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 칼럼] 트럼프의 유연성이 무서운 이유

[김성재의 국제금융 인사이트] 'TACO' 트럼프, 15% 관세로 동맹 끌어당기다 수천억 달러 투자 약속, 전략산업 재편 신호탄 협상 계속 진행 중···남은 상대 멕시코와 중국

2025-08-04     김성재 퍼먼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지난 4월 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교역 대상국에 대한 상호관세율을 발표했을 때 전 세계는 경악했다. 기본관세 10%에 더하여 주요 국가에 25%가 넘는 관세를 부과하면 미국 경제뿐만 아니라 전 세계 경제가 동시 불황의 터널에 갇힐 터였다. 

트럼프는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의 의견을 받아들여 상호관세의 적용을 90일 유예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에 맞서 각국이 보복관세를 매기고 나서면 1930년대 초 스무트-홀리 관세 부과 이후에 벌어졌던 대공황 전개의 시나리오와 유사해질 것이라는 공포가 만연했다. 금융시장이 받은 충격은 상상을 넘었다. S&P500 주가지수는 5000선이 붕괴해 2월 고점 대비 20% 폭락했다. 승승장구하던 비트코인 가격도 8만 달러 아래로 주저앉았다.

채권시장에도 찬물이 끼얹어졌다. 10년 만기 미 국채금리는 4.5%로 상승했다. 금융시장이 급격하게 흔들리자 트럼프 대통령은 물러섰다.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의 의견을 받아들여 상호관세의 적용을 90일 유예했다. 

트럼프에게는 TACO(Trump always chickens out)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붙었다. 시장이 흔들릴 때마다 트럼프는 항상 겁먹고 물러난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TACO 덕분에 금융시장은 다시 생기를 회복했다. 

S&P500 주가지수는 7월 말 즈음에 6400포인트를 돌파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비트코인 가격도 처음으로 12만 달러를 넘어섰다. 10년 만기 금리도 4.2%로 안정됐다. 하지만 상호관세 90일 유예의 만료가 다가오자 시장은 다시 긴장했다.

일찌감치 10% 기본관세만 부과하기로 합의를 한 영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가 불안감에 휩싸였다. 그러던 중 베트남에 20%의 관세를 부과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우회 수출에 대한 40% 관세를 제외하면 기본관세와 상호관세를 합쳐 20%의 국가별 관세니 나쁘지 않았다. 

마침내 7월 22일 일본에 대한 관세율이 발표되었다. 트럼프는 애초 24%의 상호관세에서 크게 낮아진 15%의 국가별 관세가 적용할 것이라 말했다. 그 대가로 일본은 미국에 약 5500억 달러를 반도체, 인공지능 등 핵심 산업에 투자하고 자동차, 농산물 등 시장 개방을 확대할 것이라 발표했다. 

닷새 후에는 미국과 유럽연합(EU)이 15% 국가별 관세에 합의했다는 소식도 들렸다. 애초 30%의 관세에서 크게 낮아진 것이었다. EU도 미국산 천연가스 수입을 7500억 달러로 늘리고 6000억 달러 상당의 투자를 시행할 것이라 발표했다. 또한 미국산 군사 장비의 수입 확대와 방위비 지출 증대도 약속했다. 

미국의 동맹국들이 15% 관세에 합의하자 한국 협상 대표단은 초조해졌다. 협상단을 이끌던 산업부 장관은 미 상무부 장관의 자택을 찾아가 협상을 벌여야 했고 스코틀랜드 출장지까지 따라가야 했다.

7월 30일 긴 산고 끝에 괜찮은 결과가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루스소셜에 한국에 대하여 15%의 국가별 관세를 적용할 것이라 발표했다. 자동차에 대한 관세도 15%로 낮아졌다. 그 대가로 한국은 약 1000억 달러 규모의 액화천연가스를 수입하고 3500억 달러 상당을 미국에 투자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트럼프에게는 TACO(Trump always chickens out)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붙었다. 시장이 흔들릴 때마다 트럼프는 항상 겁먹고 물러난다는 의미다. /인스타그램

미국이 한국, 일본, EU 등 주요 동맹국과 15%의 관세율로 합의하자 금융시장은 환호했다. 사실 15% 관세율은 '매직넘버'이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2차 세계대전 이전 미국의 관세율은 10% 대에서 50%대를 오갔다. 공화당을 비롯한 보수 진영은 40% 넘는 고율 관세를 선호했고 민주당 중심의 진보 진영은 10%대의 낮은 관세를 주장했다.

