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익준 더봄] 삐딱해도 좋아, 다시 사랑할 수 있다면
[최익준의 낭만밖엔 난 몰라] 주어진 환경과 여건이 삐딱했기 때문에 내가 더욱 삐딱하게 맞섰는지도 모른다 앞으로도 계속 삐딱한 태도로 살고 싶다
나의 젊은 날들은 기행으로 얼룩져 삐딱했고, 실수투성이에 고집쟁이였습니다.
친구들은 나를 보고 간첩같이 수상한 녀석이라며 수군거렸습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입시 준비에 관계없는 문학반에 입문하여 보들레르의 술에 취한 시를 읊으며 취한 선배들로부터 술과 담배를 전수했습니다.
내 최대 주량은 유전적으로 소주 반병에 맥주 딱 한 병밖에 될 수 없음을 여러 번의 시행착오로 일찌감치 확인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나름의 음주 원칙 한 가지를 세웠습니다. 월말고사 성적 1등을 놓치면 술·담배를 바로 그만두기로···. 나 자신과의 승부욕 때문인지 꽤 오랜 기간 문학반 선배들과 소맥을 몰래 즐기는 기행을 하며 고등학교 3년을 다녔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에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 번역판을 읽고 나니 날것의 영문판 원문을 읽고 싶어졌습니다. 보수동의 헌책방을 찾아가서 영한사전을 뒤져가며 읽었습니다. 내 인생 처음 접신한 영문판 책의 제목은 <갈매기의 꿈>이고 책의 주인공은 '조너선 리빙스턴'입니다.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는 시그니처 문장과 'Jonathan Livingston Seagull' 이름을 잊지 않으려 교실의 내 책상 모서리에 유성 사인펜으로 썼다가 담임 선생님에게 걸려 낙서한 죄로 한 달간 매일 반성문 제출과 교실 청소의 벌을 받았습니다.
내 꿈을 심은 영문 소설을 읽은 결과는 삐딱하게 반성문과 벌 청소였습니다. 그러나 매일 교실의 창을 열고 막대 걸레로 교실 바닥 청소를 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비틀스와 스모키의 모든 팝송을 유쾌하게 불렀습니다.
작가가 갈매기를 바라보며 글을 썼던 미국 서부 해안을 찾아갈 것이라 결심했습니다. 그 후 찾아간 미국의 샌프란시스코 바람 세찬 금문교에서 갈매기에게 인사했습니다. "가장 높이 나는 갈매기 Seagull, 내 너를 다시 찾아왔노라!"
보수동 헌책방 골목은 저에게 만국박람회 같은 곳이었습니다. 유튜브와 SNS가 없던 시절이기에 내가 가 보지 못한 예술가들의 놀이터 서울의 명동과, 내가 이민 갈지도 모를 뉴욕의 맨해튼 거리를 발견한 설렘으로 술과 담배는 더 이상 재미가 없었습니다.
눈부신 부산의 햇볕 속을 하얀 치아로 파도처럼 가르며 어마무시한 책들의 제국 책방 골목으로 들어갔습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따로 없었습니다. 보수동 책방 구석에서 헤르만 헤세를 만나고 나서부터 내 인생의 남은 날들이 어슴푸레 아니 환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소설 <데미안>을 완독할 때까지 책방으로 가는 길은 내 미래를 점치는 신박한 시간이었습니다. 헌책 살 돈이 모자라 서성이는 저에게 책방 주인아저씨는 있는 돈만 내고 가져가라고 했지요. 나중에 돈 벌어서 책 억수로 많이 사 가겠다고 말씀드리니 싱긋 웃으며 책 정리나 도와 달라던 아저씨의 모습이 온전하게 눈에 선합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싸운다. 알은 세상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세상은 누구에게도 진정한 자유를 선물로 주지 않는다. 자유는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 문장은 내 삶을 관통했습니다. 세상이 비루하고 삐딱할 때 그와 반대로 삐딱하게 나를 세워 주는 힘이 되었습니다.
갈매기 조너선 리빙스턴과 데미안은 내가 이길 수 없는 천지불인(天地不仁)의 세상을 읽는 법과, 반대로 삐딱하게 서서 시시포스처럼 반항하며 돌을 굴리도록 인내의 나침반을 저에게 선물했습니다.
6.10 민주항쟁 시위의 대열에서 돌멩이를 쥐고 보수동을 지날 때 아저씨가 보고 싶어 잠시 시위대에서 빠져나와 박카스 한 박스 들고 책방으로 찾아갔습니다. 세월의 흔적으로 주름살 깊은 보살의 모습으로 환하게 웃으며 책을 읽게 도와주신 아저씨의 미소는 삐딱한 내 청춘에 지워지지 않은 문신입니다.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한 친구들이 공과대학에 진학하여 굴지의 중공업 자동차 선박회사에 입사하여 알뜰한 신부 얻어 엔지니어 월급쟁이로 번듯한 중산층 가정을 이룰 때 저는 여전히 삐딱하게 독서삼매경에 빠져 늦깎이 대학생이 되어 고집스레 세상 여행을 했습니다.
