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지정갱신제' 권력에 취한 공무원, 돌봄 위에 군림하지 마라

노인 돌봄 현장 위에 꽂힌 칼날 제도는 필요한데 권력이 문제다

2025-08-10     김현우 기자
장기요양기관 지정갱신제가 돌봄의 질 향상이 아닌 일부 공무원의 권력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다. 과도한 조사와 위협성 언행으로 기관 생존을 위협하며 제도 본래 취지가 훼손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왜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세요?". 장기 요양기관 현지 조사권을 거머쥔 공무원이 요양시설 원장에게 비수를 꽂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원장이 현지 조사 당시 억울했던 이야기를 기자에게 쏟아냈기 때문이다. 기자는 담당 공무원 취재를 진행했고 공무원은 곧바로 원장에게 쏘아댔다. 중립을 지켜야 하는 공무원이 기본에 충실하지 못한 사례다. 

강원도의 한 지방 공무원은 70대 요양시설 원장을 무릎 꿇게 했다. "문 닫고 싶어요?" 요양기관을 대상으로 한 현지 조사권을 거머쥔 일명 '낡은' 공무원이 대한민국 노인 복지를 망치고 있다. 

“이 정도면 폐쇄도 가능하다”라는 위협

장기 요양기관 지정 갱신제가 일부 공무원들에게는 ‘권력의 레버’가 되고 있다. 평가가 아닌 판결을 내리듯 기관장 앞에 앉아 자격 유지 여부를 담보로 사실상 ‘복종’을 강요한다. 1년 365일 어르신 돌봄에 매달려온 요양기관 종사자들에게 ‘죄인 취급’을 하는 셈이다.

한 수도권 요양원 관계자는 올해 초 현지 조사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서류 하나 빠졌다고 담당자가 ‘이러다 탈락할 수 있다’는 말을 수차례 반복했어요. 고의가 아닌 실수라 해도 기회를 주지 않더군요. ‘어르신들 돌보느라 놓쳤다’는 설명도 ‘핑계’로 치부됐고요.”

현지 조사 중 어르신이 복도에서 낙상했는데, 조사관이 ‘지금 상황이 지정 취소 요건’이라고 말하고는 정작 응급처치엔 협조하지 않은 사례도 나온다. 문서상의 문제에는 광적으로 반응하면서도 정작 노인의 생명과 직결된 순간에는 무심했다는 것.

업계에선 “공무원이 감시자가 아니라 통치자”라는 볼멘소리가 심심찮게 나온다. 설비 기준 하나, 서류 양식 하나가 기관의 존폐를 좌우할 수 있는 현실에서 조사관의 태도와 언행은 거의 절대권력에 가깝다.

지정 갱신제. 목적은 명확하다. 돌봄 서비스 질 향상. 무자격, 무책임, 무기준으로 운영되는 기관을 솎아 내고 국민건강보험 재정 누수를 막는 데 있다. 꼭 필요한 제도다. 한데 이 제도가 일부 공무원 사이에서 ‘검증 시스템’이 아닌 ‘길들이기 도구’로 전락하고 있다는 게 핵심 문제다.

장기 요양기관은 원장 1인이 행정부터 현장 돌봄까지 겸임하는 때도 허다하다. 이들에게 지정 갱신제는 행정 절차가 아니라 생존의 절벽이다. 조건부 평가가 나오면 이용자 모집은 막히고 직원 이탈도 시작된다. 기관이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다.

조사 과정에서 조사자의 주관이 반영될 여지가 너무 큰 점도 문제다. 이렇다 보니 “누가 왔느냐에 따라 결과가 다르다”는 냉소까지 나온다. 돌봄의 질이 아니라 조사관의 성향이 기관의 명운을 가른다는 이야기다.

장기 요양 현장은 돌봄보다는 생존을 고민하고 있다. 공공기관인 지자체의 일부 공무원들이 이 생존의 줄을 쥐고 흔들면서 고압적인 태도로 현장을 조율한다. 제도는 무력해지고 ‘감정 행정’이 자리를 잡는다.

지정 갱신제는 당연히 필요하다. 오히려 더 자주, 더 철저하게 해야 한다. 다만 그 기준은 공정하고 일관돼야 하며 목적은 철저히 이용자 중심이어야 한다. 공무원의 권위나 감정이 아닌 노인의 삶을 중심에 두는 조사여야 한다는 이야기다.

돌봄은 공공이다. 그 가치는 협박이 아닌 협업에서 시작된다. 지정 갱신제는 적발이 아닌 개선의 도구가 돼야 한다. 권력이 아닌 책임의 장치가 돼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르신 곁을 지키는 요양보호사들과 기관 종사자들이 불필요한 두려움에 떠는 일은 없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돌봄 종사자는 떳떳하게 현지 조사를 받을 준비를 마쳐야 한다. 

30대 요양보호사 A 씨를 고용한 한 요양원은 현지 조사를 앞두고 A 씨에게 "건보공단이 요양보호사 면담을 하는데 네가 대신 가라"고 했다. 자칫 한 마디라도 실수하면 책임이 전가되기 때문에 그나마 젊은 요양보호사를 대신 앞세웠다는 것. 

"무섭잖아요". 

공무원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기관에서 근무하며 공공의 이익을 위한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이다. 공공의 이익을 두려움으로 바꾸는 공무원은 공무원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권력에 취할 시간에 스스로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노인 돌봄을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하는 일부 요양시설 운영자도 문제다. 초고령화 사회의 방파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공무원이 권력의 군단으로 변질하는 데 '돌봄장사꾼'도 한 몫 했기 때문이다. 치매에 걸려 기억 못 한다고, 말 못한다고 이를 악용하는 일명 '악질' 노인 시설 운영자 또한 '돌봄 권력'에서 빨리 깨어나길 바란다. 

돌봄을 권력의 무기로 쓰는 행정은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제도의 실패이며 궁극적으로 국민 모두의 손해다. 그 누구도, 노인을 위한 돌봄 위에 군림할 권리는 없다.

여성경제신문 김현우 기자 hyunoo9372@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