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식 접고, 급식으로 몰린다···불황 속 식품기업들의 생존전략
이랜드 9개 브랜드·파이브가이즈 등 매물 고물가 소비 위축에 외식업 수익성 떨어져 안정적 매출 구조의 급식 산업은 성장세 아워홈, 신세계푸드 단체급식사업 인수 검토
고물가에 따른 소비침체로 외식 소비까지 위축되자 외식 브랜드들이 잇따라 매물로 나오고 있다. 반면 코로나19로 한동안 위축됐던 급식 산업은 최근 고물가에 따른 사내식당 수요 증가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처럼 소비 위축의 영향이 식품 서비스 산업에도 영향을 끼치며 무게추가 외식에서 안정적인 수요 기반을 가진 급식으로 이동하는 모습이다.
1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외식 부문에서는 브랜드 매각이 잇따르고 있다. 대표적으로 이랜드그룹이 최근 실적 기여도가 낮은 외식 브랜드 9곳을 매각하기로 했다. 이는 핵심 브랜드 ‘애슐리’에 역량을 집중하고 수익성 개선을 도모하기 위한 전략이다.
이랜드이츠는 ‘애슐리’, ‘자연별곡’, ‘피자몰’, ‘로운’ 등 19개 외식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다. 이 중 비핵심 브랜드 9곳을 정리하는 수순을 밟을 예정이다. 매각 대상 브랜드는 반궁, 스테이크어스, 테루, 데판야끼다구오, 아시아문, 후원 등 다이닝 계열 6개와 더카페, 카페루고, 페르케노 등 카페·디저트 브랜드 3개인 것으로 알려진다.
매각이 이뤄진 뒤에는 애슐리, 자연별곡, 피자몰, 로운 등 핵심 브랜드를 중심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편할 전망이다. 2019년 7월 이랜드파크 외식사업부문에서 물적분할한 이랜드이츠는 최근 애슐리의 성장으로 실적이 가파르게 상승 중이다. 이랜드이츠 실적은 지난해 매출 4705억원으로 전년 대비 32%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319억원으로 79% 급증했다. 당기순이익은 293억원을 기록했다.
특히 전체 매출 중 애슐리가 약 70%를 차지하고 있다. 뷔페 레스토랑인 애슐리는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2021년 317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하는 등 위기를 겪은 바 있으나 이후 수익성이 낮은 점포를 정리하고 가격대별로 나눴던 매장 유형을 고급화 초점의 애슐리퀸즈로 통합하는 등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이어 내수 침체 여파로 외식업 전반이 어려워지자 다양한 메뉴를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에 먹을 수 있는 뷔페 수요가 높아지며 반등에 성공했다.
이외에도 시장에서는 명륜진사갈비, 노랑통닭 등이 매물로 나와 있다. 또한 한화갤러리아 역시 미국 버거 브랜드 ‘파이브가이즈’ 매각을 추진 중이다. 고물가로 소비자가 지갑을 닫자 외식업체들이 안정적 현금 흐름을 위해 비핵심 자산을 정리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반면 국내 단체급식 시장은 성장세다. 고물가 영향으로 사내식당 수요가 커진 데 따른 것이다. 이에 삼성웰스토리, CJ프레시웨이, 현대그린푸드 등 국내 주요 급식 기업들은 지난해 모두 외형 성장을 기록했다. 특히 한화그룹 계열사가 된 아워홈은 신세계푸드의 단체급식 부문 인수에 나서면서 시장 판도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국내 단체급식 시장은 삼성웰스토리를 필두로 아워홈, 현대그린푸드, CJ프레시웨이, 신세계푸드 등 5개사가 80% 이상을 차지한다. 이 중 삼성웰스토리는 SK하이닉스, CJ제일제당 등 대형 고객사를 다수 확보하고 있으며, 전체 매출의 60%를 단체급식이 차지한다. 아워홈은 지난 5월 한화호텔앤드리조트에 인수된 이후 공격적인 확장 전략을 펼치고 있다. 2030년까지 매출 5조원, 영업이익 3000억원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번 인수를 계기로 삼성웰스토리와 함께 ‘빅2’ 구도가 형성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신세계푸드는 신세계그룹 계열사의 식음 물량을 맡고 있다. 또한 2018년 서울 성수동 트리마제를 시작으로 개포 래미안 포레스트, 서초 반포 원베일리 등 고급 아파트 10개 단지의 총 1만1000여 세대를 대상으로 식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아워홈은 한화그룹에 인수되기 전 범 LG가 계열과 급식 동맹으로 몸집을 키워왔기 때문에 LG와 한화, 신세계 물량을 모두 확보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외식은 팔고, 급식은 키우는 국내 식품업계의 상황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방향 전환으로 보고 있다. 앞으로도 이 같은 흐름은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결국 소비심리 위축과 고물가 여파가 외식업과 급식 산업의 운명을 가른 것이다.
최근 식품 대기업들이 외식 브랜드를 하나둘 매물로 내놓는 것도 겉으로 보면 브랜드 재편이나 구조조정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더는 남는 장사가 아니다’는 판단이 깔려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코로나19로 한 차례 직격탄을 맞은 외식 산업 고물가·고금리 시대에 다시 한 번 수익성 위기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임대료, 인건비, 원재료비 등 고정비는 꾸준히 오르는데 외식 수요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 1인 가구 확대와 간편식 시장 성장으로 ‘외식’ 자체의 매력도 예전 같지 않다. 이미 포화 상태인 외식 시장에서 차별화도 어려운 데다 가격경쟁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결국 마진율이 낮아진 시장이 되면서 식품업계 입장에선 굳이 트렌드 변화에 민감한 B2C 외식 브랜드를 안고 갈 이유가 없다. 대신 단체급식이나 B2B 식자재 유통처럼 매출이 예측 가능하고 안정적인 사업에 힘을 싣는 흐름이다.
급식산업은 불황에도 버틸 수 있는 ‘현금 창출형 사업’이자 식품기업의 기존 인프라를 그대로 활용할 수 있는 ‘시너지 산업’이 될 수 있다. 급식은 기업·학교·병원 등과 장기 계약을 맺는 B2B 사업이라 외식처럼 경기 변동이나 트렌드 변화에 휘둘리지 않는다. 소비자가 갑자기 지출을 줄여도 계약 기간 동안은 매출이 유지된다. 외식업처럼 매장 입지나 SNS 인기에 매출이 좌우되지 않는다. 대량 생산·대량 구매가 가능해 원가 경쟁력도 강화할 수 있다. 식품기업 입장에선 자사 제품 소비 촉진과 신제품 테스트 베드로도 활용이 가능하다.
고령화로 요양병원·실버타운 급식 수요가 증가하고, 맞벌이와 1인 가구 확대에 따라 기업 복지 차원에서 사내식당 도입은 물론, 고급 아파트 내 식음 서비스도 확대되는 추세라 급식 시장의 미래 성장성도 높다.
현재 대기업이 주도하는 국내 급식 시장은 단체급식(약 6조원)과 식자재 유통(약 7조원)을 합쳐 약 13조원 규모다. 단체급식 부문이 매년 20%씩 성장하는 추세를 고려하면 2030년에는 시장 규모가 최소 2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익명을 요구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에 “외식 사업은 입지·콘셉트 하나만 삐끗해도 바로 매출에 직격탄이 온다”며 “장기 계약 기반의 급식 사업은 관리만 잘하면 꾸준히 수익이 나기 때문에 식품 대기업 입장에선 훨씬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여성경제신문 류빈 기자 rba@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