짧은 인생의 시간 궁금한 것들이 너무 많았기에, 또래의 친구들이 함께 경쟁하며 묻어간 항로를 따라갈 수는 없었습니다. 미국 작가 에머슨의 수필을 읽고, 삐딱하지만 고독한 나만의 길을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때로는 또래들의 집단에서 벗어나 깜깜한 사막의 밤길을 걷는 나 홀로 이방인의 외로움에 눈물도 주르륵 흘렸습니다.
늦깎이 대학을 졸업하던 해 제 평생에 가장 충격적인 질문을 받았습니다. 재벌그룹 글로벌 금융팀의 최종 면접관이 "아버지 뭐 하시노?" 짧은 질문입니다. 한참이나 인생 경험이 풍부한 최고경영자의 면접이었습니다.
자신만만하던 저는 예상 밖 뒤통수를 내려치는 질문에 그만 허를 찔려 심중의 피를 흘렸습니다. 아버지에 대해 그리 자랑할 것도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이 질문은 헤르만 헤세의 고독한 문장으로 충분히 단련하고, 축구로 탄탄한 청년의 허벅지 근육의 힘마저 풀어 휘청일 만큼 충격이 강력했습니다. 6600만년 전 외계의 소행성이 멕시코 유카탄반도에 떨어져 거대한 지진과 쓰나미를 일으켜 지구 생물의 대멸종을 초래한 사건처럼 고통스러운 질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질문에 회피하거나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나는 거꾸로 더 당당하고 삐딱하게, 그 인생 질문을 한 방 먹일 요량으로 면접관을 노려보며 정면 돌파를 할 결심으로 대답했습니다.
"제가 면접관님을 뵐 수 있었던 이유는 가장의 책임을 회피한 아버지의 무책임과 저 자신이 무관함을 증명하기 때문입니다. 인재를 중요시하는 이 회사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데 저를 놓치시면 큰 손해입니다." 기세등등하고 약이 바짝 오른 청년의 삐딱한 대답에 면접관은 빙그레 웃었고, 그 결과는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늘 반듯한 것을 좋아했고, 지금도 뭐든지 반듯해야 맘이 편합니다. 반듯함을 추구하기 위해 소주 반병 주량의 술을 마셨고, 비이성적 현실에 맞서 거꾸로 삐딱한 시각으로 세상의 사람들과 어울려 행복한 성장을 위해 계속 삐딱하게 살고 싶습니다.
주어진 환경과 여건이 삐딱했기 때문에 내가 더욱 삐딱하게 맞섰는지 모릅니다. 앞으로도 삐딱한 태도로 살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 최종 목적지는 앙리 마티스의 그림처럼 이웃들과 함께 춤추고 나누는 북극성이 될 겁니다.
독립적인 나의 노력과 인격에 상관없이, 우연히 물려받은 것들이 다음 세대에 그대로 이어진 왕조시대 유물이 우리 세대로 마감할 수 있을까요?” 그때 그 힘겹던 시절의 빅 퀘스천(Big Question)을 독자님께 던져 봅니다.
우리는 엄청나게 가속하는 AI(Artificial Intelligence) 과학과 데이터 기반의 시대에 적응하면서도 가문과 성씨를 따지며 뛰어난 유전자를 내세우는 유교 왕조의 허세에 익숙한 채 모순적으로 살고 있습니다. 어쩌면 기성세대가 된 나도 그런 족보적 편견에 기울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잘나지 못한 상위 유전자를 만나면 더 힘겨운 날들이 올지도 모를 양극화가 깊어가는 시절입니다. 그럴수록 천지불인(天地不仁) 불안한 시간이 영원하지 않을 거라는 삐딱한 문제의식과 과학적 의심을 품고 힘겨운 분들을 이웃사촌으로 품을 겁니다. 내 남은 생은 그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 온기를 나누는 행동에 동참할 겁니다.
헤르맛 헤세는 "나는 이제 별이나 책에서 답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내 혈관 속에서, 내 삶 속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PS : 참, 고등학교 시절 한 달간의 반성문 쓰기와 교실 청소 덕분에 저에게 문장력이 생겼고 주변 환경에 대한 개념도 생겼습니다. 교실 창을 활짝 열고 환기를 하면 공기정화가 되고 멸균을 할 수 있음을 그때 배웠습니다. 사무실과 집 청소 그리고 설거지는 제가 해야 마음이 편해지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문장력과 환경 의식을 심어 주신 고등학교 2학년 담임선생님께 고마운 마음을 이제야 밝힙니다.)
삐딱해도 좋아, 다시 사랑할 수 있다면~
여성경제신문 최익준 박사·산업정책연구원 교수/(주)라온비젼 경영회장
sebastianchoi@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