긴 호흡으로 보면 15%의 관세율은 그렇게 높은 것이 아니다. 수출업자와 수입업자가 부담을 흡수하면 물가에 대한 영향도 제한적일 수 있는 수준이다. 트럼프는 아마도 적정 관세율을 15%로 하고 이를 향후 기준 관세로 삼을 생각인 듯하다.

만약 어떤 국가가 무역 등 경제 분야뿐 아니라 정치 외교 분야에서 미국의 정책에 비협조적일 경우 이보다 높은 관세를 적용하고 매우 우호적인 국가에는 15%나 그보다 낮은 관세를 적용할 것을 내심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미국 정책에 반기를 든 캐나다에는 기존보다 10% 상승한 35%의 관세를 적용하고 달러 패권에 대한 불만을 표시한 브라질에도 50%의 관세를 적용한다고 발표했다. 이렇게 트럼프에게 관세는 연방정부의 세수를 올리는 수단일 뿐만 아니라 달러 패권을 지키고 외교·안보적 정책 의지를 실현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트럼프는 물가에 대한 영향을 상쇄할 수 있는 매직 넘버 15%에 대해 한국, 일본, EU 등으로부터 적게는 3500억 달러에서 많게는 6000억 달러의 투자를 끌어냈다. 물론 이 금액에는 트럼프 특유의 과장이 섞여 있을 것이고 구체적인 내용은 추가 협상이 필요할 것이다.

이런 천문학적인 금액의 투자를 통해 트럼프는 미국의 전략 산업을 재구축하려 할 것이다. 요원하게만 보였던 미국 제조업의 부활에 청신호가 될 수도 있다. 트럼프는 투자 수익의 90%를 미국이 가져갈 것이라 말했지만 상대방의 불만을 고려해 향후 모두에게 투자가 이익이 되도록 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의 미친 듯한 관세정책은 15% 매직넘버를 찾아냄으로써 미국에 대한 부작용은 생각보다 적고 그 효과는 생각보다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모두 트럼프를 TACO라 비웃었지만 트럼프는 영악했고 합리적이었다. 트럼프의 전략적 유연성은 놀라울 정도로 무서웠다.

트럼프의 롤러코스터 전략에 말려든 전 세계는 15%의 낮지 않은 관세에도 만족해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트럼프 관세의 불확실성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무엇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멕시코, 캐나다, 중국과의 협상 결과다.

지난달 31일(현지 시각) 미국과의 관세 협상 내용을 알리며 미소 짓는 멕시코 대통령 /AFP=연합뉴스

트럼프는 지난 2023년부터 미국의 최대 교역국으로 부상한 멕시코에 25% 관세를 유지하는 대신 협상 기간을 추가로 90일 연장한다고 발표했다. 자동차 관련 관세 25%와 철강, 알루미늄, 구리 관세 50%도 계속해서 적용된다. 멕시코와 캐나다에 대한 고율 관세의 지속은 미국 기업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 

기업이 불확실성으로 인해 섣불리 투자에 나서지 못하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 평균적으로 30%가 넘는 관세가 적용되는 중국과의 협상도 문제다. 결국 향후 미국과 세계 경제는 트럼프의 유연성 여부에 따라 그 운명이 결정될 것이다. 트럼프가 이제껏 보여준 특유의 유연성을 지속할지 주시해야 하는 이유다.

여성경제신문 김성재 퍼먼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francis.kim@furman.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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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재 퍼먼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김성재 퍼먼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종합금융회사에서 외환딜러 및 국제투자 업무를 담당했다. IMF 외환위기 당시 예금보험공사로 전직해 적기 정리부와 비서실에서 근무했다. 2005년 미국으로 유학 가서 코넬대학교 응용경제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재무금융학으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대학에서 10년 넘게 경영학을 강의하고 있다. 연준 통화정책과 금융리스크 관리가 주된 연구 분야다. 저서로 '페드 시그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