·투약·이동 보조를 일정에 맞춰 수행해야 한다. 그 사이 “방금 CCTV에 보인 동작이 뭐냐”, “지금 영상통화를 하자”는 요구가 이어지면 다른 어르신의 안전이 뒤로 밀린다는 것.
김민수 한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여성경제신문에 "법인 요양원일수록 후원은 대외 이미지와 직결된다"며 "이사회나 후원회 등 외부 네트워크가 강한 곳은 ‘후원자 이탈’ 우려로 직원 보호에 나서기보다 후원자 관리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후원받았으니 참아야 한다'는 문화가 조직 내부에 자리 잡으면 직원 배치와 인사 평가에까지 보이지 않는 압력이 작용한다"고 제언했다.
종교계가 운영하는 일부 요양원에서는 후원 규모에 따라 예배나 종교 행사 시간이 변경되기도 한다. 이로 인해 식사·투약·위생 관리 등 기본 돌봄이 행사 일정에 맞춰 재편된다. 요양보호사의 실근로시간은 늘고 휴게시간은 줄어든다. 종교 활동은 자율이어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참석 압박’이 근로조건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후원과 서비스 결정(케어 플랜)을 엄격히 분리하는 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김민수 교수는 "후원은 기관 전용 계정으로만 접수하고 영수증과 사용 내역을 정기 공개해야 한다"면서 "후원 여부가 서비스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조항을 이용계약서에 명시하고, 직접 지시는 공식 민원 창구로만 받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후원은 후원대로, 서비스는 서비스대로 분리해 민원은 절차로 관리해야 한다"면서 " 원장이 앞장서 규칙을 지킬 때 요양보호사는 비로소 ‘돌봄’에 집중할 수 있고, 이는 곧 어르신의 안전과 서비스 품질로 이어진다"고 덧붙였다.
여성경제신문 김현우 기자 hyunoo9372@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