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원 더봄] 무인도에서 살아남는 데 필요한 인권 목록은?

[손민원의 성과 인권] 반칙하는 게 문제지 공정하게 치러진 경쟁이 왜 문제가 되지?

2025-08-05     손민원 성ㆍ인권 강사

강의 시작 도입 활동으로 가끔 ‘무인도에서 살아남기’ 활동을 한다. “우리가 탄 배가 표류하다가 무인도에 도착해 살아야 한다면 무엇을 가져가야 할지 열 가지를 인권 가방에 챙겨 보세요?”

가방에는 음식과 물, 담요, 텐트 등 고심 끝에 열 가지를 담는다. 이어 강사는 “그런데 가방이 너무 무거워 이 중 다섯 가지를 빼고 꼭 필요한 것 다섯 가지를 남긴다면?” 이 질문에 여러분은 어떤 물건이나 가치를 남기실 건가요?

놀랍게도 청소년들이 남기는 다섯 개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많은 돈’과 ‘스마트폰’이다. 요즘 청소년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엿볼 수 있다.

많은 학교가 여름방학 중이다. 학생들에게 “이번 방학 계획이 뭐예요?”라고 묻자 한 학생이 손을 들고 “우리 가족은 베트남으로 가족여행을 가기로 했어요.” 또 다른 학생은 “우리는 미국 고모 댁에 갈 거예요.” 잇따른 친구들의 해외여행 계획 발표에 할 말을 잃은 한 아이는 자기 차례가 되자 그냥 고개를 숙였다.

우리가 탄 배가 표류하다가 무인도에 도착해 살아야 한다면 무엇을 가져가야 할까? /게티이미지뱅크

작은 교실 안에도 부유한 집과 가난한 아이, 공부를 잘하는 학생과 못하는 학생, 운동을 잘하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 힘의 우열··· (어떤 세상이건 경쟁이 없는 세상은 없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교차적인 박탈감에 젖어 들어 자신을 ‘부족한 아이’ ‘능력 없는 사람’으로 규정지어 열등감을 안은 채 자신을 포기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좋은 영어학원을 보내기 위한 ‘4세 고시’, 유명 초등 수학·영어 학원에 입학하기 위한 ‘7세 고시’, ‘초등 의대반’ 이런 말들이 낯설지 않다. 이 말은 바꾸어 말하면 한국의 아동이 네 살 때부터 경쟁에서 이기는 법을 터득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경쟁을 어릴 때부터 부추기는 셈인데, 한국 사회는 유독 경쟁을 큰 거부감 없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반칙하는 게 문제지 공정하게 치러진 경쟁이 왜 문제가 되지? 경쟁은 외려 발전을 위해 필수 요소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승패를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그에 따른 결과만을 당연하다고 여기는 사회는 야만적인 속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경쟁의 결과에 따라 승자는 우월해지고 패자는 자존감이 훼손되며 패배감에 젖어 든다.

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패자는 일탈의 증가, 자살률 증가 등 심각한 사회 문제와 연결된다. 우리 사회가 당면한 극심한 빈부격차와 양극화는 한 개인을 점점 고립시키고 약육강식의 논리를 정당화시킨다. 더 나아가 두려운 것은 자신의 패배를 너무 당연한 결과로 스스로 받아들이고 믿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치킨 한 입을 베어 먹기까지 수많은 노동자의 노력과 땀들이 들어 있을 것이다. 닭을 키우는 양계장 노동자와 튀김옷과 단무지를 만들기까지의 농부들 수고 등···. 수많은 누군가의 애씀이 맛있는 치킨 한 상자에 담겨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자주 잊는다.

며칠 전 뉴스를 보니 “수백억원에 달하는 아파트에 저녁 무렵이 되자 수십 명의 배달 노동자들이 음식을 가지고 오지만 아파트는 오토바이의 출입을 통제하기 때문에 5분이고 10분이고 뛰어야 합니다.” 넓은 단지를 누비는 배달 노동자의 인터뷰였다. 입주민의 안전 및 보안과 편의를 위해서라는 명목이지만 노동자의 인격까지를 짓밟는 노동 현장이라고 생각된다.

누군가의 프라이버시가 중요하다고 해서 노동자의 생존 권리를 함부로 위협할 수는 없다. 본인들이 시킨 음식을 입구에 나와서 직접 가져가든지 혹은 그에 합당한 더 많은 임금을 지불하든지⋯. 뉴스를 보는 내내 불쾌한 감정이 들었다.

이와 반대로 부천의 NGO 단체에서는 야외 노동자들의 온열질환을 막기 위해 매일 얼음 생수를 15병씩 아이스박스에 담아 놓고 자유롭게 꺼내 갈 수 있도록 제공하고 있었다.

두 사례의 차이는 노동자들을 나를 위해 일하고 있는 귀한 사람으로 보는가? 혹은 노동자가 나의 오더에 감사해야 하는 사람으로 보고 있는가의 문제다.

경쟁이 너무나 익숙한 사회에서는 타인의 아픔을 보지 못한다. 일상에 스며든 계급의식, 서열주의에 대한 현실을 깊게 고민하고 비판적인 의식을 가질 때 독자 생존이 아니라 서로 공존하는 사회가 돼 조금은 더 따뜻해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다.

여성경제신문 손민원 성ㆍ인권 강사 qlover@naver.com