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최혜국 약속 믿어도 될까?···韓 반도체 면제도, 조건도 '불확실'
제재보단 美 내 공장 건설 유도 성격 정부, 반도체 분야 문제 없다 선 그어 메모리 반도체 고율관세 가능성 제기 "여러 가능성 두고 신중히 대응해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수입산 반도체에 100% 관세를 예고하면서도 미국 내 공장 건설 시 예외를 둘 수 있다고 밝히자 현재 공장을 짓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관세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제기됐다. 다만 트럼프 정부의 예측 불가능한 행보를 고려할 때 추가 조건이나 정책 변화에 대비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8일 폭스비즈니스 인터뷰에 따르면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100% 관세 부과 방침과 관련해 "임기 중 미국 내 공장 건설을 약속하고 이를 상무부에 신고한 뒤 건설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감독받는다면 관세 없이 반도체 수입을 허용하겠다"라며 "미국에 공장을 짓지 않으면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러트닉 장관의 발언대로라면 이번 조치는 반도체 수입 자체를 겨냥했다기보다 반도체 기업들의 미국 내 공장 건설을 유도하려는 압박 성격이 강하다는 해석이 나온다. 특히 현재 미국에서 반도체 투자를 진행 중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관세 면제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
삼성전자는 지난 2021년 미국 오스틴 파운드리 1공장 인근 테일러를 신규 공장 부지로 확정하고 170억 달러(약 23조원) 규모의 투자를 진행 중이다. 해당 공장은 내년부터 4나노 이하 첨단 공정 양산에 돌입할 예정이다.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 38억7000만 달러(약 5조원)를 투자해 어드밴스드 패키징 생산기지를 건설할 계획이며 2028년 양산을 목표로 현재 건립 준비 중이다.
정부도 미국이 약속한 반도체 및 의약품 분야의 '최혜국 대우'를 언급하며 확대 해석에 선을 그었다. 지난달 30일 미국과 협상을 진행한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이번 협상에서 반도체와 바이오 분야에 대해 미래의 관세에 있어 최혜국 대우를 받기로 했다"라며 "만약 최혜국 세율이 15%로 정해진다면 우리도 15%를 적용받게 된다"고 밝혔다.
다만 업계는 여전히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관세 부과 시점과 범위가 불확실한 가운데 미국 내에 메모리 반도체 생산 시설이 없는 한국 기업에는 추가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업계 관계자는 "공장 건설을 약속한 시스템 반도체는 관세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높지만 D램이나 낸드플래시처럼 해외에서 생산하는 메모리 반도체까지 면제 대상에 포함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라고 말했다.
만약 메모리 반도체에 고율 관세가 실제로 부과될 경우 스마트폰 등 정보기술(IT) 완제품 가격 상승→소비 위축→수요 둔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 업계에선 '최혜국 대우'라는 약속만으로는 해석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는 만큼 섣부른 안도는 이르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번 협상에서 한국이 일본·유럽과 동일하게 15%의 자동차 관세를 적용받고 미국이 쌀·소고기 등 민감한 농산물의 추가 개방을 요구한 점을 고려하면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무역 장벽을 낮추려는 한미 FTA의 실질적 효력은 사실상 퇴색됐다. 이 때문에 양국 간 '약속'이라는 개념 자체에 큰 의미를 두기 어렵다는 해석이 나온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여러 시나리오를 두고 대응하려고 노력하지만 매번 말이 달라지는 트럼프 정부 특성상 어떤 수준의 관세율이 적용될지 예단하기 어렵다"라며 "섣부른 판단보다는 구체적인 내용이 확정된 뒤 기업에 가장 유리한 전략을 세우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6일 CNBC 인터뷰에서 "다음 주쯤(next week or so)" 품목별 관세를 추가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히며 대상 품목으로 반도체와 의약품을 언급했다. 이에 따라 이르면 내주 반도체 관련 구체적인 조치가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여성경제신문 김성하 기자 lysf@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